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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국민의힘 '승복' 외치며 뒤늦게 민심 수습... 잠룡들은 기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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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수용" 자세 낮춘 지도부... 친윤선 "우리는 폐족"
비윤계 "헌재 결정 환영"... 대선 체제 전환은 시간 문제
홍준표 내주 대구시장 사퇴... 꿈틀거리는 잠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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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국회 본청에서 빠져나와 나와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국민의힘은 3년 만에 집권 여당 간판을 뗐다. 종일 침통한 가운데 지도부는 승복과 대국민 사과 메시지에 주력하며 한껏 자세를 낮췄다. 탄핵 기각을 주장하다 민심과 멀어진 과오를 뒤늦게 바로잡으려 애썼다. 친윤석열계 일각에선 "우리는 이제 폐족"이라는 자포자기성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서둘러 당을 재정비해 조기 대선에 임하자는 분위기가 대세다. 불확실성이 걷히자 잠룡들은 속속 기지개를 켰다.

"헌재 결정 수용" 자세 낮춘 지도부... 친윤선 "우리는 폐족"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재판소 선고 직후 “안타깝지만 국민의힘은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로 많은 국민이 느꼈을 분노와 아픔에 대해서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비판과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덧붙였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송구하다”면서 “국정 운영에 공동책임이 있는 여당으로서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와중에도 탄핵 반대에 앞장섰던 의원들은 반발했다. 김기현 의원(5선)은 비공개 의총에서 "우리는 폐족(조상이 큰 죄를 지어 자손들이 벼슬을 할 수 없는 가문)"이라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5선)은 취재진과 만나 "헌재 결정 그 자체가 쇼크(충격)"라며 "민주당 입법 독재에 헌재가 굴복한 것 아니냐, 그래서 기각을 강탈당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윤계 강민국 의원은 헌재 결정에 대해 “민주당 대변인이 논평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당 지도부 전원 사퇴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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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인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김기현(앞줄 왼쪽 두 번째)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심판정에 들어서기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만 친윤계에서도 "윤 대통령 개인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나경원 의원), "송구하다는 말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이철규 의원)라며 그간의 맹목적인 대통령 엄호와는 다른 모습이 감지됐다.

비윤계 "헌재 결정 환영"... 대선 체제 전환은 시간 문제


비윤계는 헌재 결정을 환영했다. 조경태 의원(6선)은 “헌재가 대한민국 국가를 정상화하는 데 출발점을 제시했다"며 "국민과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상욱 의원(초선)도 “민주주의가 바로 서고 법치가 회복되며 국민의 위대함을 알린 날”이라고 환영했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송석준 의원은 “이제는 국민 통합의 시간”이라고 강조했고, 윤영석 의원은 “분열과 대립을 넘어 통합과 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헌정 체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개헌론을 폈다.

하지만 헌재가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내린 만큼, 시비를 걸기보다는 조기 대선을 준비하자는 기류가 우세했다. '대선 포기→민주당에 정권 헌납→보복 수사로 인한 보수 궤멸' 시나리오에 대한 두려움이 큰 탓이다. 어차피 선대위 체제로 바뀔 수밖에 없는 터라 당 지도부 사퇴 요구도 많지 않았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험천만한 이재명 세력에게 맡길 수 없다. 절대 물러설 수 없고, 져서는 안 될 선거"라고 다짐했다. 의총에서는 조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단독 후보를 선출하기보다 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국민 후보'를 선출하자(신성범 의원)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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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된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 내주 대구시장 사퇴... 꿈틀거리는 잠룡들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은 본격적으로 몸풀기에 나섰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내주 사퇴해 출마를 공식화한다. 홍 시장 측은 본보 통화에서 "다음 주에 책 두 권을 차례로 출간하고 순차적으로 사퇴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장은 대선 30일 전에 물러나면 되지만 결기를 보여주려 사퇴 시점을 앞당긴 이다. 한동훈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언제나 국민과 함께하겠다"며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자유민주주의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올렸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헌재에서 또다시 파면된 것이 안타깝다"면서도 "아픔을 이겨내고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해 더욱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앞으로 나가자"고 썼다.

안철수 의원은 "혼란과 갈등의 밤을 끝내고 국정 안정과 국민 통합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밝혔다. 유승민 전 의원은 "탄핵에 반대하셨던 분들도 힘들겠지만 보수 재건에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특별한 메시지 없이 탄핵집회 안전대책회의를 열고 시정에 집중하며 안정감을 주는 데 주력했다.

일찌감치 개혁신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준석 의원은 "계엄 초기부터 우왕좌왕하지 않고 탄핵에 대한 확신을 얘기했다"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강경 보수세력에게 소구해보고자 흔들렸던 사람들은 이제 젊음과 소신, 패기에 길을 터 달라"고 강조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염유섭 기자 yuseoby@hankookilbo.com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