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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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탄핵 정국의 혼란 속에서 혐중·반중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의도적으로 확산시켜 지지층을 결집하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편’으로 연결짓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리짜이밍(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중국어로 부르는 것)’의 배후에 중국공산당(중공)이 있고, 도널드 트럼프는 중공을 멸망시키기 위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므로 1월20일 취임하자마자 부정선거를 밝혀내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는 음모론을 만들어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이 황당한 음모론을 부추기고 그에 따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다.
의도적인 ‘혐중 음모론’의 신호탄은 지난해 12월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쏘았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한 직후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은 당시 완전히 태도를 바꿔, 중국발 안보 우려를 계엄 선포의 정당화 근거로 들었다. “중국인들이 드론을 띄워 미국 항공모함과 국정원을 촬영하고,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친중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겨냥한 이 담화를 신호탄으로, 이 대표와 중국을 연결시켜 탄핵을 반대하고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글은 삽시간에 인터넷 포털 댓글을 장악했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과 광화문 탄핵 반대 시위에는 “대한민국을 중국공산당에 바치지 마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특히 12월31일 헌법재판관 2명이 임명돼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본격화할 채비를 갖추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을 친중 세력의 음모로 몰아가려는 혐중 음모론에 직접 가세했다. 지난 2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보수 집회에서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서고, 농사 짓지 않는 트랙터가 대한민국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게 탄핵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5일에는 페이스북에서 ‘다수의 중국인들이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내용의 지지자 글과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4일에는 보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한행동조’(扫韩行动组)라는 스티커가 붙은 차량 사진과 함께 이것이 ‘한국을 제거(멸망)하기 위한 중국의 행동조’라는 주장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소한행동조는 한국 물건을 ‘싹쓸이’ 구매한다는 의미의 한국 물품 구매 대행 업체로 밝혀졌지만, 근거 없이 혐중 공포를 부추기는 가짜뉴스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0일에는 이상휘 국민의힘 미디어특위 위원장이 원내대책회의에서 “엄중한 시기에 이재명 대표가 중국에 정보 전달 가능성이 높은 신화통신 기자가 포함된 외신기자들과 비밀 회동을 가졌다”며 “중국 특파원들은 중국 공산당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재명 대표와의 대화 내용은 그대로 중국 정부에 보고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모임은 미국과 일본, 영국, 중국 언론사들과의 간담회로 드러났다. 해당 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깊은 유감”을 표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항의했지만 국민의힘은 해명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미 보수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혐중이 거대한 산업이 된 상황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매우 ‘효율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조문영 연세대 교수(인류학과)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반공’ 이념이 고용 불안정 시대에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만나 혐중 컨텐츠가 거대한 산업이 되었고,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세력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있다”고 했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교수(중어중국학과)도 “유튜브에서 혐중 음모론은 쉽게 몇십만, 몇백만 조회수를 올리는 산업이 되었다”면서 “정치 세력이 이것을 활용해 국면 전환을 시도하면서, 미-중 패권 경쟁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인한 국제질서의 변화와도 교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고 해석했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가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동일시하면서 ‘중국 공산당(CCP)은 꺼져라’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서 있다. 박고은 기자 |
혐중 음모론으로 지지층을 결집한 탄핵 반대 세력들은 현재 한국의 탄핵 정국을 곧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트럼프 당선자의 ‘반중 메시지’와 부정선거론으로 연결시켰다. 대통령 관저 앞 탄핵 반대 시위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성조기와 함께 트럼프 지지 세력의 구호를 들고, 모자를 쓰고 있다. 이들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도 즐겨 쓰는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와 비슷한 빨간 모자를 쓰고,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것은 외신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도둑질을 멈추라’는 뜻의 스톱 더 스틸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를 주장한 구호였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믿는 선거 음모론과 유사하다.
혐중 음모론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에 호소하는 이런 현상에 대해 김흥규 아주대 정치학과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는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친미 대 친중’ 구도로 바꾸는 프레임 전쟁으로 보수 세력을 결집시켜 윤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이라며 “중국이 한국 내 각 분야에서 초한전(무제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보수 세력의 위기 의식에 호소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트럼프 진영 외곽 인사들을 접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가 최근 비공개 방한해 홍준표 대구시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을 만난 뒤 9일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에는 트럼프 측근 인사인 매튜 슐랩 미국 보수주의연합 공동의장 등이 대통령 관저를 찾아 윤 대통령과 면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대미 네트워크 구축 차원에서 미리 잡혀 있던 일정인데, 윤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 직후에도 이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매너포트와 슐랩 등은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아닌 로비스트고,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지지 세력이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전광훈 목사 등이 트럼프 취임식에 초대 받았다고 떠드는 것도 일종의 가짜뉴스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외국 인사에 대한 초대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이들이 자랑하는 ‘취임식 초대장’은 미국 의원들이 지역구민에게 나눠주는 좌석표 또는 입장권이다.
윤 대통령 지지 세력들이 헌법도 진실도 무시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더라도 ‘강한 외세’인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들이겠다는 데 매달리는 위험한 행태는 계속 주시하고 경계해야만 한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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