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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2월17일 즈엉이 딸을 품에 안고 바라보고 있다. 즈엉과 아내 김윤정씨는 이날 베트남 식당을 빌려 지인들과 함께 딸 김하윤의 출생 한달을 기념하는 잔치를 했다. 한국의 돌잔치(백일잔치)와 같은 베트남의 전통 한달잔치(레 다이 탕)를 열고 9개월 만에 즈엉은 세상을 떠났다. 유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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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사망 당시 만 32세에 불과했고, 건설현장에서 철근작업을 하며 근무하던 중 사망하였으며, 업무상 과로 외에 달리 심정지를 유발할 만한 기저질환이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음.”
건설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다 돌연사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 즈엉반응웬(32)이 지난 19일 법원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주장과 다르게 석방팀 업무의 특수성과 과도한 근로시간 등을 모두 인정했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고에서 회사 쪽으로 치우친 공단의 재해조사 한계를 법원이 제대로 짚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즈엉은 지난 2022년 11월18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쓰러진 뒤 26분 만에 숨졌다. 사인은 급성 심장사였다. 지난 2019년 베트남에서 한국에 입국해 일당직 철근공으로 일하던 즈엉은 사망하기 열흘 전 석방팀(철근공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뤄 업무량에 따라 평당 임금을 받는 팀)으로 옮겼다. 석방팀은 평당 계산된 임금을 지급 받았기 때문에 업무량이 많았고, 팀원 중 결원이 발생해도 같은 양의 업무를 해야 했다. 결국 즈엉은 출근 열흘 만에 현장에서 숨졌다.
유족은 유족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철근을 엮는 단순반복 작업을 수행해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단은 현장 조사 없이 회사 쪽이 제출한 근로계약서, 노무비대장, 출퇴근기록 등만을 토대로 산재 신청을 기각했다. 유족은 즈엉의 발병 전 1주간 근로시간이 50시간이라고 주장했지만, 공단은 “객관적인 사업장 자료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회사쪽 주장인 39시간40분으로 근무시간을 산정했다.
20일 한겨레가 입수한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동료 이주 노동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즈엉의 사망이 근무환경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수행한 건설현장 철근공 업무는 통상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에 해당한다”며 “더구나 고인은 석방팀 소속 철근공으로 사실상 고정급이 아니라 업무량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받기로 하였던 것으로 보여 업무 밀도 및 강도가 더욱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단이 제출한 근로계약서의 신빙성에 관련해서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베트남 국적 외국인임에도 베트남어로 번역된 근로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근로계약서가 실제 근로조건과 일치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체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1년여간 유족이 직접 현장 동료들을 설득해가며 입수한 공수일지 등을 토대로 업무량을 계산했다. 원청인 디엘이앤씨는 재판 과정에서 “망인의 출입기록에 따르면 (하루) 11시간을 근무했다는 원고 측 주장은 허위”라고 주장했다. 공단은 회사 쪽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발병 전 특이사항이나 돌발 상황이 확인되지 않고, 단기 과로 및 만성적 과로 요인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라며 “상병 유발에 있어서 업무적인 부담 요인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022년 11월5일 고인이 속한 석방팀은 5명이 100평 면적의 철근작업을 하다가, 8일부터 150평으로 증가했고, 14일에는 4명이 200평 면적의 철근작업을 수행했다”며 “고인도 사망 당일 아내에게 ‘좀 더 버텨볼게. 혈압이 떨어지는지 눈앞이 빙빙 돌고 힘이 하나도 없네’라고 하였고, 동료들에게도 조퇴 의사를 표시하는 등 강도 높은 피로와 고통을 호소했다”고 덧붙였다. 증거로 인정된 공수일지 등은 동료 노동자가 임금 정산을 위해 회사에 제출했던 자료다.
유족을 대리한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는 “재판서 인정된 내용들이 모두 재해조사 과정에서는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았던 내용으로, 공단의 재해조사가 실질을 드러내지 못하고 부족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특히 이주노동자의 경우 불법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 현장에서 객관적 자료가 남지 않아 산재가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원이 외관이 아닌 실질적 내용을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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