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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달러 투자받곤 “中, 대만 침공 땐 재앙” 립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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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사업가식 외교 거래
조선일보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향후 4년간 미국에 10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3일 발표했다. 이날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투자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악수하고 있는 웨이저자(왼쪽) TSMC 회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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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반도체 업체 TSMC가 향후 4년간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6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과 기자회견을 열고 “TSMC는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1000억달러를 새로 투자할 것”이라며 “오늘 발표로 TSMC의 대(對)미국 투자는 모두 1650억달러(약 241조원)가 된다. 이것은 미국 및 TSMC에 엄청난 일”이라고 했다.

TSMC는 지난 2020년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했고, 이후 투자 규모를 650억달러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TSMC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66억달러의 지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10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TSMC는 새로운 투자금으로 애리조나주에 3개의 새로운 반도체 생산라인과 2개의 패키징 공장 및 연구 개발 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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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인성


트럼프는 “이는 수천 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AI) 반도체는 바로 이곳 미국에서 만들어질 것이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TSMC가 만들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웨이 회장을 향해 “이 방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그는 정말 전설이다.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극찬을 이어갔다. 또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그것은 분명히 매우 재앙적 사건이 될 것”이라며 대만의 입장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불과 5일 전 보였던 애매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트럼프는 지난달 26일 첫 내각회의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대응 질문을 받고 “나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나를 그 입장(대만에 대한 방어 공약)에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선물 보따리를 받은 트럼프의 입장이 확연히 달라지자, 트럼프가 ’1000억달러짜리 덕담’을 해주면서 ‘안보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웨이저자 TSMC 회장의 투자 발표는 작년 12월 트럼프 당선 직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했던 대미 투자 발표와 묘하게 겹친다. 당시 손 회장은 트럼프 개인 별장인 마러라고 저택을 찾아 1000억달러 규모를 투자하겠다고 했고, 트럼프는 당시 “이 시대 최고의 사업가”라며 손 회장을 칭송했다. “투자 금액을 2000억달러로 늘릴 수 없느냐”고 그 자리에서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손 회장은 지난 1월에는 백악관에서 미국의 오픈AI, 오라클과 함께 AI 인프라 구축 사업 ‘스타게이트’에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성사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일본 총리는 대미 투자 1조달러 확대, 미국산 LNG 수입 등 선물을 안겼다. 그러자 트럼프는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일본 영토라는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미·일 안보조약에 따라 미국의 방위 의무가 일본 영토인 센카쿠 열도에 적용된다는 내용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넣은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지난달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종전 협상을 위해 백악관을 찾았을 때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며 노골적으로 박대했다.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의 광물 개발 이권을 미국과 공동 소유하는 광물협정 체결 전 미국의 확실한 안보 보장부터 요구하자, “당신은 우리에게 지시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당신은 전혀 감사해 하지 않는다”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전쟁은 2주 만에 끝났을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구축하는 우방국을 약소국일지라도 존중해온 미국의 기존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젤렌스키가 “빈손으로 왔다”고 면박을 준 셈이다.

트럼프는 3일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은 아직 멀었다”고 말한 젤렌스키의 언론 인터뷰 기사를 올린 뒤 “이 사람(this guy)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한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날 트럼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웨이저자 회장을 ‘신사분(gentleman)’이라며 추켜 세우고, 손정의 회장을 배려해 마이크 높이를 직접 낮춰주기까지 했던 트럼프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비즈니스 거래에 익숙한 트럼프가 향후 전 세계를 상대로 힘과 돈의 논리를 적용한 ‘외교 거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