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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3일 그날, 혐오가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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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그날, 혐오가 풀려났다

[양성홍/제주4·3 행방불명인 유족 협의회장]
"(제주4·3 사건이) 계엄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거는 이제 알고 있지만, 지금도 저런 사람이 있나…"

[윤석열 대통령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정순희/제주4·3 피해자]
"여기(강정마을)서 서귀포 가는 것도 저 계엄령 때는 10시나 9시나 되면 못 갔어. 저거 또 4.3처럼 하려는구나. 막 겁나서 그날 못 잤어."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아이고, 겁나. 군인들은 다 저기에 깔려있고 동네에도 깔려있고 순경인지 군인인지 뭐…"

[김충림/제주4·3 피해자]
"뇌리에 박혀 있는 건 그 4.3 사건 때의 그 계엄 하에서 이런 처참한 희생을 당했던 것을 여기에 박혀서…"

"앞에는 좌익 빨갱이 불공정 재판관들 쭉 앉아있고···"

"빨갱이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끝을 보겠습니다!"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입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국가의 권력과 혐오가 결합한 폭력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가 되살아나려는 조짐을 드러낸 현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김정인, 임상재 기자 나와 있습니다.

김 기자, 12.3 계엄 사태가 터진지 벌써 100일이 넘어 이제 좀 있으면 넉 달이 됩니다.

◀ 김정인 ▶

네, 약 열흘 뒤 4월 3일이면 4개월이 됩니다.

이날은 제주 4.3 사건이 발생한지 77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학살된 비극, 특히나 많은 희생이 발생한 건 1948년 이승만 정부의 계엄 선포 직후였습니다.

■ 77년 전 4월 3일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이런 팽나무(였어요). 그건 크게, 이거보단 더 컸어요."

제주도 북쪽 애월읍 하귀리의 비학동산.

커다란 나무를 벤 자리에 들어선 마을회관 터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저 산이다. 저 뒤로 그냥 (군인이) 쫙 깔렸어요, 그냥."

1948년 12월 10일.

이제는 여든넷 할머니가 된 일곱 살 소녀에게 그날은 너무나도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경찰과 군인들은 주민들을 비학동산으로 모았습니다.

어머니가 줄에 묶였고 소녀와 세 동생은 그 품에 안겨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나무를 하러 간 건데 군인들은 아버지가 '도피자'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아버지가) 나무하러 갔다고 한 사람만 거기 가족들은 다 묶어. 우리 다 묶으니까 우리 아기도 울고, 다 울고 그냥 막 어머니한테만 매달려. 우리 어머니 하는 말이 한쪽 팔만 묶어달래. 도망 안 갈 테니. '이 아기들 놔두고 어디 도망가지느냐'고 하니까 한쪽 팔만 묶은 거야."

그리고, 학살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은 임산부를 팽나무에 매달아, 대검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똑바로 보라고 다그쳤습니다.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임산부) 배는 이렇게 불렀는데 늦게 나왔다고 막 그냥 그 배를 이렇게 묶어가지고 끈 위에 탁하고 저 나무 위에 끈 매달아서 팍팍 당겨. 이렇게 옷 다 벗겨놓고. 그것도 그 나무에 칼 같은 거, 찌르는 거 '철창' 이런 걸로 콱하고 찌르고. 너무 무서워, 나. 그때는 무슨 '탁탁탁' 입이 (떨려), 그걸 보니까. 나 그때 7살이요. '잘 안 보면 때려 죽인다' 하면서 탁 하면서 때리고."

이날 비학동산에서 36명이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여기서 이쪽으로 시작해 저기까지 죽여가면, 총 들어서 '타닥' 이렇게 해가지고 '팍'하면 팽팽팽팽 뒹굴더라고, 총 맞으면. 막 뒹굴어가면, 시체를 이 길 건너 저 밭에 던져 놨지."

제주 4.3 사건.

시작은 1947년 3월 1일이었습니다.

시내에서 열린 3.1절 행사를 마치고 이어진 가두 시위에서 꼬마 아이가 기마경찰에 치였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하자, 경찰은 이들에게 실탄을 쐈습니다.

[김종민/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가두시위에서) 꼬마를 (기마경찰의) 말발굽이 쳐서 쓰러지게 됐는데 그걸 어떻게 구제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니까 이제 그때 민중들이 폭발을 한 거예요. (경찰이) 발포를 해서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죠."

