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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중국 디자이너에게 전통을 강요하나? [베이징 리포트 ⑨]

매일경제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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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중국 디자이너에게 전통을 강요하나? [베이징 리포트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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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리안비스, 쳉 펭페이

(왼쪽부터) 리안비스, 쳉 펭페이


[베이징(중국)=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1일 막을 내린 2014 S/S 차이나 패션위크에서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디자이너의 집착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패션위크 후반에 열린 기성복 브랜드 리안비스(LIANVIS), 쩡 펭페이(Zeng Fengfei), 추허팅시앙(CHUHETINGXIANG)이 전통에 기초한 의상을 선보인 것.

리안비스의 디자이너 리안 후이칭은 ‘꿈의 창문’을 주제로, 중국 고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동양적 조형미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자수와 매듭단추, 연꽃 모티프가 등장한 가운데 짙은 자연색의 심플한 테일러드 재킷 등 현대적인 아이템도 등장했다. 주름과 드레이프로 평면적인 전통의상에 입체감을 부여한 점이 돋보였다. 그가 선보인 방식의 퓨전은 그다지 신선하진 않았지만, 컬렉션은 그야말로 중국적이었다.

쩡 펭페이는 통속적 요소를 버리고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흡수하는 브랜드로 소개된다. 그의 무대에선 자카드 수트와 전통의상 여밈, 풍경화 프린트 등이 피아노 선율 속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실크와 브로케이드 등 고급스러운 소재 사용도 인상적.

지난해와 똑같은 스타일에 달라진 것이라곤 좁고 짧아진 바지뿐이란 혹평도 있었지만, 디자이너 쩡 펭페이는 왕 유타오와 함께 2013년 남성복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추허팅시앙

추허팅시앙


추허팅시앙 컬렉션은 보다 고급스럽고 신선했다. 디자이너 추 얀은 “고급 소재와 정교한 공예, 풍부한 색채에 주력해 중국 전통의 우아함과 평온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대도 음악도 중국 전통적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아주 느린 호흡으로 쇼는 계속됐다. 앞뒤 길이가 다른 셔츠, 직선과 곡선이 함께 녹아든 의상, 염색으로 표현한 짙은 색감, 성근 니트 롱 드레스와 물결무늬 조끼의 어울림 그리고 트렌디한 페플럼 의상조차도 고전적인 베이징호텔 연회장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한 패션 전문가는 “이번 패션위크 중 최고의 무대”라며 극찬했고, 추 얀은 2013 톱 텐 디자이너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디자이너의 전통 사랑은 심지어 스포츠웨어에서도 계속됐다. 브랜드 치아오단(QIAODAN)의 첸 지안핑은 ‘매트릭스 코드’를 주제로 한 컬렉션에서 전통을 훌륭히 녹아낸 것.

그는 스포츠 기능성 본질에 충실한 소재와 중국적 요소, 과학기술을 결합해 컬렉션을 완성했다. 미래 시간과 공간, 과학을 녹이고 재창조했다는 그의 무대는 흥미로우면서도 ‘스펙터클’했다.

창의적인 QR코드가 반복되거나 웃옷 한가운데 사용돼 마치 중국의 전통문양처럼 보였고, 저지와 시스루 치파오 등 중국 전통의상과 결합한 운동복은 참신함 자체였다.


그는 우선 기능적 요소에 집중했지만, 밑단을 둥글리거나 스포츠 톱에 중국식 옷깃을 활용하고, 남성복 옷자락에 전통의상의 라인을 집어넣는 등 전통적 이미지도 함께 녹여냈다.

스포츠웨어에 전통미를 불어넣는 그의 놀라운 감각은 마지막까지 계속됐고, 첸 지안핑 역시 2013 톱 텐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스포츠브랜드 치아오단

스포츠브랜드 치아오단


꾸뛰르와 웨딩컬렉션에서 디자이너의 예술적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의 전통 디자인 요소, 이를테면 빨간색과 금색, 자수, 용, 산수화 문양 등을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기성복 심지어 운동복에까지 전통적 요소를 결합하고자 하는 그들의 집착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러시아에서 온 빅토르 쿠즈미체프 교수는 “중국에서는 2~3개의 TV 채널이 온종일 중국의 역사를 방송한다. 어려서부터 이 같은 역사의식이 자연스럽게 중국인에게 주입될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들이 의도적으로 전통을 표현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그저 그들의 의식에 박혀 있는 것”이라 분석했다.

패션평론가 겸 파슨스 디자인스쿨 교수 헬렌 리우는 “중국인들은 지나치게 정형화된 미국, 유럽, 일본 스타일은 배격하는 편”이라며,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항상 모던한 디자인만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 늘 전통과의 결합을 숙제로 안고 있는 우리 디자이너의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인기 디자이너 왕 유타오는 이번 시즌 콘셉트인 ‘차 주전자’ 이전에도 매 시즌 용과 중국 잉크, 대나무 등 중국적 모티프로 쇼를 발표해 왔다. 하지만 그의 컬렉션은 더없이 현대적이다. 분명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베이징(중국)=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차이나 패션위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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