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순씨(가운데)가 지난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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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들, ‘12·12 군사 반란’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함께 나선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함께 나선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12일 시작한다. 원고는 성폭력 피해자 14명과 피해자를 보살펴온 가족 3명이다. 위자료 청구 금액은 강제추행·강간·특수강간 등 가해 행위와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해 정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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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12월 12일에 맞춰 소장을 제출한다.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인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의 홍보 담당인 김선옥씨(66)는 “피해자들이 고령이고 이씨처럼 아픈 경우도 있기에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배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법률대리를 맡은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생존해 있을 때 기본적 정의로서 실질적 배상이 이뤄지는 것은 필수적”이라며 “이는 피해자들의 최소한 생활 보장을 포함한 회복적 정의이고 한 사회가 공동체로서 담당해야 할 사회적·경제적·분배 정의의 실현 문제”라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5·18 성폭력 피해는 전두환 등 내란 행위자들이 헌정 질서를 파괴한 광주 도심 시위 진압 작전 전개, 외곽 봉쇄 작전, 연행·구금·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계엄군 등에 의한 불법행위이므로 국가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고들은 피고의 불법행위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장기간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라는 낙인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자학하거나 자해한 경우가 상당하고 부부관계를 정상적으로 영위하지도 못했다”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있는 점,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약 40년 배상이 지연된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광주광역시에 보상 신청을 했지만 기존 보상 기준이 ‘신체 장해’ 중심이라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민형배 의원은 지난 11월 각각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추 의원은 2021년 ‘5·18 관련자’로 인정된 ‘5·18 성폭력 피해자’를 보상금 지급 규정에도 적시하는 법안을 내놨다. 민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2021년 ‘5·18 관련자’로 인정된 수배·연행·구금 및 공소기각·유죄판결·면소판결·해직·학사징계자를 보상금 지급 규정에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현재 국회 상황에 따라 언제 논의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김복희 ‘열매’ 대표(63)는 “당연히 국가가 응답해줘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 참여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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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12·3 내란 사태’는 이들의 아픔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김선옥씨는 지난 3일 밤 계엄군이 ‘후레시’ 달린 모자를 쓰고 국회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1980년 5월 18일 광주 전일빌딩에 들어가는 광주시민들을 쫓던 계엄군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 5일 기자와 만나 “40년이 훌쩍 지나서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위에 헬기가 뜨고 계엄군이 들이닥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4일 국회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의 계엄군이 깬 유리창을 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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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0년 5월 22일부터 5일간 전남도청에서 학생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하다 도망쳤으나 7월 3일 결국 광산경찰서로 연행돼 두어 달 혹독하게 조사받았다. 석방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수사관이 그를 근처 여관으로 데려가 강간했지만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겨오다 2018년 ‘38년 만의 미투’로 피해 사실을 밝혔다.
최미자씨(62)도 같은 날 TV에서 계엄군이 트럭에서 내리는 장면을 보고 자신이 겪은 일이 똑같이 재현되는 것처럼 느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하는 것을 보고 아무 탈 없이 끝났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 불안함이 컸다. 김복희씨도 TV에서 계엄군 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서울에 올라가야 하나 생각했다. 계엄이 해제되는 새벽 4시가 될 때까지 눈을 붙일 수 없었다. 한편 불상사 없이 계엄 해제 가결이 된 것을 보면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5월 광주에서처럼 불상사가 벌어지면 어떡하나 조바심이 컸지만 시민들이 잘 대응해서 안도감도 컸다”고 말했다.
김선옥씨는 우리 모두 ‘광주’에 빚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광주의 경험이 있었기에 계엄 해제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 안 일어나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여전히 미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서울 사람들도 광주에 있었던 일을 믿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계엄군이 갑자기 쳐들어온 것을 보고 놀란 것처럼 44년 전 5월 광주에서도 그랬어요. 반성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체감했습니다. 하루빨리 시국이 안정되길 바랍니다.”
▼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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