이 사건을 계기로 총파업이 시작됐고 미 군정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습니다.

육지의 경찰이 파견되고 극우 단체인 서북청년단이 앞장서서 테러를 일삼았습니다.

결국 1948년 4월 3일, 제주 남로당 무장대가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습격하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 해 10월, 갓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해안선부터 5km 이외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을 금지한다', '위반하는 자는 총살한다'.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팀장]
"해안에서 5km 이상은 제주도는 다 마을이에요. 중산간 마을이라고 불리어지는. 그럼 일상적인 마을이 다 이제 어느 순간 이제 적성 지역으로 이제 빨갱이들이 이제 출몰하는 곳으로 이제 낙인 찍히는 거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거였죠."

이어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중산간 지역 전체를 초토화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김종민/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대통령은 법률에 의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라고 딱 규정이 돼 있는데 계엄법이 없거든요. 계엄법도 없으니 그냥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는 거를 그냥 계엄법으로 생각을 한 거예요."

군과 경찰,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토벌대는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학살의 대부분은 계엄 직후 4개월 동안 집중됐습니다.

사람들은 산으로, 굴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세계 최장 용암동굴인 제주 애월 빌레못 굴.

성인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입구를 지나면 길이 1만1749미터의 굴이 이어집니다.

"미로가 많아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려운 굴입니다."

4.3사건 당시 마을 주민 29명이 이 굴로 숨어들었다가 몰살됐습니다.

김충림 씨의 어머니 가족들도 희생됐습니다.

경찰은 네 살 아기까지 죽였습니다.

[김충림/제주4·3 피해자]
"여기 피신했다가 나오면 살려 준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오자마자 여기서 다 사살시켰죠. 어린 아기들은 이 발목을 잡고 이 바위에 메쳐서 뭐 산산조각 돼버리거나 핏덩이로 흩어져 버렸는데…"

당시 경찰에 잡히지 않았던 사촌 동생과 외숙모는 20년 뒤 굴 깊은 곳에서 유해로 발견됐습니다.

[김충림/시인 (<누이의 무덤> 낭독)]
"어른과 어린이가 나란히 누운 백골 시신. 그 옆에 신기하게도 남겨진 누이 고무신 흔적. 얼마나 살고파서 찾아든 굴속이었나. 딸애를 살리고픈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 옆에 조그마한 아이 무덤. 살았으면 팔순이 되는 누이가 누워 있네."

한때는 제주도 말로 서로 '삼춘'이라 부르던 이웃들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김광현/김충림 씨 (제주4·3 피해자) 아들]
"아기가 빌레못굴에서 발목이 잡혀서 돌에 메쳐가지고 살점이 다 뜯어지고, 뼈가 흩어져가지고, 그걸 수습을 하시는데 그 수습도 잘 안돼가지고. 그 내용을 알았을 때, 제가… 근데 그 가해자가 참 아이러니하게요. 아시는 분이에요. 저희 할머니께서 식당을 운영을 하셨었는데, 오셔서 무전취식을 하시는 경찰이었답니다. 근데 그런 경찰이,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그렇게 했다는 것 자체가."

100곳이 넘는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고 7년 7개월 동안 살해된 사람은 신고된 규모만 1만 5천명에 달했습니다.

실제 희생자 수는 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빨갱이 사냥'을 빙자한 마구잡이 학살.

현대사에서 한국 전쟁 다음으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입니다.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팀장]
"(남로당 무장대가) 최대였을 때가 3백명이었으면, 그분들의 이제 동조 세력이나 이런 사람들을 아무리 확대한다 해도 천 명을 넘을 수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그 생각하거든요. 근데 제주 희생자가 3만 명이었고, 당시 제주 인구가 30만이었으니까 딱 10%인데, 이거는 그냥 학살이죠."

◀ 이휘준 ▶

도민의 1/10이 숨졌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 이웃이나 친구들이 겪은 평범한 제주 사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비극이었을 것 같습니다.

◀ 김정인 ▶

그래서 이들은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4.3과 쉽게 작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12.3 계엄 직후 일고 있는 혐오의 정서는 더욱 안타깝고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죽은 척하고 살아야 된다."

