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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건물 10개 중 8개가 ‘와르르’… 한국 언론 최초 ‘진앙’ 사가잉 가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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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신> 만달레이보다 더 처참한 사가잉
폭탄 떨어진 듯 멀쩡한 건물 찾기 힘들어
반군 지역, 만달레이에 비해 구조 늦어져
한국일보

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사가잉에서 3일 한 여승과 주민이 무너져 내린 주택을 안타까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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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 폭탄이 떨어진 듯했다. 성한 건물을 도통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3일 미얀마 북서부에 위치한 불교 도시 사가잉은 ‘처참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여승(女僧) 도뗀자이(48)는 반쯤 무너져 내린 5층 건물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이곳은 여승을 위한 사원이었다고 했다. 말이 ‘사원’이지, 7~17세 동자승과 이들을 지도하는 관리자 스님 30여 명이 함께 모여 생활하고 교육하는 시설이기도 하다.

어린 스님들을 위한 읽기와 쓰기 수업이 진행되던 지난달 28일 오후 12시 50분.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대부분 황급히 빠져나왔지만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밖이 무섭다’며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번째 진동과 함께 건물에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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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사가잉에서 3일 구조대원들이 잔해에 파묻힌 여승을 찾고 있다. 이 건물은 여승과 동자승들이 머물던 종교 시설이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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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 속에서 '살아'나온 건 단 한 명뿐. 지금까지 14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10대 두 명이 여전히 차갑고 날카로운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도뗀자이는 “(사고 후) 구조대 몇 명이 왔지만 아이들을 구하기는 역부족이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건물 잔해에서는 한때 동자승이 배웠을 초등 1학년 과학 교재와 어린이용 교리 교재, 분홍색 가방이 나뒹굴고 있었다. 친구를 잃은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너진 건물 앞에서 딜라시위섬(여승이 입는 분홍 가운)을 걸친 동자승 세 명이 흙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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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뗀자이 스님이 3일 미얀마 사가잉에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얀마에서 발생한 규모 7.7 강진으로 그가 여 동자승과 머무는 종교 시설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작은 사진은 건물 잔해에서 발견된 동자승의 과학 교재 모습.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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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반군 휴전으로 다리 재개통


한국일보는 지난 3일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사가잉을 찾았다. 사가잉은 미얀마의 젖줄인 이라와디강을 사이에 두고 제2 도시 만달레이에서 서쪽으로 약 20㎞ 정도 떨어진 인구 약 30만 명의 불교 중심지다. 지난달 28일 미얀마 중북부에서 발생한 규모 7.7 강진의 ‘진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상황은 그간 ‘깜깜이’였다. 군부가 장악한 수도 네피도, 만달레이와 달리 사가잉은 반군 세력 영향권에 있는 지역이라 군부가 취재진은 물론 구호대나 인도적 지원 접근을 통제한 탓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가 만달레이 비극을 전할 때도 방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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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규모 7.7 강진이 발생한 미얀마 중북부에서 제2 도시 만달레이와 사가잉을 잇는 90년된 철교 '아바 다리'가 3일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있다. 만달레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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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사가잉을 잇는 두 개의 다리 중 90년 된 ‘아바 다리’는 이번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거대한 철교는 마디마디 끊어져 강물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그나마 남은 ‘야다나본 다리’는 상대적으로 근 시일에 만들어졌지만 군부가 붕괴 위험을 이유로 이동을 차단했다.

이 때문에 그간 이라와디강을 가로지르는 목선을 빌려 건너가는 게 유일한 길이었다. 본보 역시 당초 양곤에서 올라온 구호 단체 회원들과 3일 오전 목선을 타고 사가잉을 찾을 셈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전날 미얀마 군부가 구호 작업을 위해 반군이 요청한 20일간의 휴전을 수용하고, 이날부터 야다나본 다리 통행을 허가하면서 육로를 통해 사가잉에 접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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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발생한 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사가잉에서 3일 한 건물이 반쯤 기울어져 있다. 붕괴 위험이 커지자 인근에 머물던 스님들이 차량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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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구호 속도 붙어


