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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6 (일)

라면 100원이던 시절 '7000억대 사기' 친 장영자, 5번째 구속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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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 사기꾼' 장영자 81세에 또다시 구속돼
154억 대 위조수표 사용 혐의로 1심은 무죄
항소심 "과거 수법과 유사해" 징역 1년 선고
한국일보

제5공화국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를 저지른 장영자씨가 150억 원대 위조 수표를 사용한 혐의로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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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를 저지른 '큰손' 장영자(81)씨가 또다시 사기 행각을 벌여 출소 3년 만에 5번째로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에는 150억 원대 위조수표를 사용한 혐의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청주지법 형사항소3부(부장 태지영)는 지난 22일 위조유가증권 행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했다. 장씨는 지난 2017년 7월 서울 서초구 한 호텔에서 농산물을 공급받기로 한 모 업체 대표 A씨와 계약을 체결한 뒤, 154억 2,000만 원의 위조수표를 선급금 명목으로 건넨 혐의를 받는다.

장씨는 재판 과정에서 '위조수표인 줄 몰랐고, 지인에게 발행 경위를 알아보라는 취지로 수표를 건넸는데 지인이 임의로 업체에 건넨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은 "거래 업체가 150억 원에 달하는 농산물을 납품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선급금 명목으로 거액의 수표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며 장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장씨)이 위조수표인 점을 인지했다면 즉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했을 텐데, 수개월 후에야 납품받을 농산물의 대금 지급 용도로 쓴 것 또한 이례적"이라는 게 1심 판단이었다.

법원 "금융거래 안전에 대한 신뢰 훼손" 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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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휠체어에 탄 채 법원에 나오던 장영자씨. 260억 원대 구권화폐 사기에 가담했던 장씨는 2006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 확정 판결을 받았고, 2015년 1월 만기 출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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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장씨가 이 사건 범행을 통해 취한 이익이 있고, 과거 장씨 수법과도 닮은 점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태 부장판사는 "원심은 이 사건으로 피고인이 얻은 이익이 없으므로 수표 위조 여부를 몰랐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피고인은 당시 계약을 체결하면서 A씨로부터 이행보증금 3,000만 원을 지급받은 뒤 돌려주지 않았다"고 짚었다. 또 "과거 피고인이 유죄를 확정받은 사건과 관련해 위조수표 액면금액이 이번 사건 위조수표와 일치하고, 수표번호도 과거 사건 위조수표와 연속된다"면서 "타인에게 위조수표를 건네 현금화하도록 하는 방식 등 범행 수법도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장씨는 과거에도 액면가 154억 2,000만 원 위조수표를 사용한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2020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확정받았는데, 당시 갖고 있던 위조수표를 이번 사건 범행에서도 쓴 것이 아니냐는 취지로 풀이된다.

태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사기 등으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누범 기간 중 또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고인은 이례적일 정도의 고액의 위조 증권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금융거래 안전이나 이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는 범행을 했음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공판기일에 여러 차례 불출석해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7,000억 원대 어음 사기 등 구속만 다섯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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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어음 사기' 혐의로 구속된 장영자씨 모습.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의 처제였던 장씨는,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남편 이철희씨와 함께 사채시장을 통해 7,000억 원에 육박하는 사기 행각을 벌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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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척으로, 그가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이번이 다섯 번째다.

장씨는 1983년 남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과 함께 7,000억 원대 어음 사기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당시 정부 1년 예산의 10%에 가까운 금액으로,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1983년이면 라면 한 개당 100원이던 시절이다. 이 사건으로 장씨 부부뿐 아니라 당대 실세였던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과 은행장 둘, 기업인 등 30여 명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장씨는 형기를 5년 남겨 둔 1992년 가석방됐지만, 출소 1년 10개월 만인 1994년 140억 원 규모 차용 사기 사건에 또다시 가담해 징역 4년을 선고받는다.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지만, 2000년 또다시 260억 원대 구권화폐 사기 사건에 가담해 구속기소된다. 그는 2006년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받고, 2015년 1월에야 만기 출소했다.

장씨는 2018년 초에는 남편인 고(故) 이철희씨 명의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기증하려는데 비용이 필요하다는 등 피해자들을 속여 약 6억 원을 편취하고, 154억 2,000만 원 위조수표 사용 혐의로 다시 한 번 구속기소돼 2022년에야 출소했다.

장씨는 이번 다섯 번째 사건과 관련,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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