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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크루 일하는 日맥도날드, 노인 일자리 확대로 가능할까[생생확대경]

이데일리 양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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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크루 일하는 日맥도날드, 노인 일자리 확대로 가능할까[생생확대경]

서울맑음 / 3.9 °
공항·식당·마트서 일하는 日 노인들
맥도날드, 업무 세분화로 시니어 인력 활용
스벅, 시니어 노하우 살려 저변 확대
양보다 질…인력 활용 '운용의 묘' 살려야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호텔 근처 마트에서 야식을 사는데, 할아버지 점원이 새벽까지 매대에서 일하고 있는 게 안쓰러워 보였어요.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일을 안 해도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일본 맥도날드의 한 매장에서 시니어 직원이 일하고 있는 모습.(사진=일본 맥도날드 홈페이지)

일본 맥도날드의 한 매장에서 시니어 직원이 일하고 있는 모습.(사진=일본 맥도날드 홈페이지)


10년 전 한 여행정보 카페에서 후기를 보다가 황당했던 적이 있다. 여행후기에 나온 24시간 마트에서 계산대의 시니어 직원을 보고 정반대의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 머릿속에 각인된 한국의 어르신 일자리는 폐지나 쓰레기 줍기, 잡초 뽑기, 아파트 경비나 건물 청소가 고작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도 없이, 주로 혼자서 힘든 일을 하는 저임금 일자리 뿐이었다. 하루에도 수 백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마트 매대에서 고객들을 상대하는 노인 일자리가 있다는 게 신기했고, 부러웠다. 반면 우리의 노인 일자리를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씁쓸함이 밀려온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곳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을 볼 때가 많다. 비행기에 내려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대중교통, 식당, 숙소, 상점에 이르기까지 발길이 닿는 어디에서든 일하는 노인을 보는 건 흔한 일이다. 우리에게 다소 익숙한 한파, 찜통 더위에도 거리에 나와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나홀로 근무, 저임금 일자리 일색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산하 유통·마케팅 전문지인 ‘닛케이엠제이(MJ)’는 지난 23일 시니어들이 인력난에 시달리는 외식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며 일본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커피 재팬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들 외식 업체는 아르바이트에 연령제한을 두지 않고, 하루 2시간씩 단일 업무를 담당하는 ‘쁘띠 근무’ 근무 등으로 깜짝 성과를 냈다. 65세 이상 시니어가 8500명 이상 일하는 맥도날드의 경우 어르신 크루(매장 직원)가 2016년 대비 3.6배 증가했다. 또 70~90대 크루는 5178명으로 2016년에 견줘 5배 가까이 늘었다. 시니어 크루는 전체 아르바이트생의 약 2%를 차지하며 최고령자는 96세다.

일본 맥도날드는 조리, 상품 제공, 접객, 청소 등을 공장처럼 분업 체제로 운영하는데, 업무를 세밀하게 나눠 시니어도 일하기 수월한 업무를 맡긴다고 한다. 또 각 작업에는 설명서에 자세한 지침이 있어 시니어 크루는 햄버거 만드는 법을 태블릿 단말기로 게임처럼 배울 수 있는 콘텐츠로 습득하고, 인증을 받으면 담당하는 업무가 늘어난다. 교대 근무도 유연하게 운영한다. 원칙적으로 주 1회, 1일 2시간부터 근무할 수 있으며, 일주일 단위로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엔 휴가를 내기 쉽도록 운용의 묘도 살렸다. 그래서 전체 크루의 60%를 차지하는 학생들이 시험 기간을 맞아 일손이 부족할 때 시니어 크루의 활약은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한다.

업무 세분화하고, 노하우도 살리고

스타벅스 재팬에선 전국 70여개 매장에서 지역 밀착 업무에 시니어를 투입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했다. 한 달에 한 번, 이른 아침 매장 앞에서 시니어 직원이 주민들과 함께 체조를 하고 조식을 먹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지역 사회 밀착 이벤트를 만들어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고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스타벅스 재팬은 복잡한 업무로 지원을 주저하는 시니어들도 일할 수 있도록 지난 2016년에는 업무 범위를 한정한 ‘카페 어텐던트 제도’를 도입, 이벤트 업무뿐만 아니라 음료 제조를 담당하는 바리스타 시니어도 늘렸다. 스타벅스 일본 매장의 최고령 아르바이트생은 81세다.


맥도날드 인사본부의 우에무라 무기 부장은 MJ와 인터뷰에서 시니어 인력 활용과 관련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조합해 매장을 운영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시니어를 채용하는 이유에 대해선 “일본에서 청년이 줄어드는 미래를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부연했다. 노인 일자리 문제는 양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시니어 노동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일본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사례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지난해 2분기 65세 이상 노인 취업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청년(15~29세) 취업자 수를 넘어섰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영향이 있지만, 노후 준비가 부족해 은퇴 후 생계를 위협받는 노인들이 많아진 것도 주된 요인이다. 더구나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들은 고용 안정성도 떨어지고, 급여도 낮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 일자리 사업 확대와 같은 양적 성장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한국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정부 차원에서 정년 연장이나 정년 폐지, 정년 후 재고용 등 제도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다. 기업 차원에서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시니어 인력을 비용 관점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해 그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