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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재난은 불가항력이 아니다 [김형준의 메타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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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재난은 불가항력이 아니다 [김형준의 메타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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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과 한식을 앞두고 산불 발생이 높아 강원 동해안 지자체가 비상인 가운데 지난 3일 오후 2022년 3월 대형산불이 났던 동해시의 한 민둥산 앞에서 산불조심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청명과 한식을 앞두고 산불 발생이 높아 강원 동해안 지자체가 비상인 가운데 지난 3일 오후 2022년 3월 대형산불이 났던 동해시의 한 민둥산 앞에서 산불조심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형준 |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난 3월 영남 지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역대 최악의 산불 재난으로 기록되었다. 불길은 5만헥타르에 육박하는 산림에 영향을 미쳤고 수십명의 인명 피해를 내고서야 진화되었다. 천년고찰 고운사가 잿더미가 되는 등 문화유산에도 막대한 충격을 주었으며​ 재산 피해액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거대 재해는 자연,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부문에 입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곤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기후변화 보고서는 재해의 위험성을 위해성(hazard), 노출성(exposure), 취약성(vulnerability)으로 구성한다. 위해성은 특정 지역이나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적 원인이나 사건으로 홍수, 가뭄 등 어떤 재해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로 평가한다. 노출성은 재해가 발생하는 지점에 존재하는 인구나 자산 등 위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연과 사회경제적 가치의 총량으로 평가한다. 취약성은 위해에 노출된 생태계나 사회경제 시스템의 실제 피해가 어느 정도일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방재 시설이나 정책·법 등 다양한 유무형의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방법론에 산불을 대입해본다면 위해성은 발화와 확산, 노출성은 거주 인구와 사회경제적 자산, 취약성은 대응 능력과 구조적 약점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이번 산불 경우는 위해성이 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묘객의 실화로 시작되었지만, 초대형 재난으로 번진 데에는 이례적인 기상 조건이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 전국 평균기온이 14.2도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강수량은 동기간 역대 최저로 경상권은 최근 4개월의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을 밑돌았으며 상대습도는 평년보다 15%포인트 이상 낮아 산불에 극도로 취약한 환경이었다. 여기에 기록적인 강풍까지 겹쳤다. 평년보다 강했던 ‘남고북저’ 기압 배치는 서풍을 크게 강화했고, 이는 불씨를 멀리까지 날리는 비화(飛火) 현상을 일으켜 산불을 순식간에 확산시켰다. 그린피스는 이처럼 산불에 취약한 날씨의 일수가 산업화 이전 대비 연간 최대 120일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산불 재난의 배경에 기후변화로 인한 구조적 위해성 증가가 있다고 지적한 셈이다.



산림은 산불의 매개체이자 그 자체로서 생태계와 사회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피해 대상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광합성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의 형태로 고정되었다가 불에 타며 순식간에 대기로 다시 방출되는 온실가스 또한 노출된 위험이다. 그 외에 산불 영향권의 거주민이나 주택·시설 등 건물, 그리고 하회마을, 병산서원, 고운사 등 역사문화 자산도 노출성 평가에 빼놓을 수 없다. 일주일이 넘게 계속된 산불은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인구구조 변화나 미흡한 예방·감시 체제 또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키운 핵심 원인들이다. 희생자 대부분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화를 당했다. 이에 더해 상대적으로 높은 침엽수 비중은 산불 위험에 대한 노출성과 취약성을 배가시켰다.



산불 자체는 자연 현상일 수 있으나 재난으로 비화하는 경로는 사회적이다. 이번 영남권 산불은 기후변화로 증폭된 물리적 위험성, 인구·자산 고위험 지역 노출성, 고령화와 산림 관리 및 대응 역량 부족 등에 따른 취약성 증가, 이 세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동한 복합 재난이었다.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과 산림관리를 통한 위험성 저감의 여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난은 불가항력이 아니다.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사회적 의지에 따라 ‘재난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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