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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송차 향하는 '무기수' 김신혜
아버지를 수면제 탄 술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47) 씨에 대한 재심 결과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나옵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는 오는 18일 오전 10시 김 씨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을 엽니다.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의 한 도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A(당시 52세)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3급 장애가 있는 A 씨는 자택에서 7㎞가량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고, 현장 주변에는 깨진 차량 방향 지시등 파편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처음에는 뺑소니 사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검시 결과 시신에서는 어떠한 외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경찰이 타살로 수사 방향을 급선회해 수사를 진행하던 중 뜻밖의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고모부라고 밝힌 신고자가 "조카가 아버지를 수면제 먹여 살해했다고 말했다"고 경찰에 전했습니다.
때마침 나온 부검 결과 A 시신에서는 다량의 수면제와 알코올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경찰은 그렇게 당시 23세 김신혜 씨를 긴급체포했습니다.
김 씨는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수면제를 양주에 타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말하고 먹였고, 아버지인 A 씨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해 죽였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습니다.
또 수사당국은 김 씨가 A 씨 명의로 8개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타낼 목적도 있었다고 공소사실에 적시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재판이 시작되자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김 씨는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대신 감옥에 갈 생각으로 거짓으로 자백했다"며 "아버지의 성추행도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김 씨의 번복에도 1·2심에 이은 대법원 상고심은 연이어 "김 씨가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단순 존속살해 사건으로 묻힐뻔한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김 씨의 무죄 항변이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면서부터입니다.
SBS를 비롯해 각종 매체는 김 씨와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며 김 씨가 진짜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의 섭외로 김 씨를 만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경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제기하면서 해당 사건을 다시 들춰졌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 김 씨 사건을 재검토한 결과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확인됐다며 재심을 청구, 그해 말 1심 법원인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재심 개시가 결정됐고, 검찰이 계속 항고하면서 2018년 재심 개시가 확정됐습니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 사례였습니다.
법원은 "경찰이 법원의 영장에 의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지 않았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경찰관이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압수 조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며 "김 씨가 현장 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도 없이 범행을 재연하는 등 강압 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가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는 '근거 없다'며 모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재심 재판이 시작됐으나, 재판은 국민참여재판 기각, 김 씨의 재판부 기피신청과 잦은 변호인 교체 등으로 장기간 공전과 재개를 반복하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됐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공판이 진행됐음에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김 씨는 국선변호인 취소나 공판 불출석을 반복했습니다.
검찰은 이에 대해 "피고인은 변호인 해임, 재판 불출석 등을 반복하며 유죄의 증거가 드러나는 등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재판이 진행되자 변호인과 검찰이 결부됐다는 허위 주장을 반복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과정에서 허술한 사건처리에 김 씨가 변호인을 비롯해 사법당국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심각해졌다"며 "또 처음 만날 당시부터 망상 등 정신적 불안정한 증상이 심해졌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에 대한 재심의 쟁점은 ▲ 범행 동기 ▲ 자수 경위 ▲ 수면제 등 증거 ▲ 알리바이 ▲ 강압·불법 수사 여부 등입니다.
검찰은 "김 씨가 자백해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 됐고, 자수 당시 범인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술에 수면제를 타 먹였다는 범행 수법을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유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정황으로 제시했습니다.
범행 동기 부분은 "김 씨가 수사단계에서 본인과 여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성추행이 범행 동기가 됐다고 진술했다"며 "사건 1~2개월 전 A 씨 명의로 12개 보험에 가입해 그중 유효한 7개 보험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최대 9억 4천여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검찰은 봤습니다.
또 "수면제 30알로 시신에서 수면제 성분인 독시라민 수치가 13.02㎍/㎖가 검출될 수 있고, 이 정도 양이면 고도의 명정 상태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김 씨만 유일하게 가족 중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없고, 이마저도 당시 남자친구에게 거짓 진술을 부탁하는 등 조작하려 한 시도가 있었고, 동생에게 허위 증언을 부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검찰은 강조했습니다.
검찰은 경찰의 불법 수사로 서류와 압수영장 누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경찰이 강압이나 폭행을 행사한 사실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준영 변호사는 "고모부로부터 이복 남동생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말을 듣고, 동생 대신 처벌받기 위해 거짓으로 자수한 것"이라며 "수면제 등 범행 수법을 미리 안 것은 부검을 참관한 친척에게 전해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습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선처 받으려면 거짓 양형 사유를 밝혀야 한다는 고모부의 설득에 성추행을 꾸며낸 것"이라며 "보험 가입도 A 씨에 대한 장애 고지의무를 위반하고 가입해 2년 뒤에나 수령이 가능한 사실을 보험설계사 경력이 있는 김 씨가 몰랐으리 없다"고 밝혔습니다.
박 변호사는 증거와 관련해서는 "수면제 30알로는 독사라민 수치가 부검 결과만큼 나올 수 없고 사망에 이를 수치도 아니다"며 "시신과 다른 증거에서도 수면제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집에 가려다 아버지가 술주정한다는 소리를 듣고 등대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잠이 든 것이고, 알리바이를 입증할 길이 없어 남친에게 진술을 부탁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경찰 수사 과정의 위법성은 분명하다며 수사기관이 범행 계획이라고 밝힌 살인 계획은 연극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쓴 여러 글 중 사건 관련한 내용만 발췌한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변호사는 결심공판 직후 "재심 과정에서 무죄의 증거로 피고인 측이 제출한 증거만 100여 건"이라며 "선고기일에 그간 재판에 불출석한 김신혜 씨가 법정에 나올 수 있도록 설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재판은 김 씨에게 최초 무기징역이 선고된 1심에 대한 재심으로, 해당 재판에서 유·무죄가 결정되더라도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재판 결과에 따라 항소하면 다시 2심, 상고심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사진=연합뉴스)
류희준 기자 yooh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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