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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털어 마약사범 잡는 검찰…"상금 쪼개 수사비로 쓴다"

머니투데이 조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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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털어 마약사범 잡는 검찰…"상금 쪼개 수사비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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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영의 검찰聽]

[편집자주] 불이 꺼지지 않는 검찰청의 24시.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사에 담을 수 없었던 얘기를 기록합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있는 돈, 없는 돈 어떻게든 탈탈 털어서 수사비에 쓰고 있어요."

마약수사를 담당하는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돈이 없어' 마약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고 한탄했다. 국회가 지난해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전액 삭감해서다.

특활비는 기밀유지가 중요한 범죄 수사에 주로 쓰인다고 한다. 특히 유통책을 찾기 위한 위장 거래가 빈번한 마약수사에 많이 사용된다. 현장에 잠복할 때나 첩보원을 관리하는 데도 특활비가 사용됐다.

대검찰청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일선청으로 내려보낼 수사비가 부족해 지난해 외부 기관에서 받은 상금까지 털어 수사비에 쓰고 있다고 한다. 상금이 수천만원에 이르긴 하지만 기존 마약수사에 쓰던 특활비 규모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검거 가능성이 높은 사건을 선별해 수사비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선 검사 중에서는 자기 지갑을 열어 마약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사비를 보전해줄 예산은 마땅치 않다. 수사를 잘했다고 격려하기도, 앞으로 수사를 열심히 하자고 얘기하기도 어렵다. 사건마다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이 쓰이는데 자기 월급까지 털어 수사하라는 의미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검찰이 지난해 야심차게 꺼내든 '원점타격형 국제 공조시스템' 구축도 쉽지 않아 보인다. 대검은 지난해 10월 기존 태국을 포함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에 수사관을 보내 현지에서 마약수사 공조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당장 이번 달부터 일부 수사관들이 파견을 갈 예정인데 현지 체류비만 나올뿐 정작 수사에 쓰일 특활비가 없다. 숙소비와 식비를 아껴 수사에 써야 하냐는 '웃픈'(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쓰인다) 말들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마약수사 검사, 수사관들의 사기가 바닥이다. 고참 검사들 사이에선 수사를 기획해 마약조직을 잡아들이는 경험 자체가 줄어드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크다. 수사 노하우를 전수받지 못하고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쳐내기만 하면 수사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재경지검의 한 차장검사는 "철이 식으면 다시 달구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릴 수밖에 없다"며 "마약과의 전쟁 선포 이후 여러 사건들로 마약수사가 계속 위축되고 있어 걱정이 많다"고 했다.

4년전 수사권 조정 초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2021년 1월 '500만원 이상 밀수사건'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이 대폭 축소됐을 당시 마약수사관들은 일반 형사사건과 반부패사건 수사에 차출됐다.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권이 회복될 때까지 약 1년6개월간 마약부서는 개점휴업 상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또 다른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아직까지는 사비를 털어 수사하는 검사들도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안 해도 되는 게 아닌가' 식으로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며 "수사권조정 초기 때와 같은 위기감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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