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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쿠바·멕시코 인근에 서식
돌고래 89마리 지방 조직 분석
총 24마리에서 ‘펜타닐’ 검출
죽은 6마리 체내선 모두 나와
투약자 배설물·제조 시설 하수
강·바다 오염시키는 원인 추정
수산물 먹는 사람도 피해 우려
# 미국 한 도시의 골목. 길바닥 여기저기 쓰레기가 쌓여 있고, 허름한 텐트 여러 동이 인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리되지 않은 길거리보다 더 시선을 끄는 모습은 사람들의 심상찮은 움직임이다. 몸통을 곧게 편 채 정상적으로 보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슬로 모션’처럼 신체 움직임이 너무 느리거나 몸통을 기괴한 자세로 꺾는 이들이 눈에 띈다.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있는 ‘펜타닐’ 중독자들의 모습이다. ‘좀비 마약’이라고도 불리는 펜타닐은 201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중독자가 크게 늘고 있다. 펜타닐은 또 다른 진통제인 모르핀보다 진통 효과가 100배나 강한데, 이 때문에 부작용과 중독성도 크다. 그런데 이 펜타닐이 인간이 아닌 돌고래 몸에서 최근 발견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돌고래 등에 펜타닐 검사를 위한 피부 지방 채취 장비가 꽂혀 있다. 텍사스대 제공 |
멕시코만 바다서 ‘펜타닐 돌고래’
미국 텍사스A&M대와 미 해양대기청(NOAA) 소속의 공동 연구진은 이달 초 미국과 멕시코, 쿠바로 둘러싸인 멕시코만에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성분이 검출된 다수의 돌고래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아이사이언스’에 실렸다.
연구진은 2020년 9월, 멕시코만을 보트로 항해하며 돌고래 개체 수를 세는 일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활동 도중 물에 뜬 채 죽은 돌고래를 우연히 한 마리 발견했다. 죽은 해양 동물이 발견되면 과학자들은 대개 폐사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다. 연구진도 돌고래 피부의 지방 조직을 떼어 분석했는데, 여기서 뜻밖에도 펜타닐 성분이 검출됐다.
연구진은 조사를 즉시 확대했다. 지난해까지 멕시코만에 서식하는 돌고래 83마리, 그리고 죽은 채 발견된 돌고래 6마리 몸에서 채취한 지방을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총 24마리 체내에서 펜타닐이 검출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죽은 채 발견된 돌고래 6마리 몸에서는 모두 펜타닐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펜타닐이 돌고래의 죽음과 연관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펜타닐은 본래 매우 잘 듣는 진통제로 개발됐다. 진통 효과가 모르핀보다 100배나 강했다. 의학적으로 사용된 것은 1968년부터로, 말기 암 환자처럼 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에게 처방돼왔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 펜타닐이 다량으로 불법 제조돼 보통 사람에게 팔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펜타닐은 중추 신경계를 교란했는데, 이 때문에 정상적 사고 기능을 잃은 중독자를 양산했다. 펜타닐은 근육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도 없게 했다. 중독자들이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기괴한 자세를 보이며 좀비처럼 행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펜타닐은 심리적·신체적 의존성이 높은 약이어서 투약을 중단했을 때 불쾌감이나 초조함, 불안이 무척 심하다. 아무리 몸이 망가져도 끊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펜타닐 문제는 미국에서 특히 심각하다. 2022년 한 해에만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7만3000여명에 이르렀다. 지난해 미국화학회는 관련 설명자료를 통해 “펜타닐 치사량은 0.002g에 불과하다”며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고 밝혔다.
도시서 유입 유력…수산물 대책 시급
이런 펜타닐이 사람도 아닌 돌고래에게서 발견된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이에 대해 “대규모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특히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생기는 오염 물질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사는 환경에서 바다로 펜타닐이 흘러 들어왔을 가능성에 주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의문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연구는 지난 7월 발표된 적이 있다. 브라질 연구단체인 ‘오스왈도 크루즈 재단’ 과학자들은 이 나라의 대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 연안에서 상어 13마리를 잡아 검사했다. 그러자 근육과 간에서 고농도 코카인이 확인됐다.
당시 연구진은 “마약 사용자들 신체에서 나온 배설물과 불법 마약 제조 시설에서 버려진 코카인이 바다로 유입돼 상어의 몸에 쌓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수로 흘러든 코카인이 강을 지나 바다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번 멕시코만의 돌고래들도 비슷한 경로로 펜타닐을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가까운 대형 동물들이 펜타닐 농축에 따른 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돌고래 몸에서 확인된 펜타닐은 인간의 건강에도 잠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펼쳐졌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돌고래는 사람에게도 주요 식량원인 갑각류와 물고기를 먹이로 삼기 때문이다. 펜타닐 유입이 지속된다면 향후 수산물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약물이 새로운 수질 오염물질로 등장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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