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러 입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가운데). 워싱턴=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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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집권 2기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가 미국보다 4배나 높다”는 허위 정보를 언급했다. 이에 한국에서는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애당초 해소할 여지가 있는 ‘오해’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사업가 기질이 반영된 ‘의도적 거짓말’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 일본에도 “쌀 관세 700%” 압박
한국 정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지난해 미국에서 들어온 수입품에 대해 한국이 부과한 실효 관세율은 평균 0.79% 수준이다.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관세율을 0%대로 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쌀 등 일부 농산물에는 고율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근거 없는 수치를 사용해 통상 압박을 가하는 국가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일본도 “쌀에 700% 관세를 매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11일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무역 상대국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사례로 일본의 쌀을 지적하며 “일본이 쌀에 70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책사로 꼽히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도 같은 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일본의 700% 관세는 미쳤다”고 말하며 레빗 대변인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 “반복해서 말하면 진실이 된다”
앞서 3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미국의 위대한 농부 여러분, 미국 내에서 판매할 농산물을 많이 만들 준비를 하세요”라며 4월 2일부터 농산물에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적용 대상과 관세율 등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후 백악관 인사들이 농산물 관세 관련 압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1일 브리핑에서 유럽연합(EU), 일본, 인도, 캐나다가 미국산 농축산물에 부과하는 관세를 정리한 도표를 보여주고 있는 레빗 대변인. 워싱턴=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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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빗 대변인은 다른 질문에 답하던 와중에 “깔끔하게 정리한 이 표를 보시라”며 해외 국가들이 미국산 농축산물에 부과하는 관세를 정리한 A4 용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일본이 미국산 쌀에 700%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트럼프 충성파들은 왜 허위 정보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일까.
스테파니 그리샴 전 백악관 대변인은 2021년 9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집권 1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직원들에게 이같이 강조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진위를 떠나 특정 메시지를 일관되게 반복하면 결국 진실처럼 받아들여진다는 발상이었다. 그리샴 전 대변인은 “백악관에서 거짓말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전했다.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고방식은 트럼피디아 15화에서 살펴봤다.
집권 1기의 최장수 백악관 비서실장이었던 존 켈리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만들어 낸 수치를 대외 메시지에 거듭 언급할 것을 지시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켈리는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실이 아니지 않냐”며 반기를 들어봤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하지만 듣기 좋지 않냐”고 거리낌 없이 답했다고 주장했다.
4일 상·하원 합동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며 주먹을 들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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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집권 2기 들어 이런 경향성이 더욱 강화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허위 주장을 통해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또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주장을 하면 백악관 인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현실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 “정치적 계산에 따라 결정”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팩트체크에 대해 “가짜뉴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가 만들어낸 수치를 검증하려는 시도를 자신에 대한 공격이자 부정으로 받아들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 정상과 회동에서도 그가 언급한 숫자가 틀렸다는 지적이 나오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자민당 간사장(전 경제산업상)은 2018년 4월 미일정상회담에서 “트럼프 포탄이 터졌다”고 같은 해 한 행사에서 밝혔다.
2017년 2월 백악관에서 만난 아베 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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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전 간사장에 따르면 당시 회담에서 아베 전 총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왜 그렇게 싫냐”고 물었다. 앞서 2017년 1월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에 불리한 무역협정”이라며 TPP에서 탈퇴했다.
아베 전 총리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번 가입하면 탈퇴할 수 없는 끔찍한 틀이다”고 답했다. 이에 동석했던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당시 경제재생담당상이 반박에 나섰다. 그는 “통보 후 6개월 후에 탈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라고 소리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황은 아베 전 총리가 “이 문제는 새로 출범한 모테기-라이트하이저 간 신무역협의체(FFR)에서 논의하자”고 화제를 돌리며 일단락됐다.
결국 일본과 미국의 무역협상은 어떻게 됐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끝내 TTP에 재가입하지 않았다. 대신 2019년 10월 미일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산 쇠고기와 돼지고기, 밀과 보리 등 일부 농축산물에 대해 다른 TPP 회원국과 동일한 관세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당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양국 무역의 최대 품목인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을 포함하지 않아 상업적으로 크게 의미 있는 협정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옥수수 농장에서 수확 작업을 하는 모습. 오로노코=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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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미일 무역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용 성과’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농민 표심을 사기 위해 협상을 서둘렀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자동차 관세나 안보 문제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협상에 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쌀은 협상에서 배제해 기존 관세율을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면을 세워주면서 자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할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한국 경제와 안보 관련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트럼피디아 5화에서 살펴봤다.
아키라 전 간사장은 “트럼프에게 가장 좋지 않은 대응은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분을 봐가면서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당신 말이 맞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더 좋아질 것이다’라는 식으로 접근해야 대화가 진전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역협상의 최종 판단은 트럼프 본인이 내리며,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계산과 당시 기분에 좌우된다”고 분석했다.
16화 요약: 4월 2일 전 세계 상호관세 및 자동차 관세 등의 부과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는 통상 관련 허위 주장을 내세워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진위를 떠나 특정 주장을 반복하면 결국 현실이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정치적 성과를 낼 수 있게 손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17화 예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20세기 초반 고율 관세를 부과해 경제가 튼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미국은 보호무역을 뒤로하고 자유무역 체제로 전환했다. 그토록 좋다는 관세를 포기한 배경을 살펴봤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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