[홍순공/제주4·3 피해자]
"몸이 떨리는 기분이라 말 못 해. 4·3사건 말만 하면… 어휴, 너무 겁이 나."

4.3을 겪고 버텨온 할머니들이 직접 털어놓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목소리들' 토산리 학살의 생존자는 누군가 그 날의 일을 물으면, 가슴 속 응어리를 겨우겨우 토해냈습니다.

[김은순/제주4·3 피해자]
"우리 성도 죽지 아니할 건디… 죽지 아니할 건디… 아이고, 아이고, 데려가 죽여 버렸어."

'빨갱이'라는 혐오와 국가 권력이 결합한 비극이 남긴 상처는 깊고도 길었습니다.

서북청년단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한 정순희 할머니.

"이거 있잖아. 이거 이거. 여기 딱 묶었다."

오빠가 흔적을 감췄다는 이유때문이었습니다.

[정순희/제주4·3 피해자]
"거꾸로 세웠다가 머리를 이렇게 탕탕했다가 이렇게 다 하다가 지치면 주전자로 물, 고춧가루 타서 그 작은 입 이렇게 하니까 그 물이 안 들어가. 그래서 줄줄 흐르면 여기 딱 어떤 걸로 벌려서 막 물 들어가면, 배가 빵빵하면 빵빵하면 숨이 막힌 것 같아. 어떻게 할 줄 모르면, 쓰러지면 막 바가지로 물을 부으니까…"

그들은 눈앞에서 어머니를 총살했습니다.

[정순희/제주4·3 피해자]
"(어머니를) 눈앞에서 죽이면서 똑똑히 보래, 잘 보래. 밤에 눈 깜빡만 하면 생각나. <너무 괴로우시겠어요.> 밤에 잘 자면 1시간, 아니면 반 시간도 못 자. 그것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잊어버리는 것을 못해."

이들은 강요된 침묵 속에 긴 세월을 버티며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야 했습니다.

젊은 남성들은 죽거나 형무소로 끌려갔고, 무너진 마을을 일으킨 건 여성들이었습니다.

[김용렬/제주4·3 피해자]
"어머니 맨날 나무하러. 나무하러 가버리면 어두컴컴해서 오고 하니까. 우리 어머니는 그런 거 잘했어요. 밭 갈고. 뭐 못 하는 것이 없었지."

어머니는 젖이 나오지 않아 아기가 죽자, 길가에 아기를 묻고 다시 일을 하러 갔습니다.

[김용렬/제주4·3 피해자]
"눈치가 이상해. 아기도 없어져 버리고. 그래서 어디서 이렇게 숨어서, 길가 옆에 가서 파묻는 거 봤지. (어머니가) '지금 우리 아기 걱정도 할 때가 아니야, 다 죽을지도 모른다.'"

7천 5백여 명의 4.3 피해자들을 취재했던 기자는 가족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는 그들의 조용한 몸부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종민/4.3재단 이사장 (전 제민일보 기자)]
"젊은 부인이 남편을 찾기 위해서. 근데 그때의 소문이 형무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무서워서 고향으로 곧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닷일을 하면서 산다고 하더라'는 소문을 들은 거예요. 부산부터 포항까지 또는 울산까지. 그 바닷가마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렇게 몇 년 동안 하니까 저기 강원도 휴전선 근처에 주문진이라는 곳까지 갔었다는 거예요. 결국 어떻게 작별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또 어떤 분은 비록 돌아가신 시신이지만, 시신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신을 하나하나 다 이렇게 확인하는 거예요. 이 아주머니는 그 시신을 만졌던 손으로 막 눈물 닦고 하다 보니까 이 균이 들어가서 눈이 멀어버렸어요."

[한강/작가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국민학교 운동장을 헤매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은 여전히 실종된 피붙이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고모님, 할아버지 왔수다."

어렸던 딸은 고달픈 세월을 다 견디고 나서야 아버지의 뼈 한 줌을 손에 받아들었습니다.

1949년 7월 붙잡혀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가 75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아버지.

지난 2019년 광주교도소 무연분묘에서 유해 261구가 발굴됐는데, 기적처럼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양두영/고 양천종 씨(제주4.3 피해자) 딸]
"고생 고생하다가 맞아 죽었는지 굶어 죽었는지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휴, 맨날 맨날 걱정했는데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왔수다, 우리 땅에."

