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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땐 직원 보너스 더” “소프트웨어가 돈 돼”…SK, 선대회장 ‘선경실록’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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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 유고 27년 만에 공개
육성파일·영상·사진자료 등
13만여점의 데이터 디지털化

“플로피디스크만 팔면 1달러
소프트웨어 담아 팔면 20배”
미래산업 선견지명 등 담겨


매일경제

1998년 1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최종현 SK 선대회장(왼쪽 넷째).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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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리얼리티를 걷는 기업가들이니까 불안 요소 때문에 괜히 우리(기업인)까지 들뜰 필요는 없다고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정치가 불안할수록 경제까지 망가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경제가 나빠지지 않는다는 거야.”

1980년대 중반,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별안간에 예측도 못했던 중대한 정치 사안이 생겨도 우리나라는 수습이 빨라”라며 이렇게 말했다. 정치 불안으로 경제가 흔들릴 것이란 당시 우려에 대해 최 선대회장이 직접 임원들에게 흔들림 없는 경영 매진을 주문한 것이다.

1970~199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이끈 주역인 최 선대회장의 경영철학 등을 담은 이른바 ‘선경실록’이 유고 27년 만에 공개됐다. SK는 그룹 수장고 등에 장기 보관해온 최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기업활동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해 보존·활용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지난달 말 완료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3년 ‘창사 70주년 어록집’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과거 자료의 역사적 가치를 확인한 후 추진돼 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복원된 자료는 오디오·비디오 5300건, 문서 3500건, 사진 4800건 등 13만1647점에 달한다. 특히 최 선대회장이 직접 남긴 오디오 테이프는 3530개로, 하루에 8시간씩 들어도 1년 넘게 걸리는 분량이다. SK는 그가 실적 보고, 간담회, 회의 등 그룹의 주요 활동을 녹음해 경영철학을 정립하고자 했으며 이는 SK 고유의 기록 문화로 계승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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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최종현 SK 선대회장(왼쪽 가운데 흰 셔츠차림)이 환하게 웃고 있다. 최 회장의 오른쪽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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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복원된 자료에는 SK 고유의 경영관리체계(SKMS) 정립 과정, 중요 의사 결정 순간의 토론, 국내외 저명 인사와의 대담 내용 등도 상세히 담겼다. 당시 경제 상황, 기업인의 책임감, 위기 돌파 의지가 최 선대회장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달된다.

1982년 신입 구성원과의 대화에서 최 선대회장은 “미국도 인재라면 외국인도 쓰는 마당에 한국처럼 좁은 나라에서 지연·학연·파벌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하며 관계 중심 문화를 비판했다. 1989년에는 “이익이 나면 특별 보너스를 100%, 200%, 500%까지도 줄 수 있다”며 “노사가 함께 이득을 공유하는 화합의 경영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연구개발(R&D) 철학과 선견지명도 드러났다. 최 선대회장은 1992년 임원 간담회에서 “R&D를 하는 직원도 시장 관리부터 마케팅까지 해보며 돈이 모이는 곳, 고객이 찾는 기술을 알아야 R&D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다른 회의에서도 “하드웨어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며 “플로피디스크를 팔면 1달러지만, 안에 소프트웨어를 담으면 가치는 20배가 된다”고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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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최종현 SK 선대회장(왼쪽)이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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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성장 과정도 최 선대회장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 선대회장의 기록에는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중동 고위 관계자와의 석유 공급 담판, 1992년 이동통신사업권을 반납할 때 구성원을 격려하는 육성 등 SK 성장의 결정적 순간도 포함됐다. 아울러 외국 담배 회사의 협업 제안을 “비즈니스는 신용”이라며 거절한 일화, 그룹 총수들과의 산업 시찰 대화, 김장김치 보관법까지 다양한 주제가 남아 있다.

SK 관계자는 “고인의 기록은 한국 경제의 역동기를 이끈 기업가들의 고민과 철학을 담은 보물 같은 자료”라며 “복원이 쉽지 않았지만 첨단 기술로 품질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SK는 이번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를 그룹 철학인 SKMS와 수펙스 추구 문화 확산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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