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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관세'에 車업계 눈치작전 … 현대차 "2개월간 가격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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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의 수입차 관세 25% 부과가 시작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속속 자구책을 공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차량 판매 가격 인상 시점을 조율 중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생산지를 미국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자동차 미국법인은 지난 4일(현지시간) 6월 2일까지 2개월 동안 현재 판매 중인 모델들의 권장소매가(MSRP)를 올리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우리는 가격 상승 가능성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미국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고 싶었다"며 "이번 결정은 소비자를 지원하고 이들의 구매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관세 인상 시점에 맞춰 미리 미국으로 출하한 재고분과 미국 내 생산 물량 등을 고려할 경우 가격 동결로 인한 현대차의 수익성 악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아 미국법인 역시 조만간 비슷한 내용의 가격 동결을 발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앞서 도요타가 내부적으로 미국 자동차 판매가격을 당분한 동결하기로 결정했으며, GM과 혼다 등 다른 주요 자동차 업체들도 재고 물량과 미국 내 생산 물량을 버팀목으로 삼아 최대한 오래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가격을 동결하는 이유는 관세 부과가 시행되자마자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들에게 집중 포화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수록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가격 인상 시기를 놓고 주요 자동차 업체끼리의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프리미엄 브랜드나 미국 시장의 중요성이 비교적 낮은 업체들은 일찌감치 관세 부과분을 가격에 전가하겠다고 밝혔다.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인 페라리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량 가격을 10% 인상하겠다고 공개했다. 유럽·중국에 비해 미국에서의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독일 폭스바겐 역시 이달 초 미국 딜러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관세에 대응해 수입 수수료를 추가할 계획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내놓은 중장기적 대책은 관세를 피해 미국 내 자동차 생산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연 70만대 수준인 미국 현지 생산 물량을 120만대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GM도 지난 3일 "25%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픽업트럭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닛산은 올해 여름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의 일본 후쿠오카 공장 생산분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는 볼보의 호칸 사무엘손 최고경영자(CEO)는 "볼보는 미국 내 생산 차량 수를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 다른 모델을 미국 공장으로 옮겨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는 관세 타격이 큰 차종을 미국에서 만드는 방법으로 대응에 나섰다. 재규어-랜드로버의 경우 25%의 관세 부과에 대응할 중장기 전략을 마련 중이라며, 4월 한 달간은 미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자동차 업계에서는 미국 내 판매 차량의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한국투자증권은 25%의 관세가 적용될 현대차의 관세 부과액이 총 5조1450억원, 기아는 3조9996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두 회사 연간 영업이익의 30%에 육박하는 액수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개월 동안은 여러 대책을 동원해 가격을 동결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엔 가격 인상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기존에 판매하던 모델 가격을 소폭 올리고 연식 변경 모델이나 신규 출시 모델의 가격을 많이 올리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내 생산 확대도 자동차 가격 상승을 막지는 못한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부품과 원자재 등을 모두 미국 내에서 조달하지 못하는 만큼 일부라도 수입해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상대로 관세를 인상했기 때문에 부품·원자재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완성차 가격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컨설팅사 앤더슨이코노믹그룹에 따르면 이번 관세 부과로 미국 자동차 소매가는 최소 2500달러(약 360만원)에서 최대 2만달러(약 2900만원)까지 오를 전망이다.

[김동은 기자 /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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