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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면 싸지는 희한한 중국경매…그래도 '0.6초 낙찰' 주인공은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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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윈난 쿤밍 꽃거래소 현장 르포…
가격 낮아지는 독특한 경매, 수천명 입찰 열기
시진핑 주석도 꽃시장 방문 '시장 확대' 의지

중국 남부 윈난성 쿤밍에 위치한 쿤밍국제꽃경매거래센터(KIFA). 기자가 찾은 19일 오후에도 자정부터 오전까지인 피크시간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물류차량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사진=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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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베이징을 떠나 닿은 중국 남부 윈난성 성도 쿤밍의 차가운 바람은 생경했다. 남쪽으로 한참 내려왔음에도 기온은 최저 7도 안팎. 고지대인 탓에 연중 봄 수준인 '춘성'(봄의 도시) 이곳의 기온은 쿤밍을 세계 최대 꽃 생산국가 중국에서도 수요의 70%를 책임지는 기지로 만들었다. 기자가 간 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윈난성의 리장 꽃시장을 깜짝 방문했다. 중국에서 시 주석 방문은 '키우라'는 강력한 지시다. AI(인공지능)와 로봇에 시선이 온통 쏠린 가운데서도 꽃 산업에 대해 육성 의지를 밝힌 셈이다.


경매가 점점 떨어지는 희한한 경매...고가 낙찰되면 다음 입찰에 가격↑


쿤밍국제꽃경매거래센터(KIFA) 거래장의 모습. 온통 너울거리는 꽃의 바다였지만 현지 직원은 "바닥이 보이면 한가한 상태"라고 했다. /사진=우경희 기자"안에 들어가면 더 추워요." 지난 19일 찾은 쿤밍국제화훼경매소(KIFA)를 소개하던 현지인 직원의 말에 외투 지퍼를 여몄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일체 난방이 없다. 취급 품목이 생화, 그 중에도 이미 밑둥을 자른 최종 상품 격인 '절화'이기 때문이다. 신선도 최우선이다.

경매 방식도 여느 상품과 달리 속도가 생명이다. 몇 푼 더 받으려 실랑이하다 상품이 상하면 손해다. 그래서 개발된 게 가격이 점점 떨어지는 네덜란드식 시계경매(dutch auction)고, 쿤밍경매소도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신속 낙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경매소 면적은 축구장 22개를 붙여놓은 16만㎡에 달했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실제 꽃 상품이 입고되고 팔려나가는 '거래장'이었다. 오후 세 시를 전후한 시점에도 거래장은 너울거리는 꽃의 바다였다. 현지 직원은 그러나 "가장 복잡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10분의 1 정도 수준"이라며 "빈 바닥이 안 보여야 정상"이라고 했다. 자정 전후엔 경매소는 물론 인근 도로까지 말 그대로 꽃과 차량으로 가득찬다. 최근 30%가 전자상거래로 대체되면서 현장의 숨통이 좀 트였다. 경매인들 외에 대기업 수요로 빠져나가는 도매물량도 매년 늘어난다.

경매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단연 국제회의장을 방불케 하는 규모와 시스템의 경매홀이었다. 오후경매에 참여한 경매사는 약 900여명. 새벽경매엔 중국 전역에서 보통 2000여명 정도가, 성수기엔 최대 5000여명의 경매사가 몰려든다.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상품이 소개되자 경매석에서 일제히 시계가 돌아가고 초 단위 눈치작전이 시작됐다. 최초 입찰가는 경매소에서 설정하는데, 이 입찰가에서 역으로 가격이 떨어진다. 싸지기를 기다리다간 경쟁자가 제품을 채 가기 일쑤다. 빠르면 0.6초 만에 낙찰되는 경우도 있다.

