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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 무는 낱말 이야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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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 무는 낱말 이야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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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l 장인용 지음, 그래도봄(2025)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l 장인용 지음, 그래도봄(2025)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올려 신앙이 깊어지는 걸 느꼈다.” 이 평범한 문장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다. 무려 여섯 낱말이 불교에서 유래했다. 교회는 불교에서 예불하고 법문을 듣는 모임을 일컫는다. 예배는 부처나 보살에게 합장하고 절하는 것을 가리킨다. 설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르치는 것이고, 찬송은 부처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다. 기도는 부처나 보살에게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비는 것이고, 신앙은 부처와 보살의 가르침을 믿고 받드는 일이다. 근본주의적 신앙관을 품은 사람에게는 불경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언어의 세계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순혈의 세계가 아니라 혼종의 세계이어서다.



흔히 쓰고 말하는 낱말이지만, 본디 뜻은 무엇이고 그 어원은 어떤 건지 모르는 일이 태반이다. 장인용의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는 담백하면서도 친절하게 토박이말뿐만 아니라 한자어나 번역어의 성립 과정을 설명해준다.



먼저 토박이말부터 보자. 꽃, 곶, 곶감, 꼬치, 꽃게, 고드름은 놀랍게도 어원이 같다. 지은이는 꽃이 뾰족함을 뜻하는 곶과 연관된 것은 꽃이 뾰족한 가지 끝에 달려서이거나 꽃망울 끝이 뾰족해서일 거라고 짐작한다. 곶감은 껍질 벗긴 감을 꼬챙이에 꽂아 말린 것이다. 꼬챙이는 곶에 앙이가 덧붙은 말인데, 앙이는 지팡이 같은 도구를 뜻한다. 꼬치는 꼬챙이의 줄임말이다. 문제는 꽃게. 꽃처럼 예뻐서 붙은 이름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답은 등딱지에 있다. 일반적으로 둥글거나 밋밋한 모양인데, 꽃게는 양옆으로 뾰족하게 나온 것이 있으니, 본디는 곶게로 불렀단다. 고드름은 곳에 얼음이나 어름이 합쳐진 말이다. 곳과 곶은 같이 썼다.



‘물’이 앞에 들어간 말도 재미있다. 물이 뭍으로 넘친 것을 무너미라 하고, 이를 한자로 바꾼 지명이 수유리다. 물의 ‘ㄹ’은 자주 탈락하는데, 물이 찬 논은 무논이고, 해녀의 잠수는 무자맥질이고, 고온다습한 기후는 무더위이고, 무지개는 물감과 지게문의 결합이고, 무좀의 무는 물집을 뜻한다.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토박이말의 어원을 톺아본다.



‘여하’튼, ‘하여’튼을 비롯하여 역시, 과연, 물론, 도대체, 심지어, 대관절, 가령 등은 한자 말인데 우리말처럼 쓰는 사례다. 일본어에서 비롯된 낱말은 부지기수다. 지금은 순화하여 우리말로 대체되었지만 한동안 쓰메끼리(손톱깎이), 요지(이쑤시개), 다마(전구), 벤또(도시락)는 일상어로 썼다. 우리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출판계에도 도비라(속표지), 세네카(책등), 하시라(쪽수나 장 제목) 같은 말이 남아 있다. 짬뽕이라는 낱말의 성립사는 그야말로 짬뽕이다. 나가사키에서 국수, 고기, 야채를 섞어 끓여 먹던 음식을 중국 남방어로 참폰이라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청요릿집에서 팔던 초마면에 덧씌워졌다. 지은이의 짐작으로 초마면이 참폰과 비슷하기에 부르던 말이 짬뽕이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관행적으로 쓰던 낱말에 이런 뜻이 있구나 하며 무릎 치는 일이 다반사다. 읽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 지은이의 박람강기에 놀랍고, 낱말에 깃든 교류의 역사나 기발한 조어 방식에 감탄한다. 뜻밖의 내용에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워지는 대목도 나온다. 깊이 알고 제대로 쓰려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이진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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