상처를 보듬으려는 국가의 노력은 수십년이 지나서야 시작됐습니다.

지난 2003년 정부는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설은 근거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노무현/당시 대통령 (제주4·3 사건 첫 공식 사과, 2003년 10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1년 국회는 '4.3 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검찰은 과거의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억울한 이들을 재심에 넘겨, 무죄를 구형하고 있습니다.

[진양자/고 진희인 씨(제주4·3 수형인) 딸 (2023년 1월)]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걸로 돌아가셨다는 걸, 잡혀갔다는 걸 알았죠. 근데 지금까지 그 누명을 벗기고 싶었지만 가진 것도 없고."

[윤만석/고 윤용혁 씨(제주4·3 수형인) 조카 (2024년 6월)]
"사람들 다 모아놓고 총··· 총살을 시켜요. 그리고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는 육지로 나갔어요. 형무소에. 그리고 내 어머니하고 저기 동생 하나는 관덕정에 잡아갔어요. 그래서 동네는 뭐 엉망이죠, 엉망."

[방선옥/제주4·3사건 전담재판부 부장 판사 (2024년 6월)]
"(제주에 부임해서) 처음 갔던 곳이 빌레못굴이었거든요. '4·3 때 이분들이 이 길을 추운데 그때 이렇게 걸어갔겠구나'라고 하면서··· '참 힘든 삶을 살아오셨다'라고 위로합니다. 주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지금까지 2천 명이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여며가던 상처를 다시 후벼파는 세력들이 등장했습니다.

2023년 제주 4.3 추념식.

시내엔 큰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 심지어 4.3 사건 당시 학살과 고문을 일삼은 서북청년단의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추념식장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정함철/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장 (2023년 4월 3일)]
"대한민국에 사상의 자유가 있다면서요. 저들이 주장하잖아요, 네? 공산주의도 허용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저 사람들 아닙니까?"

[제주4·3 유족 (2023년 4월 3일)]
"내 고모할머니가 너희들 손에 죽어갔다. 너희들이 어디라고 여길 와?"

지난해 비상 계엄 직전 방첩사가 작성한 계엄 모의 문건에는 4.3 사건이 '제주 폭동'이라고 적혀있었고, 극우 세력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을 옹호하려 만든 영화도 4.3 사건을 "공산혁명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사건"으로 왜곡했습니다.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팀장]
"4·3이 진상규명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폭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폭동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여전히 그 얘기를 하면서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거나 아니면 자기들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이념적으로 4·3을 이제 이용한다거나 이런 것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 12월 10일, 계엄령 선포 일주일 뒤에도 4.3 사건 재심은 이어졌습니다.

이날 재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유족이 다시는 4.3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또 하려나 싶었습니다. 4.3때 계엄으로 인한 부당한 피해자가 생겼는데, 계엄으로 이런 재판을 또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4.3은 권력이 혐오를 악용하고 나설 때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잊지 말라고 지금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2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김종민/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그 죽은 자들의 모습과 또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지금 우리 12·3 계엄 닥쳤을 때의 이 산 자들을 도왔구나. 계엄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분들도 '아, 계엄령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런 과거. 그래서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잊어선 안 되는 것이죠. 그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

◀ 이휘준 ▶

임 기자, 1948년 계엄 국면에서 이른바 '빨갱이' 몰이가 있었다면 12.3 계엄 국면에서는 '중국인' 몰이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 임상재 ▶

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과 내란혐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윤 대통령이 중국을 막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고, 탄핵과 수사의 배후에도 중국이 있다는 음모론이 힘을 얻고 있는 건데요.

그 음모론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취재했습니다.

■ '발음을 해봐라'

100년 전 일본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잠깐, 15엔 50전이라고 말해봐라!"

조선인을 찾아내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발음을 시키는 장면은 실제로 벌어졌던 일입니다.

[다카하시 타카스케/79세, 마을 자경단장 손자 (MBC 뉴스데스크 2023년 9월 1일)]
"단어를 이쪽에서 골라서 발음을 해 보라고 했답니다. 발음을 못했다고 합니다. 역시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계엄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발음으로 중국인을 색출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정정미/헌법재판관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심판 선고, 3월 13일)]
"피청구인이 전자문서 시스템을 변경한 행위, 국회 위원회의 현장 검증 시 회의록 열람을…"

[유튜브 '2030청년일보']
"한국어와는 다른 중국식 악센트가 감지된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한국어 'ㄹ'발음을 정확히 하지 못해..."