실시간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독특한 경매화면. 적정 가격에 클릭해 입찰하면 되는데, 빠른 경우엔 0.6초만에 낙찰되기도 한다. /사진=우경희 기자보통 경쟁을 통해 가격을 올리는 게 경매의 본령 아닌가. 의아함도 잠시, 입찰가와 비슷하게 낙찰된 상품은 다음 경매에서 자동으로 입찰가가 올랐다. 하향 경매지만 제품만 경쟁력 있다면 가격이 계속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지 직원은 "꽃 가격이 주식시장처럼 움직인다"고 했다. 하루 무려 500만송이, 한화 약 10억원어치가 거래되는 경매소다. 빠른 낙찰과 수요를 반영한 가격 등락을 모두 충족시키는, 최고의 효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경매 방식이라는 설명이 이해됐다.

시장성만 놓고 보면 '꽃 중의 왕'은 단연 장미다. 쿤밍거래소에서 거래되는 2000여종의 절화 중에도 품종별로 보면 90% 이상이 장미다. 실제 장미 외 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쿤밍뿐 아니다. 장미가 많이 재배되고 거래되는 시장이 주요 꽃 시장이다. 쿤밍이 속한 중국 윈난성과 유럽의 네덜란드, 남미의 에콰도르(내지는 콜롬비아), 아프리카 케냐 등이 세계 4대 꽃시장으로 손꼽히는데 모두 주력이 장미다. 튤립이 국가 상징이며, 전국 꽃 재배지의 46.4%에서 튤립을 키우는 네덜란드 시장에서도 가장 많이 매매되는 건 역시 장미다.


중국 꽃산업 더 커진다...한국향 수출도 늘어날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기자가 쿤밍경매장을 방문한 19일 인근 리장 꽃시장을 방문했다./사진=현지언론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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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꽃' 장미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다. 문화적이고 경제적이며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 장미는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상징으로 소비된다. 사랑과 열정, 우정은 물론 때로는 추모에도 쓰인다. 쿤밍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가 음력설(춘제)을 제외하고 중국에서 연인의 날 격인 7월 칠석날 하루만 쉬는데, 그 전날이 연중 가장 바쁜 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얗게 불태우고 휴장한다는 건데, 칠석을 앞두고 압도적으로 많이 낙찰되는 꽃이 바로 장미다.

또 장미는 일반적인 붉은색 외에도 분홍과 흰색, 노랑 등 다양한 색으로 소비자 취향에 소구한다. 소형부터 대형까지 품종도 다양하다. 전세계 어디서나 재배 가능하다. 온실과 노지 재배에 모두 적합하다. 가공장미나 향수 원료로도 사용돼 산업적으로 소비될 여지가 많다. 이렇다 보니 재배기술과 인프라 투자도 집중된다. 가장 싸게 생산해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게 장미다. 심지어 저온유통에 강하기까지 하다.

이 장미를 앞세워 중국이 꽃 수출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다.



중국 국가통계국과 농촌통계연보 등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꽃 무역량은 11만7900톤, 4억7900만달러(약 7033억원)였다. 2022년 중국 화훼 총생산액이 1206억위안(약 24조원)에 달했음을 감안하면 수출 물량은 아직 적다. 그럼에도 2015년에 비해 무역량 40.6%, 금액은 66.0% 늘었다. 매년 큰 폭 흑자를 기록하는 건 물론이다.

한국의 연간 꽃 시장은 약 7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한국향 꽃 수출 물량을 정확히 공개하진 않고 있지만 상당 부분이 한국으로 수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쿤밍거래소 측에서 공개한 실시간 낙찰 통계화면을 보면 남부 광둥(광동)성을 제외하면 모두 북동부 상하이나 산둥(산동)성 지역으로 낙찰과 납품이 집중됐다. 동행한 한국인 사업가는 "바닷가라고 특별히 꽃을 더 많이 소비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광둥성 물량은 대부분 일본으로, 산둥성 인근 물량은 대부분 한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꽃 산업 투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기자가 쿤밍거래소를 찾은 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같은 윈난성 내 주요 도시인 리장을 찾았다.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순시였는데 일정에 꽃시장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의 직접 방문은 꽃 사업을 키우라는 가장 명확한 지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23년 5월, 오는 2035년을 종점으로 하는 '전국 화훼업발전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연간 화훼 매출 7000억위안(약 141조원)이 일단 목표다.

쿤밍(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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