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선 42만명…넷플릭스선 비영어권 영화 1위
개봉 전 계약 체결로 위험부담 크게 줄여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
극장은 홀드백 주장…문체부는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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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스틸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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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소년 국희(송중기)가 현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박 병장(권해효)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범죄물이다. 지난해 12월 31일 개봉해 42만2366명을 모으는 데 그치면서 이달 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반응은 극장에서와 천지 차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영화의 배경인 콜롬비아 등 열 나라에서 1위를 기록했고, 일흔세 나라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동남아, 유럽, 남미 등에서 고르게 관심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1월 28일)에 전파를 탄 '베테랑 2'에 대한 관심은 이와 판이했다. 극장에서 752만5339명을 동원하며 흥행했으나 넷플릭스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에서만 관심을 받는 데 그쳐 비영어권 영화 부문 순위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두 영화가 재생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베테랑 2'는 한국어와 영어로만 제공된다. 반면 '보고타'는 두 언어는 물론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아랍어 등 서른세 언어로 스트리밍된다. 그 이유에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오리지널 영화로 소개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계약 형태가 아주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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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 2' 스틸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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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계약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대표적인 요소는 홀드백(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IPTV, OTT 등에 유통되기까지 유예 기간을 두는 제도) 배제다. 실제로 '보고타'는 지난달 30일 극장 상영을 마감하고, 사흘 뒤 넷플릭스 전파를 탔다. 반면 '베테랑 2'는 지난해 9월 13일 개봉했고, 그해 11월 15일 IPTV 등에서 VOD로 서비스됐다. 넷플릭스에는 그로부터 두 달이 더 지나서야 공개됐다.
'보고타'와 비슷한 절차를 밟은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유아인·박신혜 주연의 '#살아있다', 김고은·정해인 주연의 '유열의 음악앨범', 강하늘·한효주 주연의 '해적: 도깨비 깃발', 박서준·이지은(아이유) 주연의 '드림', 탕웨이·수지 주연의 '원더랜드' 등이 한국 밖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소개됐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계약의 시기나 세부적인 구조는 제각각 다르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다수 계약은 개봉 전 체결됐다. 배급사가 관객에게 평가받기도 전에 IPTV, 디지털 케이블TV, 구글플레이 등에서의 수익을 포기했다. 넷플릭스는 이를 보전하고도 남을 금액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복수 배급사들은 이처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먼저 계약하고 개봉하는 방식이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관계자 A씨는 "극장 개봉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으려던 시대는 지났다. 홍보마케팅 비용을 과감하게 줄이고 새로운 활로를 찾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관계자 B씨도 "계속되는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며 "개봉을 준비하기 전부터 극장 다음에 어떤 플랫폼으로 보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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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동에서 열린 '2025년 예산지원 관련 영화업계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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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홀드백 의무화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흐름이다. 허민회 CGV 대표이사는 지난해 9월 '2025년 예산 지원 영화업계 토론회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어서 극장에 오지 않는다고 하는 관객이 많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영화가 흥행해야 선순환이 되는 만큼 홀드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용석 메가박스 대표도 "외국 영화인들이 '홀드백을 안 하면 영화 생태계가 망가진다는 사실을 한국을 보며 배운다'고 말하더라"며 "홀드백이 잘 되어 있는 프랑스의 경우 영화산업이 코로나19 이전의 90%까지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홀드백 도입을 굉장히 노력했는데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다"며 난색을 보였다. 계속된 불황으로 그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손익 분기점을 돌파하는 영화가 적으면 홀드백 법제화는 배급사에 족쇄가 된다"며 "OTT뿐 아니라 해외 판권료 조정 등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활로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도 "홀드백 법제화로 배급사의 생존 전략을 막는다면 영화 제작 편수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며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에 맞는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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