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1997년 게리 드보어 사망 사건
배우 슈워제네거 출연 영화 각본 쓴 작가
원고 완성 뒤 실종… 1년 뒤 숨진 채 발견
아내 "사고 지점 수상… 원고 노트북 분실"
"CIA 기밀 접근 뒤 제거됐나" 음모론 제기
1997년 6월 28일. 당시 55세였던 할리우드 영화 작가 게리 드보어는 이날 오전 1시쯤 아내 웬디와 전화 통화를 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씨름했던 차기 영화 시나리오를 드디어 완성한 뒤 귀가 중이라는 얘기였다. 드보어는 미국 뉴멕시코주(州) 샌타페이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초고 작성을 마치고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해안도시 카핀테리아에 있는 자택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미국 남서부 지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15시간가량에 걸쳐 횡단하는 여정이었다.
웬디는 당시 드보어가 "운전 중 졸리면 길가에서 자다가 갈 테니 너무 기다리지 말라"고 말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에 전했다. 이미 10시간이 넘게 장거리 운전을 한 뒤였기 때문에 이상한 점 없는 평범한 대화였다.
그러나 이 통화 이후 웬디는 드보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이날 오후까지도 드보어는 집에 나타나지 않았고, 웬디가 실종 신고를 했지만 그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았다. 차량 목격자도, 신용카드 사용 기록도 없었다. 광범위한 경찰 수색도 허사였다. 드보어의 지인은 LAT에 "드보어가 어딘가에 빨려 들어간 것 같다"고 당황해했다.
배우 슈워제네거 출연 영화 각본 쓴 작가
원고 완성 뒤 실종… 1년 뒤 숨진 채 발견
아내 "사고 지점 수상… 원고 노트북 분실"
"CIA 기밀 접근 뒤 제거됐나" 음모론 제기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
1997년 6월 28일 실종된 게리 드보어(왼쪽)와 그의 아내 웬디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웬디가 드보어 사후 공개한 사진이다. 웬디 제공 |
1997년 6월 28일. 당시 55세였던 할리우드 영화 작가 게리 드보어는 이날 오전 1시쯤 아내 웬디와 전화 통화를 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씨름했던 차기 영화 시나리오를 드디어 완성한 뒤 귀가 중이라는 얘기였다. 드보어는 미국 뉴멕시코주(州) 샌타페이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초고 작성을 마치고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해안도시 카핀테리아에 있는 자택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미국 남서부 지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15시간가량에 걸쳐 횡단하는 여정이었다.
웬디는 당시 드보어가 "운전 중 졸리면 길가에서 자다가 갈 테니 너무 기다리지 말라"고 말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에 전했다. 이미 10시간이 넘게 장거리 운전을 한 뒤였기 때문에 이상한 점 없는 평범한 대화였다.
그러나 이 통화 이후 웬디는 드보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이날 오후까지도 드보어는 집에 나타나지 않았고, 웬디가 실종 신고를 했지만 그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았다. 차량 목격자도, 신용카드 사용 기록도 없었다. 광범위한 경찰 수색도 허사였다. 드보어의 지인은 LAT에 "드보어가 어딘가에 빨려 들어간 것 같다"고 당황해했다.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1년이 지났다. 그간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들끓었다. 드보어가 강도를 당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사고를 당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어딘가에서 홀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지인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주장도 드보어 실종의 전말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1998년 7월 10일, 드보어는 캘리포니아 팜데일 인근 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드보어 실종 1주기 기사를 읽은 한 일반인이 호기심에 그의 마지막 통화 지점 인근 사고 다발 지역을 조사했다. 그는 해당 수로 인근에서 드보어 차량 파편으로 추정되는 조각을 발견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로 안에서 드보어 차량을 찾았다. 실종 당시 드보어의 복장을 입은 시신 한 구도 안전벨트를 한 채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경찰은 시신의 치아 감식 후 드보어임을 확인한 뒤 사고사로 결론 냈다. 1년간 이어진 실종 사건은 그렇게 끝나나 싶었다.
기가 막힌 우연?
![]() |
미국 캘리포니아주 바스토 지역 전경. 바스토는 1997년 6월 28일 실종된 게리 드보어가 아내 웬디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지역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웬디는 이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드보어가 사고 지점까지 간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통화 당시 드보어는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의 작은 마을 바스토를 지나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해당 수로는 귀가 경로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었다. 이미 샌타페이부터 10시간을 운전해 온 그가 불필요한 여행을 감행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웬디의 주장이었다.
