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참석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옥슨힐=AP 연합뉴스 |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21일 한국 경제사절단을 만난 자리에서 “10억 달러(약 1조4,300억 원) 이상 투자하면 심사 허가 등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 기업들에 대미 투자를 늘리는 건 물론이고 규모도 기업당 10억 달러는 넘어야 한다고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날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에 서명하며 ‘패스트트랙’을 강조했다. 10억 달러 이상 투자는 환경 평가도 신속 처리하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가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20여 명의 기업인이 방미, 트럼프 2기 주요 인사들과 직접 소통의 물꼬를 튼 건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확인된 미국의 속내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란 점은 차치하고라도 2023년 215억 달러(약 30조 원)를 쏟아부은 최다 투자국이다. 트럼프 1기부터 따지면 8년간 총 1,600억 달러(약 225조 원)에 달한다. 추가 투자를 정중하게 요청해도 모자랄 판인데 미국은 오히려 거꾸로 채찍을 들고 나섰다. 후진국이 외국 기업에 급행료를 청구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행태다.
미국은 인건비가 높고 제조 생태계도 열악해 투자 매력도가 낮은 나라다. 바이든 정부가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으로 투자 유치에 나선 이유다. 그런데 트럼프는 관세를 무기로 투자도 강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런 식이면 과연 어떤 기업이 미국에 투자할지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빅테크 기업을 부당하게 규제하는 나라에 대한 조사도 지시했다. 우리나라는 빅테크가 국내 통신 사업자에 망 사용료를 내는 법안과 플랫폼법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도 보복 관계를 물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선을 넘는 미국 우선주의이다. 이런 주권 침해까지 수용할 순 없다. 우리도 모든 걸 국익 관점에서 대응하며 합리성을 근거로 따질 건 따져야 한다. 한미 양국에 공동 이익이 될 만한 대중 견제와 조선·방산 협력을 지렛대 삼아 '패키지딜'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에도 당당히 맞설 각오가 필요한 때가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