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군의날인 지난 10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행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김용현 증인의 증언을 먼저 듣고 그 다음에 다른 증인 신문을 하는 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합당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1)
“꼭 부탁드립니다. 피청구인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에 필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2)
“김용현 증인의 진술을 허락하지 않는 건 공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3)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16일 오후 2시에 열린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 윤 대통령 쪽 대리인들은 재판이 끝나 자리를 뜨려는 재판관들을 향해 몇번이고 부탁했다. 요청사항은 자신들이 신청해 증인으로 채택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첫번째 증인으로 신문해 달라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 쪽에서는 증인을 모두 5명 신청했는데 김 전 장관,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 나머지 3명은 부정선거와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결국 헌재는 17일 윤 대통령 대리인단의 신청을 받아들여 김 전 장관과 김현태 단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첫 증인으로 김 전 장관을 부르기로 했다. 통상 재판에서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한다. 윤 대통령 쪽은 김 전 장관 증인신문을 첫 순서로 하는 데 왜 그렇게 간절했던 걸까? 과연 그 결정은 합리적 선택이 될까?
‘포고령 베꼈다’ 답변서의 진실
윤석열 대통련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이 진행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피청구인 법률대리인단이 착석해 있다. 공동취재사진 |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과 내란 2인자로 기소된 김 전 장관이 12·3 내란사태의 공동 책임자라는 사실은 이미 기소된 김 전 장관 등 군 관계자들의 공소장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비상계엄은 대통령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본입장도 두 사람은 공유한다. 김 전 장관은 수감 중에도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내용의 서신을 써서 공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김 전 장관은 자신의 확실한 ‘우군’이다.
두 사람은 정말 ‘운명공동체’일까. 최근의 상황을 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헌재에 낸 2차 답변서에서 12·3 비상계엄 당시 포고령 1호에 대해 ‘김용현 전 장관이 국회해산권이 있었던 군사정권 당시의 예문을 그대로 베껴온 것’을 자신이 부주의해 수정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국회 등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포고령 1호는 이번 비상계엄에서 가장 위헌·위법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주장을 통해 ‘위법한 포고령 발령’에 대한 책임을 김 전 장관한테 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 쪽은 “(김 전 장관의) 착오는 없었던 것 같다. (포고령은) 정당하게 작성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포고령 초안을) 검토했다”고도 했다. 포고령 1호의 위법한 내용은 김 전 장관이 실수한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과, 포고령 1호 작성에 윤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김 전 장관의 진술은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날 윤 대통령 쪽은 포고령 1호에 대한 입장을 거듭 묻는 정형식 주심 재판관의 질문에 “포고령과 관련한 내용은 김 전 장관 증인신문을 통해 밝히겠다”며 확실한 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김 전 장관이 심판정에 나와 포고령의 공동 책임자로 윤 대통령을 지목한다면 김 전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꼭 유리한 증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금 중요한 군인들’의 허위진술?
재판부가 채택한 다른 증인들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다. 이들은 국회 또는 수사기관에서 12·3 비상계엄 관련 모든 지시는 윤 대통령한테서 시작했다는 취지로 증언한 이들이다.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총을 쏴서라도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고,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다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윤 대통령 쪽은 이들의 진술이 모두 허위라고 주장한다. 전날 윤 대통령 쪽 배진한 변호사는 “너무 그분들의 진술이 일치되기 때문에 어떤 시나리오에 맞춰서…. 군인들은 제일 두려워 하는 게 연금 사라지는 거라고 한다. 이건 뭐 제 추측이기 때문에 팩트로 말하지 못한다. (윤 대통령이 군인들에게) 그렇게 시키지 않은 게 진실이다”라고 말했다. ‘추측’이라고 얼버무렸지만, 배 변호사의 말은 12·3 내란 사태의 최고 책임자로 윤 대통령을 지목한 이들의 진술이 조작된 허위의 진술이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윤 대통령 쪽은 이들 증인신문이 먼저 이뤄질 경우 재판부에 ‘불법 비상계엄’ 심증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김 전 장관 증인신문을 맨 먼저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 전 장관을 첫 증인으로 부르면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심증을 재판부에게 심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군의 상명하복 관계에 비춰볼 때 후에 나온 증인들이 김 전 장관이 진술한 방향대로 따라갈 수도 있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측 변호인단인 배보윤 변호사가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공동취재사진 |
‘부정선거판’ 만들기
그러나 윤 대통령 쪽의 이런 기대는 더 강력한 ‘부정선거 카드’ 때문에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차 변론기일에서는 윤 대통령 쪽의 앞으로의 변론전략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윤 대통령 쪽 배진한 변호사는 약 1시간30분 변론 가운데 30분을 부정선거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썼다. 각종 감사를 거부하는 선관위로부터 부정선거 관련 자료를 빼내오고 부정선거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선관위를 불법 압수수색하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윤 대통령 쪽 최거훈 변호사는 변론이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으로서 국가 제도를 통해서 그게(부정선거가) 해결되길 바랐는데 해결이 안돼서 대통령이 (비상계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재판에서 입증하려고 한다”면서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도 부정선거 얘기를 다룰 것을 예고했다. 겉으로는 윤 대통령 비상계엄의 합법성을 설명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4·15 총선이 부정선거였음을 헌재에서 판단 받아보겠다’는 게 대리인단의 숨은 의도다.
김 전 장관도 윤 대통령 못지않은 ‘부정선거론자’다. 대리인단은 김 전 장관을 신문하면서도 부정선거 이야기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은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따지는 탄핵 재판의 본질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어서, 이런 전략이 윤 대통령에게 유리해 보이진 않는다.
‘포고령 책임소재’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사이에 틈이 벌어졌고, 대리인단은 탄핵심판의 쟁점을 전혀 못 짚고 있는 상황에서 ‘김용현 카드’는 윤 대통령에 득이 될 수 있을까? 헌재는 전날 윤 대통령 쪽의 신청을 받아들여 김 전 장관의 증인신문을 오는 23일 오후 2시30분에 가장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