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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주치의는 말한다 “유튜브는 휴식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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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가 만난 사람]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은영 교수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김은영 지음 | 356쪽 | 심심 | 1만9800원

조선일보

그의 진료실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을 이들이 찾아와 묻는다. “정말 쉬어도 되나요?”

김은영(43)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교내 직장부속의원 내 정신건강센터에서 2017년부터 일하며 1만명 넘는 서울대생과 교직원의 마음을 돌봤다. “늘 바쁘게 살면서 굉장한 불안과 완벽주의,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쉬라는 권유를 하는데, 비슷한 답이 돌아오더라. ‘정말 쉬어도 괜찮나요?’” 책은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근면성실로 대표되는 한국인들은 ‘휴식’을 일탈 행위, 비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주는 쉬었다’는 사람에게 ‘뭐 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낼 순 없는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휴식을 “육체적·정신적으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생존을 위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래서 잠깐 일하다 말고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켜 유튜브를 보는 건 휴식이 아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보여지는 영상에 수동적으로 빠져들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 멈춤은 있지만 집중력과 에너지를 빼앗겨 오히려 회복에 방해될 수 있기 때문.

“멈춘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 시간이 긍정적인 방향의 감각이어야, 멈춘 것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나를 회복시킬 수 있다.”


조선일보

단순히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휴식이 아니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선 ‘멈춤’과 ‘회복’이 공존해야 한다. 회복 없는 멈춤은 에너지를 채우지 못하고 시간을 날렸단 허무함만 남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과도한 음주나, 친구들과의 잦은 만남이 휴식이 되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순간은 즐거웠지만, 집에 돌아와서 오히려 에너지가 방전되는 경우도 많다. 진짜 휴식은 긍정적인 감각이 끝난 후에도 지속돼야 한다. ‘좋은 건 그때뿐’인 활동은 주된 휴식 전략이 되기 어렵다.”

사실 ‘휴식’은 혹독한 수련의 생활을 거치며 일과 육아를 병행해 온 김 교수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어떤 게 휴식인지 몰라서,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취미를 좇아, 그걸 위해 무리하게 시간을 내다 더 지쳐버린 경우도 있었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휴식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서 주변에 두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필요할 때 고요하고 편안하게 쉬거나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이른바 ‘긍정 자원’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무리하게 해외여행을 가거나 호캉스를 가는 것보다 일상에서 짧은 휴식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삶의 만족감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여유 시간이 10분 있다면 잠깐 창문을 열고 햇빛을 보거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고, 1시간이 있다면 산책을 하거나 소설책을 읽을 수도 있다. 2~3시간을 낼 수 있으면 베이킹을 하거나 요가원에 가는 것도 좋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5분 정도 시간을 내 좋아하는 아로마 오일로 향을 피우고 깊은 호흡을 하는 것”이 김 교수의 요즘 휴식법이다.

의도적으로 내가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휴식을 확장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5분 명상법’을 소개했더니, 그 주 베스트 강의에 올랐다. ‘아, 이분들이 그동안 몰라서 못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일보

그래픽=송윤혜


김 교수는 책에서 “여전히 한국 사회는 바쁨을 선망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바쁘게 살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자신과 타인을 비난한다”고 썼다. 그렇지만 잘 휴식하는 사람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일에 집중하고 더 좋은 성과도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공부나 일은 당연히 힘든 것이다. 재미가 있을 때도 있지만, 지속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실패나 좌절도 겪는다. 그때 이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게 자신을 돌보는 ‘휴식’이다. 이게 뒷받침되면 새로운 일을 해도 두려움이 덜하고, 힘든 일에도 도전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 때도 마찬가지. 그 관계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일단 휴식하며 충전을 하면 여유가 생겨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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