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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수)

이슈 미술의 세계

기자들의 모임 -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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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사진 no. 99

● 사회부 기자들이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강연회를 열다

백년사진 99번째 포스팅입니다. 오늘은 개인 소회를 먼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백년사진이라는 코너를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가능한 1주일에 한 번씩 사진 관련 얘기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이면 100회가 됩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포맷의 글이라 서툴기도 하고 이 방법이 독자들에게 유용한 콘텐츠인지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이 글을 쓰는 저는 동아일보 사진기자입니다. 졸업 후 현재까지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번의 고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후회보다는 만족이 큰 직업입니다.

현장기자와 에디터 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사진기자들이 지금 찍고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사진이 제대로 길을 잡고 가는 것인지, 혹시 또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하다가 ‘온고지신’의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100년 전 근대 신문이 처음 만들어지고 사진기자들이 일을 시작하면서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을 카메라로 기록하기 시작했던 방식은, 우리가 지금 찍고 유통시키는 이미지의 원류 같은 것일 겁니다.

100년 전 사진기자들이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방식은 지금까지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하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연구와 고민이 있었을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 사진기자들의 현실 재현 방식이 차용되기도 하고, 미술이나 그래픽의 소통 방식이 사진에 응용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분단 사회라는 특수함과 군부 독재와 민주화의 과정도 우리 사진에는 특징으로 녹아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오늘의 신문 사진 형식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이유로 옛날 사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야 더 적절하고 좋은 사진을 신문 지면과 인터넷에 남길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백년사진은 그런 점에서 신문 사진의 답을 구하기 위한 저의 자구책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고른 사진은 1925년 2월 7일 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기자들 모임” 사진입니다. 철필 클럽이라고 하는 사회부 기자들의 모임인데 한국 신문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진일 수 있겠습니다. 아래 여자 토론 사진은 기자들 강연과 관계없는, 조선 여자학원 주최로 천도교 기념관에서 열린 신춘 남녀토론회 모습입니다.

동아일보

◇ 사진설명: 위는 신문강연, 아래는 여자 토론 / 1925년 2월 7일자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신문 강연 성황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서울 안 각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조직된 철필(鐵筆) 구락부(club)에서 주최한 신문강연회(新聞講演會)는 조선에 아직 이 종류의 강연이 처음이었음과 또 연사가 일반 사회에 날마다 ‘뉴스’를 제공하는 신문 꾸미는 기자이었으므로 정각 전부터 청중이 답지하여 근래에 처음 보는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제 그 경과를 자세히 보도하면 정각에 동아(東亞)의 김동진(金東進)씨의 간단한 개회사가 끝나자 뒤이어 조선의 민태원(閔泰瑗)씨의 광장설이 있고 그 다음 동아의 최원순(崔元淳)씨 조선의 리서구(李瑞求)씨 매신(每申.매일신보)의 홍승구(洪承耉)씨 등 여러 변사의 장시간 강연이 끝나자 그다음 자유 등단이 되어 계속하여 조선의 리석(李奭)씨와 동아의 최긍(崔兢)씨의 강연이 있어 청중에게 많은 감흥을 주고 10시 경에 산회하였는데 예정한 변사 동아의 송진우 (宋鎭禹)씨가 사고에 의하여 미참석하였음은 섭섭한 일이었으며 더욱 이번은 전부 사회부 근무 기자로써 한 강연이므로 조선 신문사 역사상에 영원히 기록을 끼쳤다더라.

게재지 동아일보 저작권
게재일 1925-02-07


● 1924년 겨울 결성된 사회부 기자들의 모임
사회부 기자는 사건 사고를 담당합니다. 경찰서 담당 기자, 법원과 검찰청 담당 기자, 시청과 구청 담당 기자 등이 있습니다. 100년 전에도 그랬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가장 힘들고 바쁜 기자들입니다. 2024년 말 전남 무안공항에 추락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와 윤석열 대통령 계엄 발표 이후 이어지고 있는 시위와 헌법재판소 변론, 법원에서의 공방 등이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 몫입니다.

그런 사회부 기자들이 100년 전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강연을 연 것입니다. 철필 구락부가 어떻게 구성되었던 조직인지 기사를 좀 더 찾아보았습니다. 강연을 열기 3개월 전인 1924년 11월에 관련 기사가 있었습니다. 사회부 기자 중에서 일본인을 제외하고 조선인 기자들만 가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전에 있던 동우클럽의 후신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철필 구락 조직 - 각 신문 사회부 기자로 기자단체 조직

부내 4군데의 조선문 신문사 사회부 기자 (社會部記者) 20여 명은 그저께 오후 5시경부터 부외 청량리 (淸凉里永導寺)에 모여 철필 구락부 (鐵筆俱樂部)라는 신문기자 단체를 조직하였는데

부원의 자격은 어떤 신문사를 물론하고 부내에 있는 신문사에 재근하는 조선인 사회부 기자에 한한다하며 취지는 서로 친목하며 결속하여서 기자생활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것인데 형식은 이번에 새로 조직한 것이나 그 전부터 있던 동우구락부(同友俱樂部)의 후신이라더라

게재지 동아일보 저작권
게재일 1924-11-21 게재여부 게재 [석간]
판/면 0 / X2


강연이 끝난 후 철픽 클럽이라는 기자협회는 일본인 기자까지 포함하는 조직으로 재편됩니다. 1926년 11월 기사입니다.

