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시대상…제주 아픔 묻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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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
제주 4·3은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드라마 속 배경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 4·3은 등장하지 않지만 극 중 설정을 통해 그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애순이가 '그놈의 바당(바다)' 보며 살았던 이유
관식이가 태어나기 불과 2년 전 1948년 11월 17일 제주엔 계엄령이 선포됐다. 곧이어 '중산간 마을 주민들은 해안가로 내려오라'는 소개령이 떨어졌다. 이어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한 대대적인 강경 진압 작전이 전개됐다.
한라산은 발 디딜 수 없는 땅이 됐다. 한라산 금족령으로 인해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돼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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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초토화돼 터만 남은 제주시 화북1동 곤을동 마을터.(자료사진) ⓒ News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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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식이와 애순이가 해안마을에서 자란 건 우연이 아니란 뜻이다. 당시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제주로 피난 온 애순이의 어멍(어머니) '광례'가 해안마을에 터를 잡은 배경에도 4·3이 있었던 것이다.
애순이의 복잡한 가족사, 우연이 아닌 이유
애순이는 일찍이 어멍 '광례'와 떨어져 살았다. 사별한 광례가 염병철과 재혼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 사회에서 재혼 자체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단 이유로 의문을 제기하는 시청자도 있다. 그러나 제주에선 재혼이 매우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4·3으로 희생된 주민 80% 가까이가 남성이었다.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3월 기준 희생자 1만 4822명 중 1만 1637명이 남성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남편도, 자식도 잃은 제주 여성은 가장으로서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고, 일부는 생존전략의 하나로 재혼을 선택했다. 광례뿐만 아니라 해녀 삼춘들이 숨을 참아가며 생계에 뛰어든 배경도 4·3과 무관하지 않다.
애순이와 관식이가 '소랑햄쪄' 속삭였다면 어땠을까
극 중 한 가지 어색한 설정이 있다면 애순이와 관식이의 대화가 '너무 잘 들린다'는 것이다. 이 둘은 1960년대 제주에서 10대를 보냈다. '제주어'가 자연스러운 세대다. 고백했다면 "소랑햄쪄(사랑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울 방언'으로 대화하는 건 일종의 '드라마적 허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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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3일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봉행에 앞서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제주도사진기자회) 2024.4.3/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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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4·3을 겪으며 제주어가 퇴색해 애순이도, 관식이도 서울 방언을 사용했단 주장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드라마 배경이 되는 1960~70년대만 해도 제주 사람끼리는 자연스레 제주어를 사용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다만 육지 사람을 만날 땐 달랐다. 맘껏 '어멍'(어미니)을 "어멍"으로 부르지 못하고 '아방'(아버지)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제주섬 밖에선 굳이 '제주 사람'을 드러내지 않고 서울 방언을 썼다는 증언이 많다.
이에 대해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 이후 제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주 사람들은 육지에 가서도 당당히 말을 못 했다"며 "당시 정부는 대량 학살을 덮기 위해 공산폭동을 진압했다고 누명을 씌웠다. 억울한 죽음인데도 드러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양 전 이사장은 "본래 섬과 육지의 갈등도 있겠지만 이념적 문제까지 끼어들었던 것”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무고한 희생에 이어 유가족들에게 대물림된 연좌제의 족쇄, '빨갱이 섬'이란 누명 등은 오랜 시간 '제주'를 숨기고 '4·3'을 가슴에 묻게 했다.
3일 제주에선 '77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다. 이날만큼은 그 시대를 견뎌온 우리의 '애순이' 어멍, '관식이' 아방에게 "폭싹 속았수다(매우 수고하셨습니다)"고 크게 인사해 보는 건 어떨까.
gw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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