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교사 ‘예고된 범행’
“수업서 배제돼 짜증났다” 진술
교내 난동 등 수차례 폭력 성향
학교선 신고 없이 ‘분리조치’만
교육당국은 학교에 ‘휴직’ 권고
의사 소견서 제출 땐 복직 가능
당국 차원 심의 없어 비판 제기
警, 부검 예정… 본격 조사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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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 찾은 친구들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김하늘양 친구들이 11일 대전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대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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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대전시교육청과 경찰에 따르면 전날 대전 한 초등학교에서 김하늘(8)양을 살해하고 자해를 시도한 여교사 A(48)씨의 범행은 ‘묻지마식 계획살인’이었다. 대전 서부경찰서는 이날 브리핑에서 A교사가 “복직 후 3일 만에 수업에서 배제돼 짜증이 났다”며 수업 배제가 범행 동기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 왔다. A씨는 지난해 12월9일 질병 휴직(6개월)을 냈고 휴직 중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경찰에 말했다. 휴직한 지 20여일 만에 돌연 복직한 것이다. A씨는 복직 후 폭력적 성향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 5일 학교 컴퓨터를 부숴 망가뜨렸고, 6일 교실에서 불을 끄고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에게 “무슨 일이냐, 나랑 같이 퇴근하자”고 말을 건 동료 교사의 팔을 꺾고 헤드록을 거는 등 난동을 부렸다. 주변에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해야 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학교 측은 별도의 경찰신고 없이 교감 차원의 구두주의를 준 후 그나마 맡았던 보결수업에서도 전면 배제했다. 6일 이후부터 모든 수업을 맡지 못한 A씨는 교감 옆 자리에 종일 앉아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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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흉기에 찔려 숨진 고 김하늘(8) 양이 다닌 대전 서구 모 초등학교 2층 시청각실 외부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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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10일 오후 학교에서 자기 차를 끌고 2㎞ 떨어진 주방용품 판매처에서 직접 구입한 흉기를 사서 교내로 돌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오는 어떤 아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며 “시청각실 밖에서 돌봄교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와 같이 죽을 생각이었다.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아이에게 ‘책을 주겠다’며 시청각실로 들어오게 해 목을 조르고 흉기로 찔렀다”고 경찰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장소인 학교 2층 복도와 돌봄 교실, 시청각실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수술을 마친 A씨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건강을 회복 중인 상태다. 경찰은 이르면 12일 A씨에 대한 본격 조사에 돌입하는 한편 하늘양 부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교육당국이 정신질환 병력 교원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신질환을 앓는 교사가 원하면 복직해 근무할 수 있는 데다 교육당국 차원의 심의는 유명무실했기 때문이다. A씨는 그동안 우울증 등을 이유로 병가를 여러 차례 낸 데 이어 지난해 12월엔 휴직계를 냈다. 휴직이 받아들여진 지 20여일 만에 ‘직무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의사 소견서를 내 복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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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교육청은 정신적·신체적 질환으로 교직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교사를 대상으로 교육감 직권으로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대전시교육청은 2021년 이후 관련 심의위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위원회를 개최할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정신질환 병력은 민감한 개인정보인 데다 교육당국이 나서서 심의위를 남발하는 것도 인권침해 등 문제 소지가 있다”고 해명했다.
교육당국은 하늘양이 살해됐던 10일 오전에야 교육지원청 소속 장학사를 파견해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에 A씨에 대한 대면 조사는 없었다. 교육지원청은 같은 날 오후 학교 측에 유선으로 연락해 ‘A씨를 학교에서 분리해야 한다. 휴직을 권하고 응하지 않으면 학교장 직권으로 분리조치하라’고 권고했지만 뒤늦은 대책이었다.
서울 초등학생 학부모 김도경(38)씨는 “우울증으로 휴직 후 복직한 교사가 재휴직을 신청했는데도 거부당했다는 점이 문제”라며 “아이들을 맡는 직업인데 이런 관리가 이뤄진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씨도 “우울증으로 휴직까지 했다면 학교 관리자가 복직을 제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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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초등학생 피살사건이 발생한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초등학교 정문 옆 담장에서 시민들이 국화꽃과 과자·음료 등을 놓으며 고 김하늘(8) 양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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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사노동조합은 “교육청 개입으로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고 비판했다. 서울교사노조는 “가해 교사는 동료 교사에게도 폭력적 행위를 가하는 등 이상징후를 보였지만 학교에 계속 출근했다. 교육청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교육청의 적극 개입은 학생의 학습권 보호와 학교 내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교섭단체 연설 등 주요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12일에는 전국 17개 시·도교육감이 참석하는 긴급 협의회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교원 정신건강 관련 대책 등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이날 하늘양 장례식장을 찾아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배우고 생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는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전 초등학생 사망사건과 관련한 긴급현안질의를 진행키로 했다. 교육위원들은 이 부총리와 대전교육청 및 학교 관계자 등을 불러 사건 경위를 파악할 예정이다.
대전=강은선 기자, 김유나·이예림·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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