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가 29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 외곽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국제공항에서 열린 아제르바이잔 텔레비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쿠/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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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지난 25일 발생한 아제르바이잔 여객기 추락 사고가 ‘시스템 교란’과 ‘지상 포격’에 의해 일어났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내에서 사실을 은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여객기가 격추된 사실을 공식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29일 아제르바이잔 국영 아즈티브이(AzTV)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비행기는 전자전 시스템에 의해 조정할 수 없게 됐다”며 “이것이 비행기에 가해진 첫번째 손상”이라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이어 “비행기의 뒷부분이 심하게 손상이 됐는데 지상에서 포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여객기의 시스템을 외부에서 교란해 항로를 이탈하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러시아 방공망에 걸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또 러시아가 “(조류 충돌 등) 가설들을 내세운 것”을 볼 때 “사건을 덮고 싶어 함이 분명”했다며 “죄를 인정하고 제때 사과”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실은 앞서 기체의 구멍과 생존자 증언은 사고 원인이 “외부의 물리적·기술적 방해”라는 증거라고만 했었다.
아제르바이잔항공 J2-8243편 여객기(엠브라에르 ERJ-190AR)는 25일 승객과 승무원 67명을 태우고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를 이륙해 러시아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로 날아가다 돌연 방향을 바꿔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해변 도시 악타우에서 3㎞ 떨어진 곳에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승객 38명은 숨졌고, 29명은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생존자들은 추락 직전 외부에서 충격이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파편이 기체를 뚫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8일 아제르바이잔 여객기 추락 사고 당시 러시아 방공망이 가동되고 있었다며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크렘린궁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전화로 “러시아 영공에서 사고가 발생한 데에 사과하며, 희생자 가족들에게 깊고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하고 부상자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사고 당시 우크라이나의 무장 드론이 러시아를 공격 중이었고 “러시아 방공 시스템이 이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방공망에 걸려 격추됐다는 의혹을 처음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직접적인 책임을 언급하지 않자 알리예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명시적인 시인을 촉구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애초 연루설을 부인했다. 사고 직후 25일 러시아 항공당국은 새와 충돌해 비상사태가 생겨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공 전문가들은 사고 여객기 항로 인근에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있었던 점을 들어 러시아군의 방공망에 격추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항공 위험을 점검하는 오피에스그룹(OPSGroup)의 마크 지는 추락 여객기 파편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여객기가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은 90~99%에 달한다고 본다”고 에이피에 말했다.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은 합동으로 사고 조사를 하고 있다. 크렘린궁은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검찰이 조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고, 세 나라는 사고 현장에서 긴밀하게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별도의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이번 사고와 관련해 “신속하고 독립적인 국제 조사를 촉구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가 과거 발생했던 말레이시아항공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고 짚었다. 2014년 7월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상공에서 러시아산 미사일에 격추돼 탑승자 298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 사고 합동조사단은 지난해 2월, 8년 반의 조사 끝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분리독립 세력한테 미사일을 제공하도록 허락했다는 강력한 징후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이와 관련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정연 최우리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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