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쁜 규제를 대체할 좋은 규제의 필요성
앙각(仰角) 규제를 아시는지. 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올림픽대로 옆에 지어진 ‘시티극동아파트’란 이름을 들으면 “아” 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송파구 풍납토성 근처에 있는 이 아파트는 아파트 옥상 부분이 삼각형으로 깎인 극단적인 형태로 지어졌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 모습으로 건물이 지어진 게 바로 ‘앙각 규제’ 때문이다.
앙각 규제는 문화유산 경계면을 기준으로 앙각(수평에서 올려다보는 각도) 27도가 넘는 높이로는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앙각 규제는 나름 ‘타협’의 산물이다. 본래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변 경관 보호를 위하여 문화유산 주변까지 개발을 제한한다. 이른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규제이다. 보통은 반경 500m 내에서 개발을 제한한다. 서울시는 건물이 워낙 밀집하다 보니 국가유산청과의 협의를 통해 500m보다 짧은 100m 내로 완화했는데, 이를 보완한다며 앙각 27도를 적용하여 높이를 제한한다.
문화유산 자체의 보호야, 이견이 없다. 그런데 문화유산 주변까지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재산권을 침해해도 되는지, 나아가 그것이 정말 문화유산을 아끼는 길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과한 규제는 문화재를 제대로 지키기 힘들고, 재산권만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지역 노후화가 대표적인 규제의 폐해다. 서울 한복판에 낙후된 지역이 있다면 어김없이 문화유산 주변이다. 문화유산 주변 개발은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 기준’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누구도 선뜻 개발에 나서지 않고, 결국 지역은 활력을 잃어간다. 문화유산 보호만큼 중요한 것이 향유인데, 문화유산 말고는 즐길 거리가 없어 문화유산 방문객까지도 줄어든다. 문화유산이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기보다 골칫덩어리가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를 그대로 둘 일인가? 관광객 몇 늘리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문화유산과 도심 공간의 가치를 함께 높이는 방안은 정말 없을지 따져봐야 한다.
획일화된 문화재 규제…과연 효용 있나?
이와 관련 최근 서울시가 도입을 추진 중인 제도를 눈여겨볼 만하다. 바로 ‘용적이양제’다. 문화유산 주변에서 규제 때문에 해당 구역 용적률만큼 건축물을 못 올린다면, 손해 입은 용적률을 돈을 받고 이양해 다른 곳에서 그만큼 더 높은 밀도로 개발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뉴욕과 도쿄에서 시행한 뒤 성공한 제도다. 뉴욕은 건설사가 그랜드센트럴터미널 용적을 이양받아 원밴더빌트 빌딩이 세워졌고, 도쿄역 용적을 이양받은 회사가 마루노우치 빌딩을 세웠다. 문화유산과 재산권을 함께 보호하는 제도로 도심 활력과 매력의 공존을 기대해볼 수 있다.
물론 용적이양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더 근본적으로, 문화유산 주변을 누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다만,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부터 바꿔볼 필요가 있다.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가 도시계획을 수립해 문화유산 주변을 유연하게 관리토록 하자는 얘기다.
지방정부에 맡기면 개발 일변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지난 2월 ‘국가유산영향진단법’이 제정됐다.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미리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한 제도가 있기에 지방정부 계획도 사전에 점검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를 지키면서도, 더 많은 이가 그 가치를 즐길 수 있는 길을 여는 일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5호 (2025.04.16~2025.04.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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