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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작년 적자에 올해 전망도 캄캄한데 배당만 늘리면 밸류업 모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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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이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인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배당 확대를 결정하는 상장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이뤄지는 배당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특히 실적 악화에도 두둑한 배당을 결정한 이들 기업 상당수는 오너 일가의 지분이 높은 경우가 많아 배당을 확대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명분으로 삼아 배를 불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비즈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1일 '코리아 프리미엄을 향한 거래소 핵심전략'을 발표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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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적을 발표한 신세계는 악화된 실적과 함께 확대된 배당 계획을 공개했다. 신세계는 면세사업이 부진해 지난해 순이익이 44% 감소했다고 발표하면서도 보통주 1주당 4500원을 배당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신세계는 1주당 4000원을 배당했었다.

자회사 롯데케미칼이 1조8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적자 전환한 롯데지주 역시 보통주 1주당 1200원 배당을 결정했다. 지난해 순손실이 6000억원에 육박하는 이마트도 보통주 1주당 2000원의 배당을 결정하면서 올해 배당금은 최고 2500원까지 높이겠다는 내용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았다.

GS그룹의 지주사 GS 또한 깜짝 고배당주로 등극했다. GS는 보통주 1주당 2700원을 배당하기로 결정했다. 배당 발표 전 주가가 3만8000원 수준에서 움직인 것을 고려하면 시가 배당률이 7.0%에 이른다. 전년도 배당금은 1주당 2500원이었다. 하지만 GS 또한 실적은 부진하다. 지난해 자회사 실적이 악화되면서 GS 순이익은 1년 전의 절반 수준인 8428억원에 그쳤다.

회사가 경영 활동으로 얻은 이익을 주주들과 나누는 배당 재원의 핵심은 당해 순이익이다. 이익이 감소하면 배당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 상장사가 배당을 확대한 건 오너 일가가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GS와 신세계 모두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경영권과 함께 지분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현금이 필요하다.

GS의 경우 허창수 명예회장을 비롯한 허씨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53%가 넘는다. 신세계의 경우 정유경 회장이 회사 지분 18.6%를 보유하고 있고, 이명희 명예회장의 보유 지분도 10.0%다. GS와 신세계의 경우 별도의 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지주회사라는 점도 배당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가 아닌 정유사 SK이노베이션 역시 대규모 적자 전환에도 배당 확대를 발표했다. 2023년도에는 배당 대신 7900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는데, 이번에 1주당 2000원 배당을 결정했다. 배당 재원으로 2975억원을 쓸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기업의 배당은 ‘지배주주 배 불리기’라는 프레임에 비판받았는데, 금융 당국이 기업의 배당을 독려하고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밸류업을 명분으로 내세워 실리를 챙기는 상장사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배당을 확대하면서 주주 환원에 공력을 들이는 기업은 금융 당국이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모범 사례가 됐다. 한국거래소는 배당을 포함한 주주환원을 밸류업을 위한 중요 정책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상장사 배당액이 전년 동기보다 소폭 증가한 34조원이라는 수치를 공개하면서 기업의 주주환원이 강화되고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다만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 손쉬운 배당에 쏠리면서 금융당국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이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의 핵심은 기업 특성에 맞춰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것인데, 기업들이 배당 확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주 환원이 곧 밸류업’으로 인식돼 정책을 추진하는 당국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우리 주식시장에는 장치 산업 중심의 제조업 비중이 높은데 이들의 경우 배당을 무조건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투자 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기업 특성에 맞춘 가치 제고 계획을 실행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주주 환원도 확대하는 균형을 찾는 게 밸류업의 맞는 방향”이라고 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실적이 부진하고 올해도 딱히 묘수가 없어 보이는 기업이 배당을 대폭 확대했길래 부정적으로 코멘트했더니, 회사 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면서 “최근 CEO 사이에서 배당 확대 바람이 불다 보니 부작용이 걱정되긴 한다”고 말했다.

연선옥 기자(acto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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