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순 장편소설 '컨설턴트'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면 책을 펼친다. 신간을 읽기도 하지만 주로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펼치곤 한다. 그러니까 글은 매일 잘 안 써지고 나는 매일 예전에 읽었던 책을 또 읽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엔 더욱 글쓰기가 힘든데, 바로 장편소설 쓰기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을 쓰던 것과는 모든 것이 다르기에 컴퓨터를 켜기가 무섭다. 글은 예전보다 더 자주 안 써지고 그럴 땐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 읽으므로 요즘 내 책상엔 다른 작가들이 출판한 장편소설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임성순의 '컨설턴트'도 장편소설 더미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컨설턴트'는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불행들을 누적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킬러의 이야기다. 이 킬러는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한 뒤 그 일상을 아주 사소한 부분을 비틀어두는 것이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대상은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지만 결국엔 죽음에 이르고 만다.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게티이미지뱅크 |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면 책을 펼친다. 신간을 읽기도 하지만 주로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펼치곤 한다. 그러니까 글은 매일 잘 안 써지고 나는 매일 예전에 읽었던 책을 또 읽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엔 더욱 글쓰기가 힘든데, 바로 장편소설 쓰기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을 쓰던 것과는 모든 것이 다르기에 컴퓨터를 켜기가 무섭다. 글은 예전보다 더 자주 안 써지고 그럴 땐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 읽으므로 요즘 내 책상엔 다른 작가들이 출판한 장편소설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임성순의 '컨설턴트'도 장편소설 더미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컨설턴트'는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불행들을 누적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킬러의 이야기다. 이 킬러는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한 뒤 그 일상을 아주 사소한 부분을 비틀어두는 것이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대상은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지만 결국엔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왜 계속 들춰보는 것일까? 작법서를 들여다보며 소설을 설계해야 할 시간에.
이 소설의 마지막은 킬러인 주인공이 인간 개인 자체가 거대한 구조 속에 숨어서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목격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목격에 불과해서 개인은 어쩌면 존재하는 내내 잔인할 것이고 내내 자신의 가혹성을 모르게 될 것이다. 사회라는 큰 구조 안에서 개인이 겪는 작은 불행들은 무의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컨설턴트·임성순 지음·은행나무 발행·296쪽·1만7,000원 |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소설을 쓰는 동안 일종의 컨설턴트가 되는 기분이다. 그들의 일상을 재배치하고 그것으로 인해 어떠한 장면으로 이끌어가는. 어느 날은 대사를, 어느 날은 장면의 순서를, 또 어떤 날은 인물의 성격을 아주 조금씩 비틀어본다. 변화는 미미하지만, 그 작은 차이들이 결국 이야기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런데 나는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겁하더라도 구조 속에 숨어서 매일의 사소한 불행을 지나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들은 때론 누군가에게 잔혹할 테지만 그들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일상을 살아갈 뿐일 것이다. 때론 자신의 가혹성에 놀라면서, 하지만 곧 잊으면서.
나는 '컨설턴트'의 킬러처럼 내가 만들어낸 구조를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으면서 그저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본다. 등장인물들의 하루를 관찰하고 그들의 사소한 행복과 불행을 짚어간다. 어쩔 때 나는 그들이 아주 천천히 무너지는 걸 본다. 하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이 맞이하는 일상 속 균열에 조금의 숨구멍을 남기는 것뿐이다. 나 또한 소설을 쓰고 있는 개인에 불과하기 때문이고 어쩌면 이야기라는 구조 뒤에 숨어서 언제든 비겁해지고야 말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를 덮고 나면 다시 나의 소설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해 무너지는 세계, 그러나 그 안에 작은 숨구멍 하나쯤은 남기고 싶은 이야기. 그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고, 내가 이토록 자주 이 책을 펼쳐보는 이유다. 구조 속에 숨어서 비겁해지지 않기. 마지막 주인공의 깨달음처럼 그것이 나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송지현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