발음을 트집잡아 헌법재판관이 중국인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는 황당한 음모론.

이들에게 외국인의 법관 임용을 허용하는 대법원 규칙이 없기 때문에 현행법상 외국인은 법관으로 임명될 수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박동찬/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혐오를 선동하고 조작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이제 구체적인 데이터, 구체적인 수치를 가지고 그걸 반박한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나의 입장에 반하는 사람, 그리고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냥 '중국스럽다, 화교스럽다' 이렇게 형용사로 둔갑된다는 거죠."

중국인에게 극단적인 적대감을 가지는 정서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당초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땐 '북한'은 등장해도 '중국'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담화, 2024년 12월 3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그런데 9일 뒤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 2024년 12월 12일)]
"지난달에는 40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정원을 촬영하다 붙잡혔습니다."

이후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가 "계엄 당일 중국인 해커 부대가 선관위에 갇혀 있었다"는 칼럼을 내면서, 중국 간첩설은 극우 유튜버를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신인균 (유튜브 '신인균의 국방TV', 2024년 12월 25일)]
"'왜 갑자기 여기에 중국인'이라는 댓글들이… '중국인 해커들은 아닌가' 이런 댓글들도 있어요."

'스카이데일리'는 "선관위 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돼 미군기지로 이송됐다"는 보도를 이어갔고 윤 대통령 측도 헌법재판소에서 이 기사를 꺼내 들었습니다.

[배진한/변호사·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 (탄핵심판 2차 변론, 1월 16일)]
"연수원에 있던 중국인들 90명이 오키나와 미군 부대 시설 내에 가서 조사를 받았고, 부정 선거에 대해서 다 자백을 했다는 그런 뉴스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허위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윤 대통령 지지집회에 출몰한 안병희 씨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안병희-스카이데일리 기자 (MBC 뉴스데스크 2월 19일)]
"<소스가 없나요 혹시?> '미정갤'에 많이 올라오잖아요. <어디요?> '미국 정치 갤러리', '디시(디시인사이드)'에. '일베'에서 퇴출당해서 지금 거기서 활동하는데 제 휴민트(비밀요원)들이 거기다 인텔(정보) 올리고 있어요. 제가 확인하면 글 지우고 이런 식으로 해서 소통하고 있어요."

안 씨는 중국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가 결국 구속됐습니다.

[안병희 (주한 중국대사관 앞, 2월 14일)]
"여기 수상해. <아, 그래요?> 말도 좀 어눌한 것 같아. <응.> 한국분 아닌거 같아. 나 얘 패도 되죠, 짱깨니까."

국방부도, 선관위도, 미군도 모두 이 기사가 거짓이라고 밝혔지만, '가짜뉴스'는 윤 대통령 지지 진영에서는 사실로 굳어졌습니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유튜브 ‘전광훈TV’, 1월 25일)]
"이 국제적인 부정선거에 개입한 나라가 중국과 그리고 한국입니다."

중앙선관위에는 "나라를 부정시키고 중국인들을 고용하고 있냐", "선거 전산 시스템이 해킹됐다", "표를 짜깁기 한 거다"라는 민원인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어디서 혹시 그런 얘기를 들으셨느냐, 어떤 관련 근거가 뭐냐'고 이제 저희들이 여쭤보면 유튜버를 보통 얘기하시거든요. 특정 유튜버, 유튜브 그 얘기를 하시면서 거기에서 봤다. 저희가 객관적으로 설명을 드리고 어떤 근거를 들어서 설명을 드린다 하더라도 좀 받아들이실 생각이 없다 보니까 좀 소통이 안 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들에게 중국은 한국 정치를 조종하는 막강한 배후 세력으로 올라섰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릴 것 같은 사람은 모조리 중국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튜브 '용만전성시대']
"어디 갔어, 어디 갔냐고… <차은경!>"

[유튜브 '어쩔아재']
"빨갱이 판사 나와! XX! 빨갱이 판사 XX 나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 차은경 판사.

