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상법개정 '운명의 시간'(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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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회의서 논의 없었다…상법 개정→자본시장법 개정 물러섰던 정부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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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 주요 내용/그래픽=이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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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자며 상법 개정의 의지를 밝힌 건 정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초 한국거래소를 찾아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곧이어 지난해 3월 정부는 상법 개정 이슈를 주도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외국 투자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중량감있는 고위 인사들이 상법 개정 필요성을 연이어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6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편집인 포럼에서 정부의 상법 개정 움직임을 두고 기업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기업에서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건설적인 논의가 중요하다"며 "건설적인 논의를 하면 지배구조 개선으로 합의가 모일 것"이라고 밝혔다.
상법과 자본시장법 중 어떤 법을 개정할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부터 상법 개정에 대한 정부 의지가 후퇴했단 해석이 나왔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 대상이 상장 기업으로 축소된다.
◇ 정부, 상법 개정 →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선회
이후 정부 공식 입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정리됐다.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활동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단 점을 고려한 결과였다. 특히 12·3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 속 글로벌 관세전쟁까지 현실화하며 기업 경영 리스크가 한층 커진 시점에서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옥죄는 규제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상장법인이 합병, 분할 등 자본시장법 165조의4에 규정된 행위를 할 때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게 골자다.
비상장사를 포함해 모든 기업이 대상인 상법 개정안과 달리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으로 법 적용 대상이 축소되고 이사회의 주주 보호 노력도 합병이나 분할 같은 행위를 할 때로 한정된다.
이와관련 최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 말고 주주를 포함하느냐의 문제는 많은 법학자들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며 "당장 시급한 것은 자본시장 법령을 고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9인, 찬성 184인, 반대 91인, 기권 4인으로 가결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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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법 개정안 통과 후 신중한 정부
정부는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와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빗발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크지만 상법 개정을 바라는 일반 주주들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정부 고민이 깊다는 분석이다.
정부 내 이견도 확인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공개적으로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주식·외환시장이 같이 흔들리게 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금융위 입장은 다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개정하는 내용의 선의를 달성할 수 있느냐를 봤을 때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신중론을 유지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 상법 소관부처인 법무부의 판단이 우선이라는 게 내부 분위기다.
다만 거시경제·금융당국 수장들간 협의체인 이른바 'F4 회의'에선 상법 개정과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정부 내 갑론을박으로 상법 개정의 운명이 흐릿해진 가운데 공은 이제 막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넘어간 상태다.
한 권한대행는 상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6개월 전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경영 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병존한다"며 "정부가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있고 경영 환경 위축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면서도 주주를 보호할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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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걸겠다" 거침없는 이복현…금감원이 '상법개정' 찬성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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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업·주주 상생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열린 토론'에서 정우용 한국상장사협회 부회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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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이 최근 연일 상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법개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직을 걸어서라도 반대한다고 나서는가 하면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에 공개토론을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이같은 발언이 과도하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이 원장은 "임명 초기부터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추진에 노력해온 사람"이라며 신념을 나타냈다.
이 원장이 상법개정 찬성에 강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자본시장 선진화와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밸류업이 자본시장 화두로 떠오른 시기 상법개정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인물이 이 원장이었다. 상법개정 찬반 여론이 거센 시기에도 정부 관계자 중 이 원장만 전면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월 현직 대통령 최초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상법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이후 이 원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원장은 같은해 6월 자본시장연구원 등 학계를 주축으로 정책세미나를 열고 상법개정의 필요성을 화두로 제시했다.
정부가 상법개정 대안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놓은 이후 말을 아끼던 이 원장은 상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난 13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상법개정)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해서는 직을 걸고라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당은 본회의 문턱을 넘을 경우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 원장은 그동안 입장 변화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다가, 상법개정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같은 의견을 밝힌 것이다.
그는 26일에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현실적으로 한국 경제성장이 대기업 중심으로 돼 있고 국가 경제에 기여한 건 맞으니 (재계) 의견을 고려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며 "지금은 어떤 법안이 더 나은가 하는 이슈가 아니라, 이미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는 지금 상황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 원장은 임명 초기부터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도 "(재의요구권 행사로) 원점으로 돌리면 나중에 대통령께서 돌아오셨을 때 어떻게 자본 선진화 이슈를 저희 목소리로 추진하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저는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자본시장 선진화, 지배구조 선진화 이슈를 추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직을 걸겠다는 표현은 과도하다. 월권이다"라는 정치권의 비판에도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 상법개정이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지적한 데에는 "가짜뉴스"라고 표현하고, 보도설명 자료까지 내며 반박했다. 그는 "주주충실 의무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다"며 "해외투자자들이 자기 나라에도 없는 규제를 굳이 한국에 도입해 달라고 얘기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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