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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사회문제를 무대에 올려야 다음 사회로 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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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Creator] 〈9〉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연출가 겸 극작가 강훈구

연기 안해본 아이들 10명으로 연극… 연습 진행하며 의견 모아 대본 작업

“시민예술인 많을수록 사회수준 높아”… 신작엔 12·3 불법계엄 상황도 담겨

동아일보

강훈구 연출가가 이끄는 공놀이클럽은 극단이 아닌 ‘연극제작집단’이라고 불린다. 강 연출가는 “위계적인 조직 대신 공놀이하듯 연극한다는 의미다. 시간이 돼서 모인 사람들끼리 놀다가 흩어지는 조기축구회처럼 느슨하고 즐겁게 뭉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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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예술가가 아닌 시민 예술가의 숫자가 사회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 주위 문제를 무대에 올리는 사람이 많아야 ‘다음 사회’로 나아갈 수 있죠. 생활예술과 전문예술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제 연극의 목표입니다.”

지난해 연기 경력이 없는 어린이 비전문배우 10명이 출연한 연극 ‘이상한 어린이 연극―오감도’로 제61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받은 연극제작집단 ‘공놀이클럽’의 연출가 겸 극작가 강훈구(34).

당시 이 연극은 “아동극에 대한 편견을 깨부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뿐 아니다. 강 연출가는 기존 연극계 관습과 형식에서 탈피한 작품들로 지난해 동아연극상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등 굵직한 연극상들을 휩쓸었다. 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에서 만난 그는 “기쁘고 무섭다. 연출가보다 출연진, 창작진이 더 돋보인 작품이라 주신 상 같다”며 밝게 웃었다.

연희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신작 ‘클뤼타임네스트라’ 역시 제작 과정부터 남다르다. 대본이 먼저 나온 뒤 연습을 시작하는 기존 방식이 아닌, 연습에 들어가고서야 집필을 시작했다.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에 12·3 불법 비상계엄 등 최근 사건이 생생히 담길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 연출가는 “연극은 관객 눈앞에서 벌어지는 예술이기에 영화, 드라마보다 시차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며 “무대 위 세계를 목격한 관객이 현실의 정치사회를 한발 떨어져서 생각해 보기를 바랐다”고 했다.

‘공놀이클럽’의 모험은 아동·청소년극에서 더욱 반짝인다. 통상적으로 성인 배우가 어린이 역할을 맡는 ‘어린이 없는 어린이극’이란 불문율에서 과감히 탈피했다. 특히 ‘이상한 어린이 연극-오감도’는 ‘제○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로 잘 알려진 이상의 시 ‘오감도’를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했다.

작품은 스산한 불협화음을 배경으로 어린이는 단지 겁먹은 존재가 아닌 ‘무서운 존재’로서 전쟁이나 이혼 등을 스스럼없이 거론한다. 실제로 대본은 제작에 참여한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완성되기도 했다. 강 연출가는 “교훈적인 연극에서 질문하는 연극으로 거듭나고자 했다”며 “아이들이 쉽게 겁먹는 이유는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이지,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얘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 연출가가 처음부터 이른바 ‘돈 안 되는’ 아동·청소년극에 매진한 건 아니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시절 “극예술연구회의 ‘나이롱’ 멤버”였던 그는 2017년 사회비판적 희곡을 쓰면서 연극계에 입성했다. 데뷔작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이 문예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크고 작은 정치적 격변이 이어진 뒤에도 기대만큼 바뀌지 않는 세상을 보면서 어릴 적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깊이 자문했다. 어른이 되려는 이들을 위한 연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비판적 담론도 좋지만, 솔직한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아동극을 보러 오는 관객 다수가 20, 30대인 건 어릴 적 유예해야 했던 욕망과 고민을 뒤늦게라도 복기하기 위함이라 생각해요. 연극을 통해 청소년, 청년에게 ‘나 잘 살고 있는지’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천진함은 ‘공놀이하듯 연극한다’는 공놀이클럽의 바탕이다. 이곳저곳으로 통통 튀어오르면서 질문을 공처럼 굴린다는 개념이다.

“공놀이를 하려면 시간, 공간, 친구, 옷을 버려도 되는 마음이 필요하죠. 그중 무엇 하나 제대로 갖기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연극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학예회라도 괜찮아요. 모두가 즐기고, 누구든 실수해도 괜찮은 사회에선 우리가 모인 것만으로도 사건이 되니까요.”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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