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새헌법안’ 발표회에서 박찬욱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진만 교수, 하승수 변호사, 장영수 교수, 박 교수, 박명림 교수. 김종호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로 헌법 개정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법학계와 정치학계 저명 학자들이 2년 동안 대화문화아카데미에 모여 20여 회 토론을 거쳐 만든 ‘새헌법안’을 20일 발표했다. 현재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틀을 유지하되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대폭 덜어내는 게 이날 발표된 안의 핵심이었다. 새 헌법안 작성에는 박은정 이화여대(법학)·박명림 연세대(정치학)·박찬욱 서울대(정치학)·장영수 고려대(법학)·조진만 덕성여대(정치학) 교수와 하승수 변호사가 참여했다.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은 “난데 없는 비상계엄과 대통령의 탄핵·구속으로 정국이 내전 상태로 들어가고 있고 삼권분립이 왜곡되고 짓밟히고 있다. 권력구조를 재편하는 헌법 개정 없이는 해결책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새헌법안 작성의 배경을 설명했다.
새헌법안은 특히 대통령에게 집중된 인사권을 제한하는 데 주력했다. 헌법재판관 모두를 헌법재판관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자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관 9명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 3명씩 지명·추천하도록 하는 현재 방식에선 국회 몫 중 여당이 추천하는 1~2명과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3명의 임명 과정에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하는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지만, 새헌법안은 대통령 개헌안 발의권을 삭제하는 대신 국민발안제도를 채택했다. 총선 선거권자 150만 명의 찬성으로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새헌법안은 국회를 공화원(상원)과 민주원(하원)으로 나누는 양원제를 채택했다. 공화원은 의원 100명으로 임기 6년으로 하되, 2년마다 의원 중 3분의 1씩 교체한다. 공화원은 광역 대표성을 토대로 공공 이익과 지방 분권에 기여하는 성격이다. 민주원은 의원 300명으로 임기 4년으로 하되, 3선을 초과할 수 없다. 민주원은 현재 지역구 의원과 유사한 대의기관이다. 박찬욱 교수는 “승자 독식의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서 양원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새헌법안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도 담겼다.
새헌법안은 1987년 개헌 이후 바뀐 사회 환경도 반영했다. 현재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이 전부인 차별금지기준에 ‘신체적 조건, 정신적 장애, 성적 지향, 사회적 신분’ 등을 추가하고, 기후생태위기 대처에 대한 국가의 책임도 명시했다.
행사엔 정계·학계·언론계 등의 관계자 30여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5년 단임제’ 유지 제안을 둘러싼 토론이 뜨거웠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새헌법안이 비상계엄 사태 등 현 상황을 반영한 개헌안인지 의문이 든다. 6공화국 틀 안에서 대통령 권한을 일부 줄이는 건 현재 정치적 불안 요소를 해소하는 데엔 부족하다”며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장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개헌도 정치개혁의 일환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를 바꾸는 게 더 시급하다. 다당제로 가야 분권형 개헌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시점을 일치하기 위해 대통령 임기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이번에 발표한 내용을 다듬어 다음 달 25일 새헌법안 전문(全文)을 담은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윤성민·김정재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