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공동기획 전시에 중국은 국가문물국 지정 문물(文物) 1~3급 근대미술 명작 32점을 출품했다. 린펑몐 의 ‘물수리와 작은 배’, 1961, 종이에 먹, 색, 31x34.5㎝, 중국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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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먹을 머금은 굵은 붓이 화면을 대담하게 스쳐 가니 그게 하늘과 땅이 되고 또 물이 되었다. 그 물 위에 뜬 작은 배와 갈대, 그리고 두 마리의 물새가 하나 된 풍경, 중국 수묵화가 린펑몐(林風眠·1900~1991)의 1961년 작 ‘물수리와 작은 배’다. 작품은 가로·세로 30㎝ 정도이지만, 풍경의 적막함이 시공을 뛰어넘어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창숴(吳昌碩·1844~1927)의 1921년 작 ‘구슬 빛(珠光)’은 어떤가. 등나무의 줄기와 이파리로 채워진 화면이 호쾌한 기운을 뿜어낸다. 중국 근대 미술사에서 ‘거장의 거장’이라 불리는 우창숴의 솜씨가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보여준다.
한·중 대표 근현대 수묵채색화 총 148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내년 2월 16일까지)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성희)과 중국미술관(관장 우웨이산)이 함께 기획한 것으로, 한국 작가 69명의 작품 74점과 중국 작가 76명의 작품 74점을 1·2층 총 4개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중국미술관은 국가문물국 지정 1급 문물(작품) 5점을 비롯해 2급 21점, 3급 6점 등 총 32점을 대거 내놓았다. 중국 내에서도 쉽게 공개되지 않던 걸작들이다.
특히 중국화 1부 전시장 초입에선 1급 문물 그림 5점을 따로 모아 소개한다. 우창숴의 ‘구슬 빛’과 린펑몐의 ‘물수리와 작은 배’, 쉬베이훙(徐悲鴻)의 ‘전마’(戰馬,1942), 치바이스(齊白石)의 ‘연꽃과 원앙’(1955), 우쭤런(吳作人)의 ‘고비사막 길’(1978)이다.
쉬베이훙은 중국 사실주의 회화의 대가로, ‘전마’는 힘 있는 필치로 전투마의 골격과 휘날리는 말 갈기와 꼬리를 표현했다. 치바이스의 ‘연꽃과 원앙’은 간결하면서도 대담한 구도와 색으로 거장의 위엄을 보여준다.
한국 화가 황창배의 ‘20-2’, 1987, 종이에 먹, 색, 120.5x126.5㎝.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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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의 역사가 배어 있는 작품도 눈에 띈다. 현대 산수화가 첸쑹옌(1899~1985)의 ‘금수강산 풍요로운 땅’은 1972년 문화대혁명 당시 제작된 것으로,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잘 정비된 논과 밭, 주택과 어선을 아름다운 색채로 담아냈다. 반면 라오빙슝(廖氷兄· 1915~2006)의 1979년 작 ‘자조(自嘲)’는 문화대혁명 이후의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으로, 독 안에 갇혀 있던 지식인이 독이 깨진 후에도 몸을 웅크린 모습을 표현한다.
중국화 2부 ‘다양성과 번영’에서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총망라한다.
한국 작품으로 이뤄진 2개의 전시장엔 안중식, 김은호, 김기창, 박래현, 박생광, 이응노, 서세옥, 권영우 등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수묵채색화 중 대표작이 다수 나왔다. 특히 황창배(1947~2001)의 ‘20-2’(1987)는 속도감 있는 필치와 특유의 색감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종이와 먹, 색으로 이룬 독자적인 경지를 충만하게 보여준다.
석철주(74)의 ‘외곽지대’, 오숙환(72)의 ‘휴식’, 김선두(68)의 ‘2호선’, 서정태(72)의 ‘언덕 위에 빨간 나무’는 현대 도시 풍경을 소재로 각기 다른 기법으로 전통과 현대를 접목했다. 지금 화단에서 주목하고 있는 정종미, 이은실, 손동현, 이진주 등의 작품도 총출동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한국화를 어떻게 계승해 현대 회화로 뻗어 나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걸작들을 모아 놓은 자리인 만큼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작품도 6점에 달한다. 노수현의 ‘망금강산’(1940), 김기창의 ‘군마’(1955), 변관식의 ‘금강산 구룡폭’(1960년대), 천경자의 ‘노오란 산책길’(1983) 등이다.
이번 전시는 2022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준비했으나, 코로나19 등으로 연기했다가 지난달 28일 개막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동아시아 미술의 풍성함과 다양성, 그리고 예술적 깊이를 새롭게 발견할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를 준비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한국과 중국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예술이 수묵채색화”라며 “수묵 예술이 앞으로도 현대 미술의 주요 매체로 확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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