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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삼성전자 시총 5배”라더니… 첫 시추만에 사실상 실패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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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경제성 없다]

산업부 “경제성 기준과는 큰 격차”… 추가 탐사시추 나서지 않기로

성공률 5∼10% 불과한 자원탐사… “정부가 지나치게 성급한 발표” 지적

동아일보

지난해 12월 20일부터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1차 탐사 시추 작업을 진행한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 한국석유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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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첫 시추 만에 사실상 실패로 결론이 난 건 탐사 결과 확인된 가스량이 사업성을 기대할 수 있는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탓이다. 정부가 자원 매장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봤던 대왕고래 유망구조(석유·가스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구조)에선 추가 탐사 시추조차 나서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지난해 6월 대왕고래를 포함한 7개 유망구조의 가스 매장량을 ‘삼성전자 시총의 5배’라고 표현하며 기대감을 키운 만큼 불확실한 자원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과하게 부풀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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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왕고래, 추가 탐사 시추 없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수치는 정밀 분석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준에 비해서는 격차가 좀 컸다”고 밝혔다.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에서는 자원 매장량이 실제 확인되더라도 이를 파내는 비용 대비 이익이 날 만큼 충분한 규모의 석유나 가스가 있어야 상업 생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1차 탐사 시추에서 검출된 가스량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거나 추가 시추를 통해 정밀한 검증이 필요한 규모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시추 결과 대왕고래 전체의 가스 포화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대왕고래 구조 자체에 대해 추가 탐사 시추를 할 필요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1차 탐사 시추를 위해 뚫었던 구멍까지 원상 복구를 마친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0일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 약 40km 떨어진 대왕고래에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를 투입해 이달 4일까지 탐사 시추 작업을 진행했다. 웨스트 카펠라호는 수심 1260m에서 시작되는 해저 지형을 1761m 깊이까지 파내 1700개 이상의 관련 데이터를 수집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시추 작업이 향후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의 다른 유망구조의 탐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에 추출한 시료 자료와 데이터를 전문 용역 기관을 통해 정밀 분석해 다른 유망구조 시추 작업에서의 오류를 줄이는 데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앞선 1차 유망성 연구 자료를 이번 탐사 시추 결과와 비교한 결과 석유나 가스를 담을 수 있는 ‘석유 시스템’의 관점에서는 기존 자료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이런 결과를 남은 6개 유망구조에 적용해 (정확한 시추 지점의) 오차 보정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발표 지나치게 성급… 10차례 이상 시추 끝에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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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단 한 차례의 시추 작업 만에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그간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온 정부 입장은 난감해졌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직접 ‘깜짝 발표’에 나서며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유망구조 7곳에 최대 140억 배럴의 가스와 석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발견됐다고 알렸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의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당시 약 455조 원)의 5배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상 자원 개발 사업은 탐사 작업에 돌입하더라도 시추 성공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산업부 내부에서조차 “투입되는 금액 및 노력 대비 성과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자원 개발 사업”이라며 “탐사 성공률은 약 5∼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평가할 정도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산업부 장관이 직접 나서 매장 가능성과 기대 성과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은 자원 개발 기대감을 키웠다는 의미다. 이날 산업부 고위 관계자 역시 이를 두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죄송하다”며 “심해 첫 탐사 케이스였고, 일반적으로 첫 케이스의 성공은 ‘로또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 위해 낮은 성공 확률을 끈질기게 쫓아가는 과정인데, 정부의 성급한 발표가 이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적으로 개발 중인 유전이 대부분 10차례 이상의 시추 끝에 성과를 거뒀는데 대왕고래의 경우 첫 발표부터 지나친 기대감을 심어준 탓에 실패에 따른 후폭풍이 커졌다는 의미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대왕고래 1차 시추에서 석유나 가스를 찾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 (다른 유망구조의) 시추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정보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대왕고래 기대 성과가) 나왔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휘말린 것인데 그것만 없었어도 1차 시추 실패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종세 한국해양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역시 “자원 개발이라는 것이 (기대 성과가) 커야 시도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정보가 많지 않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첫 발표 때) 너무 확정적으로 얘기한 부분은 조심스러웠어야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세종=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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