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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재난문자 대신 방송” 초고속 산불속 고령자 대피 매뉴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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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최악 산불 계기로 TF 구성

초고령화 지역 방재 시스템 개선
동아일보

1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가 되어 있다. 2025.04.01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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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역대 최악의 산불을 계기로 ‘초고속 산불 대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초고령화가 진행 중인 산불 발생 지역의 재난 대응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보기로 했다. 특히 고령층에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재난문자 대신 라디오, 마을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경보 방식도 확대할 방침이다.

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산림청, 기상청은 지난달 말 공동으로 ‘초고속 산불 대피 TF’를 구성했다. 정부는 기후변화로 인해 봄철이 갈수록 고온건조해지고 대기 불안정으로 강풍도 심해지면서 전례 없이 빠르게 확산하는 산불을 ‘초고속 산불’로 정의했다.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시속 8.2km로 확산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불 통계가 공식 집계된 이래 가장 빠른 속도다. 종전 기록은 2019년 강원 속초·고성에서 발생한 시속 5.2km였다.

행안부 관계자는 “초고속 산불은 발생 초기 대응 속도가 관건”이라며 “산불 징후가 보이기만 해도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들과 함께 대피 매뉴얼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TF는 조속히 매뉴얼을 완성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통해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산불의 ‘초고속화’ 현상이 심화되는 반면에 산불 발생 지역은 ‘초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대응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의성군의 경우 지난달 주민등록인구는 4만8456명인데, 이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만3315명으로 전체의 48%에 달한다. 2023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산출한 지방소멸위험지수에서 전국 1위를 기록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산불이 지나간 의성, 안동, 영양, 영덕 등 4개 시군 모두 인구 감소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휴대전화 조작에 익숙지 않은 디지털 소외계층이 대부분이다. 이번 산불 때도 많은 고령 주민이 재난 문자를 제때 확인하지 못했고, 그 사이 강풍을 타고 ‘비화(飛火·불씨가 날아가 번지는 현상)’가 번지며 불길이 대피 속도보다 빠르게 확산됐다.

행안부는 TF를 통해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재난예·경보책 구축에 착수했다. 문자에 국한된 기존 재난 알림 체계에서 벗어나 라디오와 TV, 마을 방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위기 상황을 전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할 계획이다. 풍수해 대응 때처럼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한 산불 대비 순찰 체계도 구축할 방침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다매체 재난경보 방식의 활용 범위와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리해 매뉴얼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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