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가 열어젖힌 '탄핵의 문'. 연말 특수는 사라지고 내수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국내 물가 역시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팬데믹에 이어 '침체'란 덫에 걸려 있던 자영업자로선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자영업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호언장담을 믿었던 몇몇 자영업자는 배신감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내란 사태 후폭풍으로 자영업자들은 연말 특수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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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근방에서만 가게 3곳이 문을 닫았다. 내란 사태에도 정치 싸움만 벌이는 정치인들이 자영업자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문영숙(가명)씨는 뉴스가 나오던 TV를 끄며 한숨을 내쉬었다.
3일 밤 시작된 내란 사태의 후폭풍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은 연말 특수마저 기대할 수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 직장인들의 송년회가 많은 시기지만 뒤숭숭한 정국에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정훈(가명)씨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시기다 보니 모임을 줄이고 일찍 귀가한다"면서 "회식도 1차만 하고 밤 9시 전에 끝내는 추세"라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가뜩이나 줄었던 모임이 더 줄고 있다는 거다.
24년째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상원(가명)씨는 "평소 같으면 단체 예약전화가 올 시간인데 오늘은 (예약전화가) 한통도 없었다"면서 "내란 사태 전과 비교하면 손님이 40~5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환율이 오르면 통상 원재룟값도 상승하기 때문에 고물가에 시달려온 자영업자들에겐 악재다. 그렇다고 가격을 쉽게 올릴 수도 없다. 여기서 가격을 또 건드리면 소비자가 아예 발길을 끊을지 몰라서다. 한씨는 "원재료 가격이 너무 많이 치솟았지만, 음식 가격을 올리지는 않았다"면서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11월부터 알바생을 쓰지 않고 가족들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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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1월 기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41만3000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146만2000명) 대비 3.3% 감소했다. 반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4.2%(412만명→429만4000명) 늘었다. 직원 한명 쓸 수 없는 '나홀로 사장'이 늘고 있다는 거다.
올해 4분기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83.65로 1년 전(83.85)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2년 전(2022년 4분기)과 비교하면 11.33포인트나 낮아졌다.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매출이 1년 전보다 감소할 거란 전망이 많다'는 의미다.
여기에 인건비·임대료 부담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자영업자에겐 무거운 부담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1시간당 1만30원으로 사상 처음 1만원을 넘어섰다. 올해(9860원)보다 1.7% 올랐다.
엔데믹(endemic·풍토병화) 전환 이후 상가 공실률이 낮아지면서 임대료도 다시 오름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도심의 소규모 상가 임대료는 3.3㎡당 23만6280원(이하 3분기 기준)으로 2022년(21만8130원)보다 8.3% 올랐다. 중대형 상가 임대료도 같은 기간 4.7%(27만1260원→28만4130원) 상승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벼랑에 내몰린 영세 자업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자영업자 중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의 대출잔액이 나날이 증가하는 건 위험한 시그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다중채무자의 대출잔액은 올해 2분기 753조8000억원으로 전체 자영업자 대출잔액(1060조1000억원)의 71.1%를 차지했다. 더 심각한 건 연체율이다. 자영업자 다중채무자의 연체율은 1.85%로 2년 새 1.28%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국내은행 연체율 0.47%(2024년 7월 기준)의 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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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들이 기댈 언덕마저 없다는 점이다. 자영업자를 위한 금융 지원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이지만, 12·3 내란 사태에서 비롯된 '탄핵정국'이 모든 논의를 빨아들이고 있다.
"향후 3년간 영세 자영업자의 배달 수수료를 30% 이상 줄이고, 노쇼·악성리뷰 등 자영업자가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겠다(2일 충남 공주서 열린 민생토론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믿었던 몇몇 자영업자는 '배신감'에 잠을 설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자영업자는 이렇게 고백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계엄을 발령하기 직전 공주에서 대통령이 '절 믿으시죠' 그러길래 뭔가 달라지려나 했어요. 대통령을 믿은 제가 죄인이지 누굴 탓하겠어요."
김영갑 박사는 "현재로선 자영업자 스스로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경기 침체에 간편하고 저렴한 음식을 찾는 소비자에 맞춰 메뉴를 다변화하는 등 자영업자 스스로 생존 전략을 짜야 한다. 앞으로는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현금성 지원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혼란스러운 탄핵정국이 수습된 다음, 정부는 자영업자를 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기대를 품기엔 봄이 너무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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