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 눈에 잘 띄지 않는 '신뢰'의 가치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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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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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일랜드의 미할 마틴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다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영상 4분 11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평생 자신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업해 온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자신의 성격과 특성이 정치 스타일에 반영되기 마련이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오히려 대통령이라면 으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을 보란 듯이 어기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데, 이는 미국 유권자나 야당 정치인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외국인, 다른 나라 정상을 대할 때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부터 국제개발처(USAID)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보기엔 힘도 없고 미국에서 이익을 빼갈 권리는 더더욱 없으면서 한심하게 미국에 손이나 벌리는 다양한 국가, 기관, 단체, 개인과의 관계를 연이어 끊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우리와 다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저들은 틀렸다"고 규정하는 순간 논리적인 반박이나 토론의 여지는 사라집니다. 저항은 미미합니다. 적어도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기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특히 국제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별로 크지 않은 단기적인 이익과 자칫 막대할 수도 있는 장기적인 손해를 맞바꾸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국제 사회, 외교 무대에선 신뢰가 생각보다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내가 힘이 세고 가진 게 많으니, 아무도 나서서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점점 내가 하는 말과 약속에 신뢰가 떨어지고, 다들 나를 멀리하게 되면 그때는 결국 나의 가치도 줄어듭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그렇지만, 한 나라 정치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나라의 신뢰를 높이거나 떨어뜨릴 수 있는 일입니다. 취임 후 두 달 가까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우리 속담을 예로 들어 비유하자면, 밑돌 빼서 윗돌을 괴는 행위와 같습니다. 유명한 심리학 연구에 빗대자면, 현재 78세인 트럼프 대통령은 마시멜로 테스트를 계속해서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단기적인 이익만 좇고, 나중을 위해 참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대통령 개인의 신뢰뿐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의 평판마저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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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날개 없이 추락하는 평판…미국이 맞닥뜨리게 될 일들"
관세를 두고 왜 정책이 오락가락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발끈하며 쏘아붙였지만, 결국 정곡을 찌른 질문에 화만 냈을 뿐 제대로 된 답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관성 없는, 충동적인 돌발행동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의 정책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그러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굴하지 않겠다는 듯 4월 2일에는 예고한 대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이후에 주식시장이 또 폭락하거나 경기 침체 신호가 더 짙어지면 아마도 관세를 또 유야무야할 겁니다. 아니면 물가가 오르고 경기 침체에 가까워지는 걸 또 다른 희생양의 탓으로 돌리며 정치적인 정면 돌파를 시도하겠죠.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주식시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미를 고려하면, 엄포한 대로 높은 상호 관세를 매기진 못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신뢰와 평판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정확하지만, 그래서 앞으로 국제 질서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브룩스는 칼럼에서 다양한 예측을 내놓았는데, 그중에는 중국이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이나 모든 걸 힘의 논리로 바라본다는 분석처럼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전 지구적인 문화 전쟁이 올 거라는, 저와는 생각이 좀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진영 중에 가장 큰 경제 규모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를 선도하던 강대국 미국에 민주주의라는 가치보다 나와 우리 편에 직접적인 이득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자가 선거로 뽑혔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딱히 보이지 않는 트럼프인 만큼 임기가 끝나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2029년 1월 19일까지 미국의 대통령은 트럼프입니다. 그때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최근 들어 두드러진 정치적 균열, 즉 세계화, 기술 발전의 승자와 패자 사이의 균열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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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minpy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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