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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오전 고양시 육군 제11보급대대 내 법당 안국사에서 열린 실미도 공작원 고 임성빈·김병염씨의 53주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임성빈의 영정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
군 당국의 회유로 상고를 포기한 뒤 사형 당한 ‘실미도 공작원’에 대한 재판이 50여년 만에 대법원에서 다시 진행 중인 가운데, 이들의 초병살해 행위가 적극적인 공격에 해당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상고를 기각해야 한다는 군 검찰 의견서가 나왔다. 공작원 유족은 “섬 탈출의 계기가 된 3년여간의 감금과 학대 등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국가폭력 피해자를 또 죽인다”며 반발했다.
12일 한겨레가 유족을 통해 확보한 공군 검찰단 고등검찰부의 ‘고 임성빈(1947~1972년)의 초병살해죄 관련 군 검사 의견서’를 보면, 군 검사는 “피고인 측의 정당방위 성립 주장은 이유 없다. 나아가 이 사건 공소사실 범행이 적극적인 공격에 해당하는 이상 과잉방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의견서는 지난 3일 대법원에 제출됐다.
이 재판은 2023년 9월5일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재판장 김재호)가 실미도 사건으로 동료 3명과 함께 사형 당한 임성빈씨의 1971년 공군고등군법회의 초병살해사건 판결에 대해 동생 임충빈(66)씨의 상소권 회복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진행됐다. 재판부는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 따라 공군 관계자들이 “상고하지 말고, 입 다물고 월남에 가자(베트남전 파병)”고 하는 등 피고인이 상고하지 못하도록 회유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실미도 사건은 1968년부터 북한 침투 목적으로 인천 무의동의 실미도 부대(공군 제2325부대 제209 파견대)에서 훈련받던 공작원 22명(총 31명 중 7명은 훈련 중 처형, 2명은 당일 기간병과 교전하다 사망)이 1971년 8월23일 부당한 대우에 항거해 서울로 진입하다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한 일이다. 공작원들은 실미도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감시하던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임성빈 등 살아서 체포된 4명은 이듬해인 1972년 3월10일 사형 집행돼 암매장됐다.
군 검찰은 의견서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만일 가해자의 행위가 피해자의 부당한 공격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서로 공격할 의사로 싸우다가 먼저 공격을 받고 이에 대항해 가해한 경우 가해행위는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격을 가지므로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공작원들은 탈출 3일 전 민간인에게 얻은 소주를 나눠마시다 발각돼 심하게 폭행당한 뒤 공작원 한명이 허리를 다치는 일이 계기가 되어 기간병 살해계획 등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겼는데, 군 검사는 이때 상황을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면서 ‘침해의 현재성’이 없다는 논지를 폈다. “공작원들이 기간요원 등을 기습할 당시에는 추가적인 구타나 가혹 행위가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범행을 공모하고 실행하기까지 약 이틀간의 시간적 간극이 존재하는 등 추가침해가 곧바로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객관적인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피고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재산권, 행복추구권을 침해받은 반면 상대방은 더 무거운 생명권을 침해당했고 △사전 계획된 시간에 피고인 등의 선제적 기습으로 실행됐고 △사전 공모 내용에 살해 계획이 있었다며 유죄가 성립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고 임성빈의 유족을 대리하는 장경욱 변호사는 “군 검찰은 이 사건을 음주 문제로 일어난 것처럼 취급하면서 연속적 법익침해가 아니라고 했는데 저희는 감금이라고 본다”고 했다. 국가가 공작원들을 섬에서 내보낼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장 변호사는 “감금 상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죽기 살기로 대응하는 거였다”고 했다.
앞서 변호인들은 “공군이 피고인을 포함한 실미도 부대원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북파공작원 훈련을 빙자하여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보호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대원 중 일부를 살해하기까지 하였는바 이는 중대한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당시 피고인 등은 무력을 사용하여서라도 섬을 탈출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가해지는 위법한 국가폭력에 대해 항거할 유일한 수단이었다”며 “이는 형사법적으로 정당방위일 뿐 아니라 헌법 전문의 저항권 행사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과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고 임성빈은 사형 전 1심 법정진술에서 “정든 동료들을 우리들 손으로 때려죽이도록 만들고 그것도 부족하여 죽은 동료들을 디젤 기름에 튀겨 바다에 띄우도록 만든 기간요원들의 잔악한 비인간성에 몸서리쳤고, 기약 없이 반복되는 고된 일과를 하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말로를 겪어야 한다는 데 대한 반발이었다”고 말했다.
군 검사는 의견서에서 공작원들이 당한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초병살해 상황만을 따졌다. 다만 맨 마지막에 “실미도 사건으로 목숨을 잃으신 이 모든 분들이 역사의 희생자임을 인정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추모한다”고 한 문장을 적었다. 고 임성빈의 동생 임충빈씨는 “병 주고 약 주고, 두 번 세 번 죽이고 또 죽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22년 두 번에 걸쳐 기망에 의한 실미도 공작원 모집, 유해 암매장, 재판청구권 행사를 막은 책임 등에 대해 국가의 사과를 권고한 바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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