'차이나타운'이 있는 인천이 고향이라는 이유로 중국인으로 몰렸습니다.

이름도 공격의 근거가 됐습니다.

내란 사건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 중앙지법 지귀연 판사에 대해서도 이름이 특이하다며 '화교' 출신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졌습니다.

[송영선/전 국회의원 (유튜브 '송영선시사360', 2월 1일)]
"이 화교 출신이 대통령을 재판해? 참지 못하는 거죠. 이거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에 화교 출신이라면 과연 공정한 재판을 해줄까. 그런 의심을 하는 이유는 지금 여러 곳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얘기…"

그러다 지 판사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를 결정하자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주옥순/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 (유튜브 ‘전광훈TV’, 3월 8일)]
"제가 외치면 따라 하십시오. 지귀연 판사 만세! <만세!> 지귀연 판사 만세! <만세!> 만세!"

[유현재/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내가 지금 하는 행동에 있어서 약간이라도 조금 반대 의견을 보이면 '중국말 해 봐 뭐 해 봐 한국말 해 봐' 이런 식으로 하면 그런 천박한 어떤 접근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도대체 2025년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일까. 논리상으로도 취약하고 팩트도 없고 그런데 본인들이 그 장사는 해야 되겠고 신념 장사잖아요. 이건 혐오 장사예요."

화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

한 상인은 중국말 쓰는 걸 조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상인]
"말 조심히 하는데요. <중국어를 말하는 것도 조금 조심스러우신 거예요?> 네네, 그런 건 조금 조심히 해요. 밖에서 (중국어로) 말하면 큰 소리 좀 나왔는데 그 말을 들은 후에 이렇게 조심해요."

얼마 전엔 누군가 화교 협회 사무실 앞까지 찾아와 위협을 가했습니다.

[주희풍/인천화교협회 부회장]
"메가폰 들고 '여기가 뭐 그 섬짱깨네야?' 이런 것도 있었고요.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그렇게 조금 심해졌어요. 화교 학교 다니는 자녀는 괜찮은데 한국 학교 다니는 자녀들이 있어요. 말은 못 하지만 아마 상당히 힘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희교/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거리에 중국인이 지나가는데 욕을 한다든지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그리고 중국과 관련된 어떤 기사가 뜨면 무조건 올라와서 비판을 한다든지 실질적으로 행동으로서 혐오를 드러내는 단계까지 가는 거죠. 이 단계는 바로 인종주의적 단계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단계에 지금 우리는 일부 세력들이 가 있는 겁니다."

◀ 이휘준 ▶

그런데 이런 허위정보, 가짜뉴스는 처음엔 탄핵과 관련된 내용으로 시작을 했다가 이제 다른 영역으로도 번지고 있지 않습니까?

◀ 임상재 ▶

네, 그러면서 '혐중' 정서를 더욱 위험한 수준에 이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결국 혐오와 차별을 사회의 주류로 올려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 혐오의 주류화

최근 퍼지고 있는 중국 국적 학생은 성적이 안 좋아도 화교 특별전형으로 서울대 의대에 갈 수 있다는 주장.

[유튜브 '뚝돌TV' (1월 21일)]
"수능 꼴등급도 서울대학교 갈 수 있는 게 화교예요. 서울대학교 가기 겁나 쉽네. 의대를. 이거 만든 놈 누구입니까? 누구긴 누구야, 간첩들이지."

하지만 화교 특별전형 제도라는 건 없습니다.

외국인 특별전형이 있기는 하지만 지난 5년간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의대에 입학한 학생은 단 7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중국과 대만 국적은 각각 2명이었고, 서울대 의대 입학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화교는 국공립 어린이집 0순위'라는 글 역시 허위정보입니다.

현행법에 규정된 우선 이용 대상은 다문화 가정, 다자녀 가구, 기초생활수급자로, 화교 우대 조항은 없습니다.

역사 문제라든지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인 한한령이라든지, 과거 반중 정서의 근거에는 실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반중 정서는 이전과 다릅니다.

[하남석/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지금의 어떤 이런 극우 세력이 특히 내란 이후로 등장하는 이런 혐중 정서는 그것이 어떤 근거가 전혀 없고 어떤 가짜뉴스 이런 거에 의존한다는 면에서는 확실히 좀 다르고요."

