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무용가의 꿈 막진 못해” 癌 이기고 무대 복귀한 여고생

서울성모병원서 급성 백혈병 치료한 10대 세연양

조혈모세포·면역억제요법 받고 최근 완치 판정받아

예고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며 꿈을 키우다 예기치 않게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10대 소녀가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무사히 마치고 무대로 돌아갔다.

17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선화예고 1학년 재학 도중 급성 백혈병으로 진단된 세연(18) 양은 서울성모병원에서 조혈모세포 이식과 면역억제요법을 받은 끝에 완치(골수검사 결과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 판정을 받았다. 꿈에 그리던 학교 예술제 무대에도 서게 된 서연이는 개교 50주년 공연은 물론 국립극장 공연까지 마치면서 백혈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해 예고에 입학한 세연이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첫 학기 5월 무용 실기수업 중이었다. 서연이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지만 중학생 때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전공을 한국무용으로 바꿨다. 평소보다 유독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연습을 많이 한 탓에 몸이 힘들어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후 학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 백혈구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왔고 가족들과 함께 급히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사 결과 세연이는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중에서도 최고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골수 내에서 림프구계 백혈구가 미성숙 상태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다 증식하고 정상적인 조혈기능을 억제하는 악성 혈액질환이다.

20세 이하 백혈병 환자들의 약 85%가 급성림프모구에 해당한다. 대부분 항암치료로 완치되지만, 세연이처럼 백혈구 수가 수십 만에 이르는 경우 최고 위험군으로 간주돼 조혈모세포이식도 필요하다.

세연이 부모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믿을 수 없었다. 가족 모두 건강했고 백혈병과 관련한 유전질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연이 부모는 “하루 종일 무용복을 입고 연습해서 피부가 붉게 올라왔다고만 생각했지, 그게 백혈병 증상 중 하나인 점상출혈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은 세연이를 곧바로 중환자실에 입원시켰고, 결국 세연이는 꿈꿔온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휴학하게 됐다.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 전 동생처럼 지냈던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소리죽여 우는 세연이를 지켜보던 온 가족은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세연이 입장에서는 입원 기간 예술고등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인 예술제 무대에 서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투병 생활 동안 곁을 늘 지켜준 가족과 “세연이 너라면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고 곁에서 격려해 준 친구들은 세연이가 힘든 치료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올해 초 이식 후 면역억제요법을 시작한 서연이는 다시 1학년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통상 이식 후 최소 6개월까지는 여러 위험으로 학교생활이 쉽지 않다. 세연이가 일찍 학교로 복귀하고 무대로 복귀할 수 있었던 건 배움을 향한 세연이의 강한 의지 뿐 아니라 가족과 의료진 모두 최선을 다해 조력한 덕분이었다.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이렇게 학교에 빨리 복귀한 아이는 처음이라는 의료진들의 놀라운 시선을 뒤로 하고 어느덧 세연이는 2학년 진급 전 발표회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식 13개월째인 지난 13일 세연이 가족에게는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5번째 골수검사를 진행한 결과 암세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것이다. 백혈병을 치료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못했다는 세연이의 엄마는 "학교에 돌아갔을 뿐 아니라 건강을 되찾아 공연까지 하게 된 요즘 하루하루가 마치 기적과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학교에 돌아오도록 애써주신 선화예고 모든 선생님들과 공연까지 직접 방문하며 치료의 전 과정에 진심을 다한 의료진들에게도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왔다.

세연이는 “치료받는 동안 매일 좌절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 때가 많았지만 결국 시간이 다 해결해줬다”며 “치료해주신 의료진분들, 건강해져서 꼭 돌아오라며 여러모로 도와주신 선생님들, 학교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는 한 살 어린 동생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세연이 사례는 병원 의료진들의 마음도 뭉클하게 했다. 주치의인 정낙균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청소년기 급성백혈병의 경우 치료과정에서 좌절하고 학교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다. 체력적으로 힘들텐데 이를 극복하고 선화 50주년 동문 무용제에서 친구들과 멋진 공연을 보여준 세연이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며 "백혈병을 치료하는 많은 친구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멋지게 성장해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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