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평 가득한 ‘승부’…이병헌도 웃음꽃 만발
“관객과 함께 울고 웃으며 영화 봐…감격적”
시사회서 만난 조훈현 “나 보는 줄 알았다” 칭찬
영화 ‘승부’ 개봉을 앞두고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배우 이병헌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한국 바둑의 거장 ‘조훈현9단’을 연기했다. [바이포엠스튜디오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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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영화 ‘승부’가 미리 시사회를 다녀간 관객들에게서 호평받는 등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작품에서 조훈현 역할로 분한 이병헌도 시종일관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영화 속 그의 대사인 “그것이 승부니까!”를 답변 중 적재적소에 외치며, ‘이번에도 연기를 잘했다’는 칭찬엔 “저는 연기 ‘국수’(國手·한 나라를 대표할 정도로 바둑을 잘 두는 사람)가 아니라 잔치국수”라는 아재 개그까지 칠 수 있는 여유가 묻어났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전날 집에서 장인어른과의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 술잔을 기울인 탓에 부은 눈을 선글라스 속에 감추고 나타났다.
이병헌은 오랜시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화의 공개 여부조차 암담하던 시절을 기억했다. 드디어 오는 26일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영화가 관객들을 찾아가게 된 감격을 연신 표현했다. [바이포엠스튜디오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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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언론시사회에서 이병헌은 영화를 세 번째 봤다. 2021년 크랭크업하고 직후에 한 번, 개봉을 앞두고 홍보 활동에 들어가면서 이동식저장매체(USB)에 담긴 편집본을 집에서 혼자 보면서 두 번, 이번 시사회에서 관객들과 함께 세 번 등이다.
“처음엔 영화 전체에 대한 객관적 시선이 없어서 재밌는지, 재미없는지도 모르겠더라. 시간이 지나서 두 번째로 봤을 땐 객관적으로 보게 됐는데,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일 것 같았다. 언론 시사로 관객들과 함께 봤을 땐 어떤 장면에선 사람들이 웃어주고, 또 슬픈 장면에선 공감해 주니까 ‘아, 살려야 하는 감정들이 다 살았구나’ 싶어서 안도했다. 제가 혼자 봤을 때 웃었던 지점과 다른 분들의 웃음 포인트가 또 다르더라. 역시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이런 재미가 있구나 싶었다.”
80년대 세계대회를 재패한 조훈현9단을 이병헌은 그 시절 헤어스타일, 복장을 통해 온전히 모사했다. 영화 ‘승부’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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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제자(內弟子·스승 집에 함께 살면서 가르치는 제자) 이창호와 최고위전 결승 대국장으로 향하던 아침. 조 9단의 아내 미화가 말도 없이 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스승과 제자를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창호에게) 무슨 얘기 좀 해줘”라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려고 애쓴다. 이때 조 9단이 딱 하나 건네는 말, “너무 승부에 집착하지 마라”.
이병헌이 영화에서 자기의 본래 눈썹은 지우고 갈매기 눈썹을 한참 위에 그려 넣으면서 ‘빙의’한 조훈현 9단(72)도 이날 VIP시사회에 참석했다.
이병헌은 “오실 줄 몰랐는데 마주쳐서 당황스러웠다”면서 “이미 예고편에서 내가 나온 장면을 보고 ‘난 줄 알았다’고 농담을 건네시더라. 영화 전체 후기도 궁금했다”고 말했다.
조 9단이 시사가 끝나고 글을 통해 밝힌 감상평은 ‘영화가 너무 재밌게 만들어졌고, 심리와 감정들이 잘 표현이 되어서 굉장히 놀라웠다’였다. 이병헌은 “다만 국수님이 ‘이창호 9단에게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매섭게 야단치지 않았다’고 밝히셨다.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돌 하나하나를 가르치기보다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식이었다고도 언급했다”고 전했다.
월간바둑 91년 10월호에 실린 조훈현9단의 ‘와기’(오른쪽)과 영화 ‘승부’에서 이를 그대로 연기한 이병헌(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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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흐리게 뜨고 보면 정말로 조 9단인지, 이병헌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병헌은 “당시 대부분의 남자 머리스타일이 대동소이했지만, 조 9단은 유독 독특한 면이 있었다.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눈매나 눈썹의 방향이 날카로워서 분장으로 인상을 바꿔냈다. 거기에 바둑계의 패셔니스타답게 다채로운 의상들을 입었길래 그 부분도 흉내를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병헌이 진짜로 깊이 천착한 것은 단순한 외양이 아닌 심리와 그에 따라 분출되는 제스쳐였다.
