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현 호남취재본부 기자 |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지난 18일 저녁 광주 5·18민주광장 앞 집회장. 무대에 올라 자신을 공무원이라 밝히며 대한민국 헌법 제 7조 1항을 언급한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느냐’라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내 참석자들의 박수와 환호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수첩에 쓰면서 지난 열흘을 되돌아봤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안 가결 순간까지 모든 장면을 활자로 옮겼다. 앳된 얼굴의 중3 학생부터 직장인, 주부, 대학생, 교사, 자영업자, 시민운동가, 정치인, 종교인을 거쳐 79세 어르신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는 박모 씨는 한 손에 꽃병(화염병을 가리키던 은어) 대신 ‘탄핵’이라 적힌 응원봉을 들었다. 계엄 소식을 접하고 며칠째 뜬눈으로 보냈다는 박 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회장을 찾았는데, 과거와 다른 밝은 분위기에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며 “참담한 마음에서 다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백반집을 운영한다는 김모 씨는 1980년 5월 당시 솜이불 아래 숨어있던 학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시절을 겪은 사람은 ‘계엄’이란 두 글자를 보면서 나처럼 얼마나 떨었을까 싶다”며 "어린 시절과는 또 다른 생계의 공포까지 더해졌다"고 고백했다.
저마다 말문을 여는 사연은 달랐지만, 대화의 끝은 비슷했다. 모두 입을 모아 윤 대통령에게 ‘국민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늘어놨다. 그는 담화에서 “계엄선포는 고도의 ‘통치 행위’였다”거나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 “끝까지 싸우겠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등으로 답했다.
그뿐인가. 대다수 헌법학자가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법정에서 당당하게 입장을 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이자 40년 지기인 석동현 변호사는 “(12·3 비상계엄은) 국헌을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려는 것이다”며 “‘내란'이 아닌 ‘소란’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란이 났으면 경제가 이렇게까지 회복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탄핵안 가결로 숨을 돌렸던 시민들은 현 상황을 지켜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일상 속에 저녁 퇴근길이면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5·18민주광장으로 향했다.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응원봉을 쥔 채 “내란수괴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고 구속하라”고 외쳤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암담한 현실에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져버리지 않는 모습'이라 수첩에 썼다. 동시에 익숙한 질문을 던졌다. '누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가'라고.
호남취재본부 송보현 기자 w3t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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