직접 찾은 사가잉에서는 형태가 제대로 남은 건물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찌아꿔떼 마을에서는 수백m를 달릴 동안 도로 양옆으로 멀쩡한 건물을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군부의 방치 탓에 이렇다 할 피해자 집계 수치도 없다. 다만 앞서 이곳을 돌아본 미얀마 독립 언론 미얀마나우는 “도시 지역 건물의 약 80%가 잔해로 변했다”고 전했다. 지진 진앙에 가장 근접한 데다 제2 도시 만달레이보다 건물이 더 노후화해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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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사가잉에서 3일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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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희생자 수 역시 아무도 모른다. ‘이번 지진으로 몇 명이나 숨졌느냐’는 물음에 주민들은 “매일 얼굴을 맞대던 옆집 아기 엄마가 도통 안 보이는데 아직 무너진 집 안에 있는 것 같다”거나 “평소 공양(供養)을 잘하던 아저씨가 아들을 구하려다 사망했다”며 이웃의 안타까운 사연만 전할 뿐이었다.


바람이 불 적마다 말도 못할 악취가 마스크 속을 파고들어 코를 찔렀다. 여전히 많은 시신이 잔해 속에서 발견되지 못한 채 부패하고 있는 까닭이다. 구조를 위해 이틀 전 사가잉을 찾은 자원봉사자 와얀민 우는 “부패가 빠르게 진행돼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찾아 가족에게 시신을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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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발생한 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사가잉에서 3일 주민들이 무너진 집 바로 앞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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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복구는 사실상 이제 시작이다. 그간 군부의 통제로 지원 물품이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에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은 곡괭이로 건물 잔해를 깨부숴야만 했다. 다행히 전날부터 몇몇 시민단체 소속 구조대가 중장비를 들여오면서 수습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주민들, 구호품 의존해 생활


살아남은 주민들은 무너진 집터 앞에서 다시 삶을 이어간다. 달리 갈 곳이 없는 탓이다. 사가잉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내 집 앞’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도 힘들다. 도심지인 만달레이에서 집을 잃은 시민들이 보다 널찍한 길거리나 텐트가 마련된 난민촌으로 이동해 생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날 붕괴 위험이 높은 집에서 나온 이들이 흙바닥에서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고, 공동 우물가에 모여 샤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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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발생한 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사가잉에서 3일 주민들이 무너진 집 바로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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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발생한 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사가잉에서 3일 여승 응에가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30여 명의 동자승과 함께 생활하는 데, 건물이 기울면서 현재 마당에서 지내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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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댓 명의 동자승과 함께 지내는 여승 응에(34)는 “건물이 20도 정도 기울어 안에서 지내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야외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무더운 날씨와 퀴퀴한 냄새는 물론 지진 이후 계속되는 가라앉은 분위기도 견디기 힘들어해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지역보다 오래 고립된 사가잉에서 금보다 더 귀한 건 물과 식량이다. 이날 구호물자를 실은 픽업트럭이 대거 다리를 건너 나타나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뒤쫓느라 가뜩이나 좁은 길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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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사가잉에 살았다는 이이 아웅 할머니가 3일 구호 단체로부터 받은 물품을 품에 안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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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남들보다 1초라도 늦으면 물품을 못 받을까, 낯선 차량이 길가에 멈춰 설 때마다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달려나갔다. 평생을 사가잉에 살았다는 이이 아웅 할머니(75)는 “지진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고, 군의 폭격도 여러 차례 견뎠지만 이런 피해는 살면서 처음”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나마의 '구호 활동'마저 군부 변심에 급작스럽게 중단될 수도 있다. 군부는 구호 단체 등의 사가잉행을 허용하면서도 만달레이와 사가잉 양 방향에 검문소를 두고 검열에 나섰다. 반군의 무기 조달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만달레이 시내에서 사가잉까지 육로로 45분~1시간가량 소요되지만, 무장 군인들이 구호물자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까닭에 이날 두 시간 넘게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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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발생한 미얀마 규모 7.7 강진의 '진앙'으로 꼽히는 만달레이에서 사가잉으로 향하는 도로가 꽉 막혀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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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잉(미얀마)=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