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꽃의 전설'(감독 고희영) 속
채지애 해녀·현순직 할머니를 만나다
제주 바다와 해녀 문화 현주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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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바다를 믿고 사는데 바다가 죽어가고 있어요. 바다도 지고 나도 지고...바다만 살아있다면야 계속 물질하고 싶지요. 바다에는 희노애락이 다 있거든요.” (물질 경력 12년차 채지애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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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는 여전히 바다가 애틋한 해녀들이 물속에서 숨 쉬고 있다. 지난 202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감독 고희영) 안에선 신입 해녀였던 채지애(42)씨는 어느덧 12년차 해녀로서 삼달리 앞바다를 누빈다. 넷플릭스 화제작 ‘폭싹 속았수다’에서 해녀 광례(염혜란 분)가 딸 애순이(아이유 분)를 위해 물질에 매진한 것처럼, 채씨도 아이들을 위해 부지런히 바닷길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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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말만 남은 제주 바다 = “10년 전만 해도 바다에 감태밭이 있었어요. 이제는 아예 사라졌어요. 감태가 소라, 전복 먹잇감이거든요. 감태가 먼저 없어지니 소라도 자연스레 사라지고 전복도 거의 안 보여요. 요즘은 얕은 데서 보말(고둥)만 주로 잡고 있어요. 성게도 잡아보면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하루 종일 작업해도 실망스럽죠.”
채씨가 해녀로 일한 10여년 동안 제주 바다는 많은 게 변했다. 먹을 것이 사라졌고, 처음 보는 개체가 등장했다. 실제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최근 50년간 우리 어장 지도는 크게 바뀌었다. 어종이 전체적으로 북상하는 가운데 제주도와 동해에서 아열대 어종이 출현하는 현상도 관측되고 있다. 채씨는 “간혹 열대어들도 보이고 여름엔 상어도 들어온다. 2년 전에는 파란고리독문어까지 발견했다"고 했다. 청산가리 10배에 달하는 맹독성을 가진 파란고리독문어는 어민들에게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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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수온도 문제다. 1968년부터 2023년까지 56년간 우리나라 연근해 표층 수온은 1.44도 상승해 전 지구 상승치(0.7도)의 두 배를 웃돌았다. 채씨는 “수온이 올라 여름엔 너무 뜨겁고 겨울엔 너무 차갑다. 중간이 없다”며 “우리나라에 봄, 가을이 사라지는 것처럼 바다에도 여름과 겨울만 남게 되는 거 같다”고 했다. 특히 작년엔 고온다습한 날씨로 인해 1년 동안 바다에 들어간 날이 90여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상어나 문어처럼 위협적인 게 나타나니 두려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저희는 ‘바다가 살아야 해녀가 산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더는 바다가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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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주에서 활동하는 해녀 수는 빠르게 줄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활동 중인 현역 해녀는 2623명으로 집계됐다. 전년(2839명)보다 7.6%(216명), 10년 전 4377명과 비교하면 40%(1754명) 이상 급감했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해녀의 60.7%가 70대 이상이었으며, 40대 미만은 1.5%(41명)에 그쳤다. 신규 해녀 등록까지 절차가 까다로운 점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채씨는 신규 해녀를 늘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장 적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규 해녀가 일하고 싶은 어촌계 현장에서 멘토·멘티 형식으로 배우는 거죠. 고령 해녀에게는 교습비를 지급하고, 젊은 해녀는 실제 들어가게 될 바다 현장에 적응하며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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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되면 눈 감아도 그 게임들이 보인다고 하잖아요. 한동안 눈 감으면 소라들이 막 보이는 거예요. 소라들이 눈 앞에 아른아른(웃음)” (영화 ‘물꽃의 전설’ 中 당시 경력 1년차 채지애 해녀)
채씨는 예나 지금이나 바다를 사랑해마지 않는다. 지난해 넷째 아이를 낳은 그는 “출산 직후 바다에 못 가니 숨비소리 환청이 들리는가 하면 꿈에 바다가 나오기도 했다”며 “가면 고단하지만 안 가면 그리운 곳이 바다”라고 말했다.
젊은 해녀를 양성하려면 해녀에 대한 출산 및 육아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게 채씨의 생각이다. “바다는 출산, 육아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에요. 그런데 젊은 해녀를 위한 관련 복지 혜택이 아무것도 없어요. 출산 전후로 2년 정도 쉬게 되면 수입도 없어지고 기량도 줄어드는데 말이죠. 저만 해도 해녀 삼춘(제주에서 웃어른을 부르는 말)들이 잠깐 아이를 돌봐주시면 물속에 들어갔다 오고 그랬어요.” 도는 지난해 해녀 출산·육아수당 지원을 검토한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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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애 해녀의 바람은···"바다가 이대로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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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개봉한 영화 ‘물꽃의 전설’에서 최고령 해녀인 현순직(99) 할머니는 ‘들물여’라는 바다 아래엔 붉고 푸른 물꽃이 만발했다고 회상한다. 영화 말미에 들물여에 들어간 채씨는 텅 빈 바다 아래를 확인하고 나와 “물꽃도 없고 감태도 없다”고 말한다. 현 할머니는 “바다가 오염됐어. 그러니까 물꽃도 시들어버린 거야. 바다를 보면 아까워”라고 되뇐다.
채씨는 슬픈 전설이 된 물꽃처럼 해녀 문화도 전설 속으로 사라질까 우려한다. 그는 “바다가 황폐화하면서 서로 돕고 나누며 품앗이하던 문화가 예전만 못하다”고 전했다. “수확물이 없어지면서 상군바다, 중군바다, 하군바다의 경계도 희미해졌어요. 이처럼 옛날 해녀 문화가 전설로만 남을 것 같아요. 바다와 함께 사라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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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은인 같은 존재예요. 바다 덕분에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 해녀 삼춘들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삼춘들도 1~2시간 일하더라도 손주들 과자 사줄 수 있고, 용돈 쥐어줄 수 있어서 계속 물질하시는 거예요. 해녀 모두가 늘 바다를 고맙게 생각해요. 바다만 살아 있다면 이 바다에서 계속 일하다 은퇴하는 게 꿈이죠. 어머니와 삼춘들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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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는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오직 숨으로만 해산물을 채취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中) 늘 이 문장을 되새기는 채씨는 “비단 물속에서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며 "물질을 하면서 누구나 몸에 과부하가 오지 않을 만큼만 일해야 한다는 지혜를 배웠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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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물속에서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물질할 때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 소리는 해녀들만 들을 수 있거든요.” 인터뷰가 끝나고 이렇게 말하는 채씨의 눈빛에는 일과 삶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했다.
87년간 물질을 했던 현순직 할머니는 은퇴 이후에도 날이 좋을 때면 꼭 바다에 들른다. 그리운 바다를 보고 또 보기 위해서다. 파도가 거센 삼달리 바당(바다)에는 오늘도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설로 남기엔 아쉬운 숨소리가 ‘호오이, 호오이' 하고···
제주=김수호 기자 su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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