“그분의 생각은 물론, 늘상 대국을 앞두고 가졌던 심리상태나 마음가짐을 제일 많이 고민했다. 바둑기사가 대국에서 졌을 땐 어떤 느낌일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를 찍기 전에 국수님 만나서 여러 질문을 했는데, 답변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 말씀하실 때의 모습, 버릇이나 느낌을 캐치하려고 애를 썼다.”
‘이창호 전관왕 실현’의 목전에서 심리적, 체력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당시 조9단의 모습[출처 월간바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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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아주 편안하게 드러누운 자세, 그것과 상반되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조훈현’ 하면 떠오르는 가장 상징적 자세와 의상이라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사실 당시 조 국수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바둑은 승패만큼이나 매너가 중요시되는데 그분이 다리 떠는 건 기본이고, 상대 기사 내면을 흔들고 긁는 행동이 많았다.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해서 앉는 것도 그중 하나다. 누구나 몇 시간씩 앉아 있으면 힘들지만, 그분은 ‘참지 않는’거다. 하이라이트, 정점을 치달은 게 바로 그 누워버린 ‘와기’다.”
‘승부’는 이병헌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묘한 교차점이 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게 드라마 ‘올인’의 ‘김인하’에 이어 두 번째였는데, 그가 연기한 김인하의 실제 모티브가 프로 바둑기사이자 프로 포커 플레이어 ‘차민수’(74)씨다.
“그분도 살아계신 분이다. 근데 심지어 차민수와 조훈현이 어릴 적부터 절친한 사이다. 한 분은 갬블러로 유명하고 한 분은 바둑의 제왕인데 두 분을 제가 시간을 두고 다 연기했다. 그게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속칭 ‘연기로는 이병헌을 깔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국내 최정상 배우다. 조 9단이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연기를 하면서 본인의 상황에 대입해 보지 않았냐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병헌은 자신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 오히려 기대하고, 돕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상대 배우가 역할의 매력을 발산 못 하면 저한테 숙제가 생긴다. 그래서 리허설을 계속하면서 상대의 매력적인 부분을 계속해서 끌어올리려고 한다. 영 안 올라오면 ‘이렇게 해!’라고 시키는 대신 제가 한번 그 앞에서 해본다. 같은 직업이지만 그런 식으로 말로만 시키는 건 ‘월권’같다. 그리고 모두가 같이 성장해야 저도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려고 하면서 성장하는 것 같다.”
조9단은 바둑 신동 이창호(아역 김강훈 배우)의 기재를 알아보고 내제자삼는다. 영화 ‘승부’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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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에게 맞서 전혀 밀리지 않는 팽팽한 연기를 보여준 유아인에 대해서도 당시 기억을 떠올려냈다. 이병헌은 “무덤덤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과 말투와 몸짓으로 이 9단을 표현하길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 친구가 얼마나 캐릭터에 스스로 몰입하려고 했던 건지 모르겠는데 정말 말수도 없고 과묵한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유아인의 마약 사건 이후로 작품이 공개를 계속해서 미루게 된 것에 대해선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김형주 감독이 정말 걱정이 됐다”면서 “감독님이 정말 몇 년 만에 준비해서 정성스럽게 찍었는데 공개가 안 되면 너무 힘드니까”라고 덤덤히 밝혔다.
이창호 9단의 아역 시절을 연기한 배우 김강훈은 촬영하던 2021년에는 이병헌보다 한참 작은 꼬마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키가 180cm가 넘는 장신이 됐다. 이병헌(170cm대)보다 크다. 영화가 공개되기까지 오랜 인고의 시간이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이병헌은 “혼자서 지금 홍보 일정을 다 소화하고 있다. 강훈 배우가 같이 돌았으면 좋겠지만 지금 저보다 키가 커서 관객들에게 ‘20년 전에 찍은 영화냐’는 혼란을 줄 수 있어서 못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혼자서)해야지 뭐 어떡하나. 그것이 승부니까!”라고 또 한 번 웃음을 유도했다.
유아인이 마약 사건으로 영화의 주연임에도 홍보활동은 물론,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소개되는 와중에, 이병헌 혼자 홍보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병헌은 “그것이 승부니까”라는 극중 대사로 재치있게 넘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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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워낙 극장 팬이라서 극장에서 영화가 첫선을 보인다는 자체가 너무 신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는 뛸 듯이 기쁘다. 배우나 감독이나 스태프들 모두 자기들이 정성껏 만든 결과를 2시간 동안 집중해서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는 게 참 뿌듯한 일이다. 지금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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