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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단독] ‘안창호 본색’…인권보고서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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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제23차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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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이 양심적병역거부를 비판하고 성소수자 인권 부분을 대거 삭제한 인권상황보고서 수정안을 인권위 전원위원회(전원위) 회의에 상정한 사실이 확인됐다. 보고서 초안에 담겨 있던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에 대한 우려 부분이 삭제됐고, 인권상황 점검 뒤 반드시 기재하도록 한 개선 대책 부분도 일괄 삭제됐다. ‘인권위 퇴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보고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인권위는 지난 9일 제23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202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고서 발간의 건’을 심의했다. 인권위는 그동안 ‘위원회는 해마다 전년도의 활동 내용과 인권 상황 및 개선 대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인권위법 29조에 따라 매년 인권상황보고서를 발간해왔다. 이에 송두환 전임 위원장은 지난 4월 인권상황보고서 안건을 전원위에 상정했지만,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으로부터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으며 통과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9월 취임한 안창호 위원장이 직접 보고서 작업의 ‘주심’이 돼 인권정책과를 통해 보고서 수정안을 낸 것이었다.



12일 한겨레가 입수한 인권상황보고서 수정안 개요를 보면, 보고서 수정안엔 초안에 없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비판’이 추가되며 대체복무제를 다룬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다. “양심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군과 관련된 조직의 지휘나 감독을 거부할 수 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평등 원칙에 반하고 국가안보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는 부분과 “대체복무기간이 현역병의 1.5배를 넘으면 징벌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는)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복무기간이 길 수 있으며 해·공군에 비해 차이가 줄어든다”는 부분이 새롭게 추가됐는데, 이는 인권위의 그동안 입장과 전혀 다르다. 그동안 인권위는 단순히 병역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하는 것은 인권 침해이며 병역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성 소수자에 대한 내용도 상당 부분 삭제됐다. △동성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첫 인정 판결의 의미 △초·중·고 성 인권교육 예산 삭감 등 인권 교육 위축 현황이 뭉텅이로 빠졌다. 2023년 성소수자 인권 상황을 개괄하는 대목 가운데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으며 2018년 트랜스젠더 역시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은 의학적으로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는 문장도 빠졌다.



군인 분야에선 주요 사안인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우려 부분이 삭제됐다. 초안에는 ‘채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한 수사의 진행 상황 등은 크게 우려할 만 하다’, ‘국방부와 군은 법률과 원칙에 따라 사건(채상병 사망 사건)이 처리되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었지만 삭제됐다.



이밖에도 보고서 소제목에 나오는 ‘혐오·차별’, ‘계급간 차별’, ‘국회 의결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의 단어도 사라졌고, 보고서에 반드시 들어가도록 돼 있는 개선 대책도 일괄 삭제됐다. 소제목 중에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에 대한 혐오·차별 대응’은 ‘기타 사회적 약자’로, ‘건설노조 노동자 분신 사건과 정부의 반노조 정책 논란’은 ‘건설 현장 불법 행위 단속’으로, ‘공공도서관 성교육 성평등 도서 검열’은 ‘공공도서관 도서 비치 관련 논란’으로 수정됐다. 그 결과 306쪽이었던 보고서는 50여쪽이 줄 256쪽이 됐다.



수정된 보고서는 임명 전부터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안 위원장의 소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안 위원장은 헌법재판관 시절인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다수 의견과 달리 강경한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주요 근거는 ①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은 군복의 형평성과 병역 자원 확보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 ②이를 인정할 경우 악용의 사례가 증가할 수 있고 ③헌법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취임 전에는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쓰일 수 있다”는 등의 성수자 혐오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이날 전원위에서 “지난 9월30일 전원위에서 이충상·김용원 위원 등이 인권상황보고서에 대해 (편향성이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한 조치”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비판이 추가되고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삭제된 데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갖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식으로 반박했다. 병역거부 등과 관련하여 본인 소신을 말하면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한 거다. (기존 보고서는) 일방적 견해만 실어놨다. 제목부터 편향적 시각이 있어 객관적으로 뉴트럴(중립적)하게 평가 개념이 안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규선 상임위원 등은 수정안에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인권위는 오는 23일 전원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보고서에 반드시 들어가도록 돼 있는 개선 대책이 일괄 삭제되는 바람에 ‘인권상황과 개선 대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는 법 29조 내용의 절반은 실행되지 못하게 됐다”며 “개선 대책이 빠짐으로써 모든 분야의 평가와 개선 방향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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