사회부 기자단 - 각 사 사회부 기자단체

경성(京城)시내에 있는 각 신문 통신사 (新聞通信社) 사회부 기자로 발기한 경성 사회부기자단 (京城社會部記者團)은 그제 3일 오후 5시 반에 시내 돈의동 (敦義洞) 명월관(明月舘)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조선사람 일본사람을 합하여 참가자가 24명이었으며 『신문통신기자 본령(本領)을 본받아 정의(正義)에 입각하여 사회의 순정(純正)한 발달을 기함』이란 강령과 5개조의 규약을 통과하고 간사 5인을 아래와 같이 선거한 후 만찬과 여흥이 있은 후 동 10시 반에 산회하였더라.

▲徐範錫(朝鮮日報)
▲秋山(京城日報)
▲栗原(朝鮮新聞)
▲吉浦(電報通信)
▲柳志永 (東亞日報)

게재지 동아일보 저작권
게재일 1926-11-05


● 기자들의 모임 -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오후 5시를 조금 넘겨 만나서 10시 반쯤 회의와 식사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생활 습관 같습니다.

현재 기자들이 소속된 단체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취재기자, 편집기자, 사진기자 등을 포괄합니다. 관훈클럽은 중견 취재기자들 모임입니다. 편집기자협회와 사진기자협회, 어문기자협회 등은 신문사의 직능이 동일한 기자들끼지의 친목 단체입니다. 여기자협회도 따로 존재합니다.

방송사 기자들의 경우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방송기자, 영상기자협회에 별도로 가입합니다. 인터넷 언론사의 경우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단체들을 단체의 공식 홈페이지 내용을 참고해서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전국의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현직 기자들 1만 3천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대의 언론단체입니다.
언론자유 수호의 기치를 내걸고 1964년 8월 17일 창립된 한국기자협회는 당시 군사정권이 추진하던 비민주적 악법인 언론윤리위원회법 저지를 위한 투쟁의 구심체로 창립되었습니다.
언론자유수호, 기자 자질향상, 기자권익옹호, 조국의 평화통일, 국제교류 강화 등 5대강령을 표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기자협회(https://www.journalist.or.kr/home/company.html?p_num=1)

-관훈클럽은 언론 연구와 친목 도모를 위해 1957년 1월 11일 창립한 언론인들의 모임입니다. 창립회원 18명의 작은 모임으로 출범한 관훈클럽은 가장 오래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대표적 언론단체로 성장하며 한국의 언론 발전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전현직 언론인 1,000여명입니다.
https://kwanhun.com/page/7_1.php

-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사진기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취재 환경 개선을 통한 언론 문화의 발전과 보도사진의 지속적 연구를 목적으로 지난 1964년 4월 24일 한국사진기자단으로 출발했습니다. 한국사진기자협회 https://www.kppa.or.kr/

● 개인적인 기자협회 활동

사진기자인 저는 한국기자협회에 회비를 내고 사진기자협회에도 회비를 냅니다. 요즘처럼 좌파와 우파의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는 기자들에 대한 비판 정도가 높아집니다. 안타깝지만 카메라를 메고 있기 때문에 신분을 속이기 어려운 사진기자들에게 집회나 행사 현장에서 따지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기자협회가 언론노조 산하에 있다고 해서 기자들이 민주노총의 지시를 받는다고 단순화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기자단체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매년 열리는 기자협회 축구대회는 10년 전까지는 참가했었고 그 외의 행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 언론의 미래에 관한 세미나 안내가 오면 관심을 갖기는 합니다. 사진기자협회 체육대회는 매년 참가하고 협회 부회장과 감사 역할도 몇 년간 하기도 했습니다.

사진기자협회 회원 중에 국회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기자실을 같이 사용하면서 국회사진기자단이라는 임의 단체를 만들어 두고 있습니다. 기자실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대기하고 있다가 일정이 생기면 국회 내외부에서 사진취재를 합니다. 대통령실출입사진기자단도 있습니다. 이들은 회비를 걷어 기자실 사무용품과 간식비 등을 충당하지만 홈페이지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헌법재판소와 서울구치소, 법원 취재 등을 하는 사진기자들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그날 그날 인원 배치를 하는 에디터들의 결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사회부 기자들의 경우 경찰청 출입기자단과 검찰청 출입기자단, 법원출입기자단 등이 있지만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100년 전 사회부 기자들의 강연을 기록한 사진을 통해 요즘 기자들 단체에 대해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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