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임대 재건축으로 2.1만가구 공급
임시거처지원·LH 재정부담 등 어쩌나
'이주주택 공급에 영구임대 재건축 활용'(2024년 8월14일)→'이주지원대책에서 일차적으로 제외'(12월19일)→'중장기 주택 수급 여건 변화 대응에 활용'(12월30일)
정부는 애초에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재정비 이주 지원 방안 중 하나로 '영구임대 재건축'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뒤로 쑥 밀렸다. 당장 이주 주택으로 활용하겠다며 내민 카드였지만 현실화가 어렵다 보니 '중장기 계획'으로 미룬 것이다.
영구임대 재건축은 처음 제시됐을 때부터 임차인 임시 거처 마련, 이사 지원 등이 걸림돌이 될 거란 지적이 잇따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재정 부담도 숙제다. 실제 이주지원 주택으로 활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1기 신도시 분당 시범지구/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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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임대 재건축 카드'라더니…
정부가 신도시 재정비에 필요한 이주 지원 방안으로 '영구임대 재건축'을 활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지난해 8월이다. ▷관련 기사: 재건축으로 '중동 2.4만·산본 1.6만가구' 늘린다(2024년8월14일)
국토교통부는 당시 '노후계획도시정비 세부계획 수립을 위한 정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이주대책 중 하나로 영구임대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내 영구임대 총 13개 단지, 1만4000가구를 재건축해 이주 지원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 내 영구임대주택이 도심에 위치해 입지 경쟁력이 있고 밀도가 낮아 신규 주택 공급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는 '재건축을 위해 재건축을 한다는 것이냐'는 지적과 함께 각종 부작용 우려를 낳았다.
일단 영구임대 거주 임차인들은 민간아파트 재건축을 위해 방을 빼야 하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영구임대주택 소유자 및 재건축 사업 시행자인 LH의 재정 부담이 높아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인사이드 스토리]재건축이 재건축 낳는 1기신도시?(2024년8월19일)
결국 국토부는 신도시 선도지구 사업의 이주지원 대책에는 영구임대 재건축 방안을 제외했다. 지난해 12월19일 '1기 신도시 이주지원 및 광역교통 개선 방안' 발표 때는 유휴부지 신규 공급, 재건축 사업 속도 제고 등의 내용이 주로 담겼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영구임대 재건축 방안이 대책에 담기지 않은 것과 관련 "임차인들을 이주시키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실제 재건축돼서 시장 물량으로 나오는 시점이 2031년 이후에 되겠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신도시 재건축 이주지원 '졸속대책'…일단 넣고 보자?(2024년12월19일)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는 '2027년 첫 착공, 2030년 첫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구임대 재건축이 선도지구 재건축에 따른 이주 지원을 뒷받침하기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국토부는 이어 12월30일 '1기 신도시 영구임대 재건축 본격 착수' 계획을 내놨다. 신도시 영구임대 1만4000가구를 2만1000가구로 재건축하겠다는 내용이다. 선도지구의 정비 지원, 주거 취약계층 삶의 질 제고 등의 취지도 밝혔다.
하지만 영구임대 재건축은 당장 이주 지원 주택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중장기 공급 물량으로 쓰일 전망이다. 국토부는 "(영구임대 재건축으로) 추가 공급되는 물량이 신도시 정비사업의 중장기적인 주택수급 여건 변화 대응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상 단지는 △분당 청솔6(1300가구)·하안6(1500가구)·목련1(1500가구)·한솔7(1700가구) △일산 흰돌4(1100가구)·문촌7(600가구)·문촌9(500가구) △평촌 및 산본 관악(500가구)·가야2(900가구)·매화1(1300가구)·주몽1(1200가구) △중동 한라1(900가구)·덕유1(1000가구) 등이다.
국토부는 이들 1만4000가구를 재건축하면 7200가구를 추가 공급(순증 물량)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이들 단지는 이르면 2027년부터 이주를 시작해 2037년까지 순차적으로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영구임대 연차별 순차 이동계획(안)/자료=국토교통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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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임차인 '이주·임시 거처'
관건은 임시 거처다. 영구임대 재건축 시 기존에 살던 임차인을 내보내려면 그들이 거주할 임대주택을 제공해줘야 한다. 하지만 임차인들이 원하는 위치, 가격에 임대주택을 마련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부는 영구임대 임차인에게 가까운 공공임대주택을 임시 거처로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5개 신도시 인근에는 기 공급된 영구임대 9곳(4300가구) 등 총 1만3000가구의 활용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이 위치한다.