설령 드보어가 길을 잘못 들어 수로 인근 도로를 주행하게 됐더라도 의문점은 남았다. 차량이 수로에 빠지기 위해서는 드보어가 귀가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운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해당 도로의 북쪽 방향 차선에는 가드레일이 튼튼하게 설치돼 있어서 차량이 길을 벗어나 물에 빠질 가능성이 없었다. 드보어가 귀갓길과 관련 없는 도로까지 이동한 뒤 집에서 멀어지는 남향 차선을 탔다가 하필이면 가드레일이 없는 지점에서 실수로 핸들을 꺾어야만 '사고사'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웬디로선 터무니없는 추측에 불과했다.
![]() |
1997년 6월 28일 사망한 할리우드 각본가 게리 드보어가 시나리오를 작성했던 1986년 영화 '로 딜' 포스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을 맡았다. 미국 영화정보 사이트 Imbd 캡처 |
석연찮은 점은 더 있었다. 드보어는 사망 당시 한쪽 손이 완전 부서져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차량이 수로로 돌진하는 과정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었으나 웬디는 '다른 가설'을 선택했다. 당시 드보어가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미국 정부 기밀을 폭로하려 했다가 정보 요원으로부터 '제거'됐다는 의혹이다.
'파나마 침공 음모론'과 화학 작용
![]() |
미국의 1989년 12월 20일 파나마 침공 뒤 한 미국군이 파나마시티에서 수색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망 직전 드보어는 1989년 12월 20일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배경으로 한 액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직접 읽어본 사람은 없었으나 웬디는 평소 드보어로부터 각본 관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드보어가 영화 고증을 위해 중앙정보국(CIA) 홍보 담당 직원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웬디는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드보어가 CIA가 갖고 있던 파나마 침공과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듣고 이를 시나리오에 반영했을 수 있다는 게 웬디의 의심이었다.
웬디의 주장은 당시 미국 일각에서 공유되던 파나마 침공 음모론과 맞물렸다. 앞서 미국은 마약 밀매 혐의를 받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 체포를 명분 삼아 파나마에 자국군 2만7,000명을 투입했는데, 실은 '숨은 의도'가 있었다는 의혹 제기가 근거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노리에가 장군이 미국 고위직의 마약 투약 영상을 갖고 있었다거나 미국이 파나마 군벌의 자금 세탁 루트를 노리고 침공을 감행했다는 주장 등이다. 드보어가 이런 흑막을 드러낼 단서를 잡아 영화 각본에 담으려 시도했다가 정부 요원에게 살해당했다고 웬디는 추측했다.
음모론을 증폭시킨 건 사건 현장에서 드보어의 노트북이 사라졌던 점이었다. 웬디는 드보어가 애지중지 다뤘던 시나리오 작성 도구만 없어진 게 수상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드보어 실종 뒤 미국 수사관들이 수색에 필요한 자료를 얻고자 자택에 찾아왔는데, 그 직후 시나리오 조사 자료를 보관하고 있던 남편의 PC 데이터가 전부 삭제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요원들이 드보어의 조사 내용을 폐기했다는 의혹을 제시한 것이다.
![]() |
미국 바스대 연구원인 매튜 알포드가 게리 드보어 사망 사건 관련 조사를 하고 있다. 알포드는 자신의 조사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2014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캡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웬디의 주장을 가장 적극 옹호했던 건 영국 서머싯주 바스대에서 각국 정보기관의 홍보 활동을 연구하던 매튜 알포드였다. 그는 미국 정보기관이 할리우드 첩보 영화를 통해 긍정적인 대외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을 연구했던 학자로, 2008년 영국 가디언 기고를 통해 "할리우드 내 CIA 활동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며 드보어 사망 관련 웬디의 주장을 거론했다. 2014년에는 웬디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웬디와 알포드의 주장을 명확히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미국 주류 매체들도 이 의혹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LAT는 "CIA 암살 음모론이 계속 제기되는 것이야말로 드보어 사망 사건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요소"라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웬디의 의심은 여전하다. 그는 2015년 영국 데일리메일에 "드보어 실종 뒤 모든 것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음모론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안을 더 들여다볼수록 드보어의 죽음에 정보기관이 연루됐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웬디와 알포드에게만큼은 드보어 사망 사건이 영원히 미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