중국이라는 적을 설정해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옹호하고 보수를 결집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엄 불과 2주 전만 해도 중국과의 관계를 강조했던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APEC 정상회의 한중 정상회담, 2024년 11월 15일)]
"중국은 우리가 안보,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제반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중요한 국가입니다."

그런데 탄핵과 내란사태 수사 국면에 몰리자, 중국과 야당 탓을 들고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 2024년 12월 12일)]
"중국에서 입국하자마자 곧장 국정원으로 가서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형법의 간첩죄 조항을 수정하려 했지만, 거대 야당이 완강히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 야당도 간첩죄 조항 개정 법률을 6건 발의했습니다.

[정청래/국회 법사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법사위, 2월 26일)]
"언제 간첩법을 민주당이 반대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까? 공청회 일정을 잡아서 토론하자라고 해서 보류가 된 거예요. 그런데 그 이후로 내란 사태가 벌어져서 물리적으로 공청회를 할 시간이 없었어요."

김민전 의원은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이 대부분이라는 게시물을 공유했고,

[김민전/국민의힘 의원 (유튜브 '태극전사tv', 1월 2일)]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서지를 않나…."

'헌재에 중국인이 있다'는 가짜 뉴스에 나경원 의원은 외국인 채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하남석/교수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이번에 내란 사태 이후로 굉장히 우려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직접 (중국인이) 간첩 활동을 했다 이런 식으로 그것을 빌미로 해서 계엄을 벌였다라는 그런 얘기를, 여당의 정치인들이 반중 감정이 좀 올라갔다, 혐중 감정이 올라갔다고 해서 거기에 올라타서 책임지지 못할 얘기들을 지금 계속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혐오의 제동장치를 없애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안정권/유튜버]
"빨갱이 꺼져라! <야구방망이 가져왔어!>"

[유튜브 '망기토TV']
"시진핑 XXX 해봐. 중국으로 꺼져라. 짱깨는 물러가라."

[유튜브 '신 남성연대']
"마라탕탕후루후루, 탕탕후루후루 춤 한번 춰 주시죠."

4.3 사건과 같은 역사가 알려주듯 권력을 등에 업은 이같은 혐오는 폭력을 동반하는 모습으로 폭주하기 쉽습니다.

[유튜브 '김사랑 시인']
"법원 다 때려 부숴! X같은…"

"뭐 이 XX야. <잡아! 잡아!>"

[유튜브 '준치호 junchiho']
"(현수막) 불태웠다! 불태웠다!"

[윤인진/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혐오의 피라미드라고 하는 개념이 있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싫어하는 감정 이러한 낮은 단계에서 시작하지만 이것이 방치되면 마치 감기가 더 악화돼서 독감이 되고 이런 것처럼 다음 단계에서는 어떤 폭행과 같은 더 심한 단계로 나아가게 되고 이것이 마지막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어떤 집단 폭행이라든지 폭동이라든지."

그리고 언제든 또 다른 소수자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배인규/신 남성연대 대표 (이화여대 탄핵 반대 집회, 2월 26일)]
"야 너 뚱뚱이 쳐다보지 마. 비만 바이러스 옮기니까 쳐다보지 마. 쳐다보지 마"

[이화여대 졸업생 (극우세력의 이화여대 폭력 난입 규탄 기자회견, 2월 28일)]
"학생들을 향한 외모 비하와 조롱이 쏟아져 나왔고, ‘집에 가서 애나 봐라, 그래가지고 시집 가겠냐’ 등의 여성 차별적 말들은 우리의 귀를 의심케 했다."

[박동찬/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탄핵 정국이 넘어가고 또 중국이 어느 날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 대상에서 멀어진다면 그 혐오는 또 다른 소수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향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거죠. 그게 장애인을 향할 수도 있고, 여성을 향할 수도 있고, 성소수자들을 향할 수 있고."

재일 한국인이 싫다는 이유로 혐한 시위와 폭력 난동을 벌인 일본의 '재특회'.

그리고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극우적 인종주의가 모습을 바꿔 우리나라에도 급격히 퍼지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유현재/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된다'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타협도 없어요. 파쇼는 메시지보다는 '저쪽이 잘못됐어. 내가 맞아. 그런데 저 사람들 때문에 지금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네'밖에 없어요. 파쇼는 분열의 비즈니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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