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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탄핵 왜 늦어졌나···치열한 토론과 ‘반박불가’ 논리에 시간 걸린 듯[윤석열 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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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대 오른 지 111일, 변론 종결 38일 만
경향신문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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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보다 위헌·위법성이 뚜렷해 일찍 결론이 날 거란 예상이 많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이지만 헌법재판소는 역대 최장 심리기간을 들였다. 결정이 늦어지자 우려는 속출했다. 헌재가 윤 전 대통령 측과 탄핵반대 세력의 불복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철저한 법리 검토와 지난한 토론을 거쳤고, 그 결과 만장일치 파면 결론에 다다랐을 거란 해석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심판대에 오른 지 111일 만, 변론이 종결된 지 38일 만인 지난 4일 파면됐다. 박 전 대통령 때는 사건 접수부터 파면까지 91일, 최종 변론부터 결론까지 11일이 걸렸고, 노 전 대통령은 접수부터 63일, 변론 종결부터 14일 뒤 기각 결정이 나왔다. 이런 선례를 토대로 윤 전 대통령 사건도 지난 2월25일 변론 종결 이후 2주 안팎 후인 3월 초나 중순쯤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평의가 길어진 것은 국회 측의 다섯 가지 탄핵소추 사유뿐 아니라 윤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한 절차적 문제를 검토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 내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절차가 없었고, 동일한 탄핵소추안이 앞서 한 차례 부결됐으므로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반되며, 국회 측이 탄핵소추 이후에 형법상 내란죄 등 형법 위반 행위를 헌법 위반 행위로 포섭해 주장하는 것은 소추사유의 철회·변경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나 진술조서 등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내란 혐의 형사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과 공범 관계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의 수사기관 진술내용이 탄핵심판 사건 증거로 쓰이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으로 보였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런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법조계에선 헌법재판관 절반인 4명이 보충의견을 낸 전문법칙 적용 문제를 두고 토론이 길어졌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미선·김형두 재판관은 “탄핵심판 절차에서 전문법칙에 관한 형사소송법 조항들을 완화해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반면,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탄핵심판의 중대성, 피청구인의 방어권 보장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결정문에는 김·조 재판관 의견을 감안한 듯 전문증거보다 헌재 심판정에서의 증인신문 내용 등이 주요하게 파면 근거로 담겼고, 김·조 재판관도 ‘앞으로는’이라는 전제를 달아 이번 사건에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삼지 않았다. 재판관들 사이에서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헌재가 극심한 사회갈등을 우려해 절차적 문제제기까지 꼼꼼하게 따지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결과적으로 만장일치 결론을 내림으로써 불복 빌미를 차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헌재 파면 결정이 나온 뒤 윤 전 대통령 측과 여당 정치인들의 헌재에 대한 비난은 예상보다 적었고,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탄핵심판 사건의 평의를 함께 진행한 것도 선고가 지연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평의가 길어지는 사이 다른 탄핵심판 사건 결정이 먼저 나왔다. 헌재는 지난달 13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최재훈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 등에 대한 탄핵을 모두 기각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도 기각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 결정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진행되던 지난 1월22일에 나왔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접수했을 때부터 신속한 진행 의지를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에서 재판관 기피·회피 신청을 내고 변론기일 일괄 지정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사건보다 먼저 접수된 데다 먼저 변론을 마친 사건을 우선 선고해야 한다는 요구를 헌재가 무시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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