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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고 또 넘어져도…아프가니스탄 스노보더가 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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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고 또 넘어져도…아프가니스탄 스노보더가 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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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에서 스노보드 종목에 처음 출전한 아프가니스탄 선수들. 스포티비(SPOTV) 영상 갈무리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에서 스노보드 종목에 처음 출전한 아프가니스탄 선수들. 스포티비(SPOTV) 영상 갈무리


넘어지고 또 넘어진다. 기술은커녕 질주도 겨우 한다. 그런데도 완주한 뒤 팀 동료들과 얼싸안고 감격해 한다. 지난 12일 중국 야부리 스키리조트에서 열린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스노보드 남자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 경기에서 목격된 생소한 장면이다.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다. 아프가니스탄 스포츠에 새 역사를 새긴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이 국제 겨울 스포츠 대회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얼빈 대회 참가 선수 3명 모두 스노보드 종목에 출전했다.



스노보드는 오랜 전쟁으로 지친 그들이 일상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위성티브이 아무(Amu) 티브이에 따르면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스노보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틈새시장이었다. 인프라나 전문 코치진은 부족했지만 사랑받는 스포츠였다”고 한다. 2020년께 전후로 스노보더 공동체가 생겨나는 등 활발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방송된 한국방송(KBS)의 ‘세계는 지금’을 보면, 아프간 내전 당시 카불에 로켓과 포를 퍼붓는 곳으로 활용된 산에서 젊은이들은 스노보드를 즐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하빕지 아흐마드 무슈타바지가 12일 중국 야부리 스키리조트에서 열린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남자 스노보드 슬로프타일 에서 질주하고 있다. 야부리/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하빕지 아흐마드 무슈타바지가 12일 중국 야부리 스키리조트에서 열린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남자 스노보드 슬로프타일 에서 질주하고 있다. 야부리/AFP 연합뉴스


그들은 국제 대회에 참가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기술을 배워야 하고, 장비가 부족해서 스노보드를 나눠 타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지금을 즐긴다. 더 카불 타임스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스포츠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얼빈 대회에 참가한 하빕지 아흐마드 무슈타바는 탈레반 1차 전쟁으로 인해 네 살이던 1991년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캐나다 토론토에 정착했다. 그는 2015년 인생의 최악의 시기를 겪으며 외롭고 비참한 마음을 달래려고 스노보드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한 인터뷰에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프가니스탄인으로 (국제 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하얼빈에 도착해서야 아프가니스탄 여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번 대회에서 서툴고 어설펐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의 힘을 믿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앞으로도) 금메달을 딸 만큼의 실력은 안될지, 제 아이가 언젠가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것이 시작입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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