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면 세워주며 '2027년 방위비 GDP 2% 증액' 기존 정책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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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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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미일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곧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야 할 한국 외교가 '벤치마킹'할 지점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이시바 총리와 미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2027년까지 방위비를 나의 첫 임기 때보다 2배 올리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에 대해 미국 동맹국들의 기여가 커져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왔는데, 일본이 트럼프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특히 이시바 총리는 이번 조치가 일본 '스스로의 결정'임을 강조했다. 그는 9일 NHK에 출연해 방위비 증액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없었다는 점을 설명하며 "그것은 일본이 판단한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그런데 일본의 결정이 반드시 트럼프 대통령의 '니즈'를 맞췄다고만 보긴 어려운 측면도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국방비' 대신 '방위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간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오다 지난 2022년 '국가안전보장전략'을 개정하면서 2027년도까지 GDP의 2%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방위성은 2025년도 방위비 예산으로 약 8조 5389억 엔(약 78조 2000억 원)을 책정했는데, 최근 몇 년간 증가 추세로 볼 때 2027년엔 10조 엔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트럼프 1기 때인 5조엔 안팎에서 2배가량 늘어나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 정책차관에 임명한 엘브리지 콜비가 주장한 'GDP 대비 방위비 3% 인상'도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 정상의 면을 세워주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긴 부분도 있다. 방위비 증액은 일본의 '미국산 방위 장비 구매' 여력이 늘어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군사력 강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즉, 트럼프가 일본의 방위비 2배 인상을 '성과'로 내세우며 만족을 표했다는 것은, 일본이 트럼프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실제로 출혈을 감수한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회담의 분위기를 전적으로 미국에 맞춰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이시바 총리는 방위비 증액 외에도 이번에 대미 투자를 1조 달러로 늘리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실제로 만나니 아주 진실하고 강력하며 미국을 위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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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2.8 ⓒ AFP=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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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일본으로선 상당히 선방한 것, 2027년까지 방위비를 GDP 대비 2% 증액한다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라며 "구체 내용이 없이 '방위비 2배 증액'만 얘기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요구하는 GDP 대비 5% 증액이라는 황당한 수준이 아닌 2%로 이번에 선을 그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2026년부터 적용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지난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미리 체결한 한국도 일본의 '트럼프 접근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올해 초 공개한 '2024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기준 GDP의 2.8%의 금액을 국방비(약 57조 원)로 지출했다. 이는 1.2%인 일본에 비해 높은 수치로, 미국산 전략자산 구매 등을 감안할 때 향후 트럼프와 대면 자리에서 기존에 누적된 '한국의 동맹 기여'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국회 비준을 거친 한국과 달리, 미국은 행정협정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뒤집기가 여전히 가능한 상황에서 '합리적 국방비 증액'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나온다.
박 교수는 "우리한테 최적의 옵션은 미국이 한국에 합리적으로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국방비를 꾸준히 증액해 오고 있다"라며 "트럼프가 SMA 증액을 요구하거나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등 특정 사안으로 우리한테 접근해 오는 것보다 애매한 국방비 증액을 언급하는 것이 우리한테 유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시바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저자세 외교'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철저히 트럼프를 위한, 그의 기대에 호응하려는 일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자리"라며 "다만 너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잘못하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이시바 총리는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단순히 미국의 말을 따르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트럼프 의견에 반대하는) 다른 미국의 우방국, 유럽 국가와의 관계 설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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