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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아이들 맡은 선생님이 “왜 나만 불행해야 돼?”…교사 정신건강 방치가 부른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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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가 8세 아동 살해…정신질환 교원 관리 구멍

우울증 휴직후 20일만에 복직
범행 나흘전 동료교사 헤드록
폭력성향에 다른 교원들 불안

교육청도 이상징후 알았지만
“적극 조치땐 인권침해 소지”
우울증 호소 교사 급증하는데
질환교원심의委 5년째 전무


매일경제

지난 10일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A양이 교사에 의해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일 범행이 발생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A양을 추모하고 있다. 2025.2.11 [이승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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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8세 여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40대 여교사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사는 최근 동료 교사에게 헤드록(상대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죄는 것)을 걸고 손목을 강하게 누르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수업에서 배제 조치됐는데, 나흘 만인 지난 10일 학생을 살해하면서 안전해야 할 교실이 정신질환자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대전시교육청과 경찰 등에 따르면 해당 학교 1학년생 김하늘 양을 살해한 교사 A씨는 정신질환으로 작년 12월 9일부터 6개월간 질병휴직에 들어갔지만 돌연 20여 일 만에 복직했다. 우울증으로 6개월의 휴직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소견에 따라 휴직 신청을 해놓고, 20여 일 만에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회복됐다’는 의사 소견서와 함께 복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복됐다던 A씨는 복직 후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동료 교사들을 불안에 떨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모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해당 교사는 지난 5일 업무 포털에 접속이 빨리 안 된다며 기기를 파손했고, 6일에는 동료 교사에게 헤드록을 걸고 손목을 강하게 부여잡아 논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동료 교사에게 “왜 나만 불행해야 하느냐”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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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A양이 교사에 의해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일 범행이 발생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A양을 추모하고 있다. 2025.2.11 [이승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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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수업에서 배제돼 짜증이 나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종명 대전서부경찰서 서장은 A씨가 경찰에 “복직 후 3일 만에 짜증이 났다. ○○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8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범행 당일 오후 시간대 외부에서 흉기를 사서 교내로 들어와 돌봄교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와 같이 죽을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어떤 아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범행 대상을 물색했고,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아이에게 ‘책을 주겠다’며 시청각실로 들어오게 해 목을 조르고 흉기로 찔렀다”고 범행 방법을 경찰에 진술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학교 교육 현장에서 정신질환자를 거를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교사 신규 채용 시 신체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하지만, 정신질환 검사 결과를 제출하는 절차는 현재로선 없다. 질병휴직인 경우 휴직할 때 기재했던 병명이 완치됐다는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받은 의료기관의 진단서와 소견서만 제출하면 교사의 휴·복직을 제재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질병휴직은 청원휴직으로, 휴직 사유가 소멸하면 30일 이내 즉시 복직하게 돼 있다”면서 “해당 정신질환으로 인한 휴직이 반복됐다면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수 있었겠지만 한 번 휴직한 것이라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 우울증으로 휴직했는데 매번 심의위원회를 열어 다툰다면 인권 침해 등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에 따르면 2020년에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한 번 열린 이후 최근까지 심의위원회가 개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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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는 보육시설·교육기관 종사자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보육시설·교육기관 직장가입자는 2018년 1만3975명에서 2023년 2만6408명으로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24년 상반기에만 2만여 명이 우울증 진료를 받았다.

2023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초등학교 종사자는 9468명이었다. 2024년 상반기에만 7004명이 우울증 진료를 받아 연간 우울증 호소 직원 수는 2023년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도별 초등학교 종사자 1000명당 우울증 진료 인원도 2018년 16.4명에서 2023년 37.2명으로 5년 만에 2.3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신규 채용 시 정신건강 검사를 시행하고, 교사가 희망할 경우 무료로 정신건강 검진을 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신입 교사가 임용된 후 신체검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우울증 등 정신건강을 검사하는 절차를 추가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며 “우울증이 중년 이후에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교사가 희망하면 무료로 검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교섭단체 연설 등 주요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고 대전교육감을 만나 상황을 공유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부총리는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배우고 생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12일 17개 시도교육감이 참석하는 긴급 협의회를 개최해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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