LH는 재해·재난, 이주 지원, 전세사기 피해지원 등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의 공실을 일정 비율(통상 3~5%)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1기 신도시 인근 영구임대는 4300가구뿐이라 재건축 추진 전체 가구수(1만2000가구)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하다.
만약 영구임대 외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될 경우 높아지는 임대료 부담이 문제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모집한 영구임대 입주민모집공고를 보면 강남구에 위치한 한 영구임대아파트 전용면적 31~32㎡의 수급자 전형 임대 보증금은 327만8000원, 월 임대료 6만5230원이다.
서울 지역 전체로 보면 통상 수급자 임대 보증금은 200만~300만원대, 월 임대료 5만~6만원대다. 만약 이보다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게 된다면 임차인들의 저항이 거세질 수 있다.
갈 곳이 정해진다고 해도 임차인을 설득해 이주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토부는 영구임대 입주민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장애인인 만큼 이사지원비나 이사 대행서비스도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일정 비용을 제공하거나 인력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임차인들이 적극적으로 이주에 나서기 힘들어 보인다. 영구임대주택 임차인 대부분이 건강, 자금 사정 등으로 주거지 이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영구임대주택은 생계·의료급여수급자 및 국가유공자 등 사회보호계층 주거지원을 위해 공급하는 주택이다. 임대 보증금 및 월 임대료는 시세의 30% 수준이며 임대 기간은 50년이다.
영구임대주택 1순위는 생계·의료급여수급자, 월평균소득 70% 이하의 국가유공자·북한이탈주민·장애인·아동복지시설퇴소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대상 한부모가족, 만 65세 이상 수급권자 또는 차상위계층.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등은 스스로 이삿짐을 싸기 힘들다. 이사 지원이 나온다고 해도 거주지 이전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 등 익숙한 인프라를 바꾸는 것도 원치 않는다.
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한국주택학회 회장)는 "유동성 있는 일부 청년층이 아니면 대부분 생활 봔경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주거 면적이 크게 넓어지거나 평생 주거 보장이 되는 개념이 아닌 이상 기존 임차인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1기신도시 관내 영구임대주택단지 현황/자료=국토교통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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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임대 재건축, 하긴 해야 하는데…
사업시행자인 LH의 재정 부담도 우려된다. LH는 2023년 말 기준 임대주택 사업 손실 비용이 2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엔 임대주택 유지 보수 비용도 포함된다. 가뜩이나 손실이 큰 상황에서 영구임대 재건축 이주 지원, 임시 거처 비용 지원 등까지 더해지면 부담은 더 커진다.
재건축에 성공하면 영구임대주택의 주거 환경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아직 국내에선 영구임대 재건축 선례가 없는 가운데, 신도시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면 다른 단지들도 재건축 등 주거 환경 개선이 본격화할 수 있다.
LH에 따르면 전국 영구임대주택은 16만6553가구로 준공 30년 이상 된 단지가 12만6083가구(75.7%)에 달한다. 10채 중 7~8채는 재건축 연한을 채운 노후 단지인 셈이어서 정비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올 상반기까지 영구임대 재건축 연차별 순차 착공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에 따라 임시거처 선호지 설문조사→임식거처 확정→이사·착공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입주시기 등을 고려해 연차별 순차 이동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국토부가 임시로 잡아놓은 영구임대 연차별 순차 이동계획안을 보면 분당과 일산에선 이르면 2027년부터 이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다만 복수의 영구임대주택이 입지 여건 상 동일한 임시거처로 이동할 경우 설문조사를 통해 주민 동의율 등에 따라 순서가 결정될 예정으로 추후 이동 시기가 바뀔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임차인의 주거 안정과 지속 가능한 재건축 추진을 위해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진 박사는 "해외는 영구임대주택 재건축 등에 따른 임차인 이주가 필요할 때 십 수년의 기간을 잡는다. 프랑스의 경우 상담사가 임차인의 정신적 부담을 관리하면서 이주를 돕기도 한다"며 구체적인 이주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1기 신도시 재정비는 워낙 패스트트랙을 강조하다보니 완충을 위한 시차가 적다"며 "영구임대 임차인들의 주거 안정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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